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한나라당 ‘핫라인’ 가동, “그들은 통했다(?)”
청와대-한나라당 ‘핫라인’ 가동, “그들은 통했다(?)”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8-03-20 16:11
  • 승인 2008.03.20 16:11
  • 호수 72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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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4·9 총선 필승 전략
이방호 · 빅형준 · 유우익 · 박재완

한나라당 공천파문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영남권 친 박근혜 전 대표 사람들이 공천에서 떨어진 배후에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느냐는 것.

이규택·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 핵심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MB) 의중이 이번 공천심사에 강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개혁 공천’이란 명분 아래 박 전 대표 쪽 세를 꺾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이방호 사무총장과 류우익 대통령실장, 박재완 정무수석 등 이 대통령 쪽(‘친이’계) 핵심인사들이 청와대와 당 사이에 ‘핫라인’을 갖춘 뒤 이번 공천과정을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청와대 기획공천이다. 공천기준은 오로지 청와대 마음대로였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김무성 의원은 지난 14일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이방호 사무총장, 안강민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강재섭 대표, 그리고 청와대 사람들이 짠 명단대로 공천이 이뤄졌다는 얘기였다.

‘친박’계에선 “공천이 끝난 곳의 ‘친이’계 비율이 80%가 넘는다”면서 “이번 공천심사로 한나라당은 ‘이명박당’이 됐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 핵심인사는 문제의 인물로 이 총장을 지목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는 “이 총장의 사심이 전체를 흐리게 만들고 있다”면서 “그 뒤엔 박 전
대표를 제거하려는 청와대의 뜻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아니면 불가능”

한나라당을 떠들썩하게 만든 영남권 공천결과는 현역의원 공천탈락률 43.5%가 보여주듯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김무성·김재원·유기준 의원 등 ‘친박’계 의원 10여명이 무기력하게 떨어져나갔다. 박희태 의원 등 ‘친이’계에서도 탈락자들이 나왔지만 이들의 자리를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친박’계가 영남권 공천결과를 ‘대학살’이라고 분개하는 데엔 최근 청와대의 심상찮은 움직임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와 당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 3월초부터 당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두언·박형준 의원 등 핵심측근들에게 총선과 관련,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난 7일 강 대표와 안 공심위원장, 이 사무총장을 불러 긴급회동을 갖고 공천을 결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일보>는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이 핵심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에 대한 공천구도를 사실상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영남권 물갈이, 정몽준 의원의 수도권 출마설, 김덕룡 의원의 불출마 등은 청와대가 아니면 언급이 어려운 메가톤급 사안”이라고 덧
붙였다.


수시로 당 상황 보고

총선에 대한 이 대통령 관심은 요즘 들어 부쩍 커졌다. 청와대는 이번 선거에서 최소 과반수의석 이상을 확보, 안정적 국정운영의 바탕을 다질 계획이다. 이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 “성공적인 국정수행을 위해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둬야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낸바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공심위원장까지 청와대로 불러 회동을 가졌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통령이 공천에 깊이 개입했다’는 논란은 임기 내내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해명 또한 분명치 않다. 공식적으론 “아는 바 없다”지만 적극적인 부인은 아니다.

때문에 당 안팎에선 ‘친이’계 핵심인사들이 역할을 나눠 맡아 청와대와 당의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른바 양쪽 간에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

전령사론 이 총장, 류 실장, 박 수석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청와대와 당의 공식 연결통로인 박 수석은 공천관련 당내 정보와 동향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위해 당내 원로, 실무 당직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수석은 정치권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상당한 정보를 얻어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중요할 때마다 전체적인 당 분위기를 좌우하며 ‘총대’를 매는 행동대장은 이 총장이 맡았다.


“앞에선 어르고, 뒤에선…”

공천심사 전부터 강재섭 대표와의 갈등을 불사하며 김무성 의원의 ‘공천탈락’ 분위기를 이끈 것도 그였다.

‘친박’계는 공천심사 막판 내려진 결정들 대부분은 공심위원인 이 총장이 입김을 강하게 불어넣은 것이라고 지목했다.

비정치인 출신인 류 실장은 박 전 대표를 맡았다.

류 실장은 취임식 직후인 지난 달 26일 박 전 대표를 찾아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정치적 동반자라 생각한다”며 문단속을 했다.

박 전 대표가 상황초기 자신의 손발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의 약속을 믿는다”고 했던 것도 류 실장 방문의 영향이 컸다.

영남권 사람 대폭 물갈이 뒤 박 전 대표는 “이렇게 기준 없는 공천은 처음 본다”면서 “믿음이 깨진 것 아니겠느냐”고 뒤늦게 땅을 쳤다.

이들 외에도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과 정두언·박형준 의원이 물밑에서 움직이며 당 상황을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엄호성 의원은 “결국 이 총장과 이재오·정두언 의원 같은 권력실세들이 만든 시나리오 아니겠느냐”면서 “우리 쪽의 반발과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까지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이’계가 주도한 한나라당 공천과정은 ‘친박’계의 날개를 꺾는 데는 일차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본질적 목표인 총선승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회권력 접수’란 청와대 의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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