이재오-김무성 대리전 속 불붙는 파워게임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이 적전 분열양상이다. 총선공천 쓰나미로 당내 불협화음이 짙어져만 가고 있다. 공천에서 떨어진 박근혜 전 대표 쪽 사람들은 ‘무소속 연대’ 등을 통해 독자행보를 준비 중이다.
박 전 대표는 일단 당 잔류로 마음을 굳혔지만 이명박 대통령 쪽 인사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여전하다. 박 전 대표를 대신해 탈당한 김무성 의원이 총대를 메고 ‘친이’계 인사들을 맹폭했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절정을 달렸던 양쪽의 대결은 올 여름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다시 한 번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셨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뒤 당을 나온 ‘친박’계 인사들은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인다.
박 전 대표는 영남권 탈락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정말 미안하다”고 위로하며 영광된 복귀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계가 주도한 물갈이공천에 대한 불쾌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선거기간 대구 체류”
총선과정을 놓고 ‘친이’계와 ‘친박’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떠난 지 한 달 여 돼가지만 당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당내 불화는 탈당인사들을 통해 시시각각 확산되고 있다.
공천결과에 불만을 강하게 드러냈던 박 전 대표는 칩거를 끝내고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총선기간 예상되는 움직임이 심상찮다. 과거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바람몰이를 하기보단 지난해 경선에서 자신을 도왔던 측근들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가에 주력하고 있다.
총선기간 내내 대구시 달성에 머물며 선거운동에 올인 한 뒤 선거가 끝난 뒤 서울로 올라온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 차원의 선거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는 당에 남았지만 탈당한 ‘친박’계 인사들은 빠르게 세력 확산에 나섰다. 이규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 연대’와 영남권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무소속 연대’가 중심이다.
서청원 전 대표에 이어 홍사덕·함승희 전 의원이 ‘친박 연대’에 가세했고 김 의원도 영남권 ‘친박’세력 연합체를 준비 중이다.
공천에서 떨어진 ‘친박’계 사람들은 이 대통령 쪽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친이’계의 이재오·정두언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이번 농단을 주도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총장이 탈당한 인사들을 향해 “어떤 경우라도 한나라당에 입당시킬 계획이 없다”며 복당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도 질타의 대상이다.
“이재오 낙선, 대운하 반대”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 의원은 당 밖에서 박 전 대표를 대신해 ‘친이’계와 치열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목표는 ‘친이’계 핵심인 이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 때 이재오는 떨어질 것”이라면서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정권은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고,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에 반드시 돌아가 당을 망쳐놓은 사람들을 응징한 뒤 새로운 한나라당을 만들겠다”고 이 의원과 이 사무총장을 겨눴다. 한나라당이 공천을 잘못한 결과로 영남에선 12석 정도를 잃고 수도권 112석 중 50석에 미달할 것이란 악담도 덧붙였다.
이 의원 개인을 향해서도 “후유증이 너무 크고 경제성이 전혀 없는 대운하를 비전문가가 하겠다고 자전거 타고 전국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가소롭다”고 자존심을 건드렸다. 탈당한 ‘친박’진영은 ‘대운하 구상 반대’를 중심 구호로 연대체 구성을 꾀하고 있다.
“박근혜, 최소한의 저항”
김 의원을 비롯, ‘친박’ 진영의 포화가 자신에게 쏠리자 이 의원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을지역에 출마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버거운데 안팎에서 적을 맞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공천을 둘러싼 비판에 ‘몹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친이’계에서도 의원 20명과 당협위원장 30여명이 떨어졌는데 누가 좌지우지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당 안팎에선 친 이재오 쪽 인사들이 공천심사과정에서 의심스런 행보를 많이 보여줬다고 증언하고 있다. 올 여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리는 이 의원이 무리수를 너무 많이 뒀다는 얘기다.
당 관계자는 친 이재오 인사들이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공천에 반대한 거나 박희태·김덕룡 의원 등 중진들이 공천에서 밀린 배경엔 이 의원의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고 봤다.
이들이 사라짐으로써 이 의원에 견줄만한 거물급인사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됐다는 것. 더욱이 박 전 대표의 수족인 김무성·이규택 의원 등을 당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이 의원의 당권 획득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탈당파 수수방관, 이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친이’계와 ‘친박’계의 힘겨루기는 이·김 의원에게로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대신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17대 국회에서 나란히 3선이었던 두 사람은 일치감치 당권라이벌로 불렸다. 대선정국에서 ‘친이’ ‘친박’으로 갈라지며 경쟁구도는 더욱 명백해졌고 공천과정을 거치며 끝내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에 쌓인 깊은 불신감도 한몫 한다. ‘친박’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공천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약속을 깬 데 대해 당에서 저항하고 있다”며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만큼 총선 뒤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총선에서 당선 돼 복당을 꾀할 경우 당은 전당대회 전 또 한 번 대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당선을 위협받고 있는 이 의원의 총선 생존여부도 당권경쟁구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흉흉한 당 분위기
‘당권 후보 제거 음모론’, 왜?
한나라당 공천갈등은 기본적으로 ‘친이’계와 ‘친박’계 싸움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적잖은 당권후보들이 조기에 숙청되는 결과여서 ‘음모론’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 당권후보인 김무성·이규택 의원이 공천에서 떨어진 뒤 당을 나갔고 김덕룡·맹형규·박성범 의원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물’을 먹었다.
이대로라면 당권후보는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의원 밖에 남지 않을 것이란 비아냥도 없지 않다.
김덕룡 의원의 주중대사설이 나오는 가운데 박성범 의원은 자신 대신 서울시 중구선거구에 출마한 자유선진당 신은경 후보를 외조하고 있다.
별다른 사유 없이 공천에서 떨어진 맹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고려 중이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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