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기관·단체장들 “나 지금 떨고 있니”

지난 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은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기관·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유 장관의 한마디는 공기업은 물론 정부산하 기관 및 단체장들의 사퇴를 암시하며 정치적 파장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기관·단체장들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문제의 발언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전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이명박 정부’의 압박을 받으며 임기를 채우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새 정부의 사퇴압박 강도가 높아지면서다.
여권 관계자들은 “지난 13일 청와대와 정부는 각 부처 업무보고 때 이전정권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면서 “사실상 물러날 것
을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정부 부처의 거듭되는 공개사퇴압박에도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체장들이 ‘버티기'로 나오는 데 대한 대응카드로 풀이된다.
“대폭 보은인사 예고”
이어서 유 장관은 14일 강원도 춘천 도시첨단문화산업단지 내 스톱모션스튜디오에서 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업무를 보고했다.
이 자리엔 문화부 11개 소속 및 34개 산하기관장 중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외엔 모두 불참했다.
이에 따가운 시선을 느낀 문화부는 우신영 대변인을 통해 “노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을 참석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현지 업무보고장소가 좁아 문화부 본부실 국장, 문화재청장,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20여명이 회의에 참석했고 나머지 산하기관장은 모두 배제됐다"고 밝혔다.
이날 업무보고 참석치 않은 대표적인 사람은 노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전 문화부차관)과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전 국정홍보처장) 등이다.
오 사장은 2007년 11월 임명돼 2010년 11월에 임기를 마칠 예정이다. 또 정 사장은 2006년 5월 임명돼 2009년 5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다.
이번 새 정부 입장이 전달된 만큼 참여정부 출신 다른 공사와 기관들의 부서 처장들도 업무보고 때 참석이 힘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대해 김효석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여권이 이전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을 몰아내려는 건 집권의 공을 세운 인사들에게 자리를 주려는 노골적인 보은인사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전정권의 기관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겨냥, “문화계의 계엄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종필 통합민주당 대변인 역시 “지난 5년 동안 코드인사라고 비난했던 당이 한나라당이다. 이제와 인적청산을 주장하는 건 신 공포정치와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드는 사람 잡아내라”
그렇다면 유 문화부 장관이 왜 이 같은 일에 앞장섰고 있을까. 여러 해석들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유력한 시각은 문화부가 다른 부처보다 산하기관 및 단체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친노’세력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자연히 이 대통령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 수가 적잖다는 견해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강압적인 면을 줄여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지지자는 “공기업과 정부산하 기관·단체엔 정치적 자리와 전문적 자리가 있다”면서 “전문적 자리는 임기를 보장하되 정치적 자리에 한해 용기 있게 물러나도록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에 바짝 긴장
공기업과 정부산하 기관 단체 사람들은 유 장관의 ‘인사발언’에 매우 불안한 표정들이다. 특히 지난 11일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또 4월 들어 기획재정부가 할 경영평가결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경영실적이 부진할 땐 임기가 보장된 임원이라도 해임할 수 있다고 돼있다.
‘친노’ 기관·단체장들의 배제는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나는 26일까지 이어질 전망이어서 폭풍전야 같은 흐름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송효찬 기자 s250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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