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 최대 변수

4월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정가 여기저기서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각 당 공천심사위원회가 내놓는 결과를 놓고서다. 당내 파열음 또한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원칙을 앞세운 공심위 활약에 각 당 지도부도 속수무책이다. 민심이 박수를 보내는 상황에서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다. 리더십이 휘청대는 모습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준비해왔던 각 당의 선거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의회권력 접수’란 꿈은 물 건너간 지 오래됐다. ‘여소야대’ 정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만 커지는 상황이다. 총선판세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공천 파동’속으로 들어가 봤다.
‘공천파동’ 후폭풍이 4월 총선판도를 뒤바꿔놓을 조짐이다.
각 당마다 공천확정자 명단이 발표되면서 더욱 노골화 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한선교·이규택 의원 등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현역의원들이 공천에서 떨어지면서 전운을 고조시켰다.
박 전 대표는 공심위 결정에 ‘정치보복’ ‘표적공천’이라며 자택 칩거에 들어갔다. 영남권 공천결과에 따라 당이 깨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친박’진영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나돌던 숙청작업이 시작됐다”면서 “영남권 공천을 지켜봐야겠지만 중대결심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쪽에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심위가 표적을 정해놓고 움직인다는 얘기들도 나돈다.
대대적 ‘물갈이’ 예고
통합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칙을 강조한 박재승 공심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홍업 의원, 설훈 전 의원 등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 심사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안희정씨도 그랬다. 그는 공천기준에 못 미쳐 출마의 꿈을 접어야 했다. 총선전략을 지휘했던 신계륜 사무총장까지도 공심위 기준에 걸려 넘어졌다.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DJ쪽 일부 인사들은 ‘무소속출마’라도 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각 당 공심위 분위기로 볼 때 예고됐던 ‘물갈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정치신인들을 대거 공천한 데 이어 영남권공천에서도 대폭 바꿀 것으로 보인다.
통합민주당 공심위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세인 호남권에서 ‘공천혁명’을 꾀해보겠다는 의지다. 당초 얘기됐던 30%를 넘어 50% 안팎이 거론되고 있어 해당 의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국민여론 급반전
연이어 ‘메가톤급’ 공천결과를 내놓는 공심위 활동에 지도부들도 고민이 적지 않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친박’ 인사들의 공격에 답할 말을 잃으며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공천탈락자들은 강 대표를 공심위와 함께 규탄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자신을 도와줬던 신 사무총장과 이호웅 의원, 설 전 의원 등이 공천심사에서 발목이 잡히자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드러내놓고 불만을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귀띔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공심위 활동에 박수를 보내는 터라 지도부가 대놓고 쓴소리를 못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최근에 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통합민주당이 금고이상의 형 확정 정치인들을 공천심사에서 제외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응답자의 88.5%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공천혁명이 민주당의 총선결과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도 절반에 가까운 49.4%에 이르렀다.
‘친박 진영’ 중대 결단설
양당의 공천폭풍은 이번 총선의 물줄기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있다. 정치권에선 공천심사에서 낙마한 많은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나가 ‘친정 당’과의 경쟁을 불사할 것이란 데 주목한다.
통합민주당에선 이용희 국회 부의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설훈·이정일 전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을 요구한 박지원 전 실장, 김민석 전 의원 등도 상황에 따라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부의장은 “무소속 여부를 떠나 반드시 국회로 가서 본때를 보이겠다”며 재출마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도 공천에서 밀린 ‘친박’진영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무소속들의 ‘힘’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영남권에선 적잖은 중량급 인사들이 무소속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최종 공천결정이 나오는 대로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어서 각 당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구도가 무소속에게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라고 전망하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한나라당과 청와대 지지율이 쳐진데다 통합민주당도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지역에 따라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이 예상 된다”고 점쳤다. 자칫 무소속 출마자들이 4·9총선판을 휩쓸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선진당 ‘이삭줍기’ 관심
각 당의 선거전략 또한 ‘공천파동’으로 급변하고 있다.
연초까지만 해도 200석 이상 확보를 꿈꿨던 한나라당은 기세가 크게 누그러졌다. 공심위 활동에서도 통합민주당에 기선을 제압당해 ‘여소야대’ 정국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회 과반수 의석도 위태롭다”는 게 한 당직자의 예견이다.
강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가 ‘친박’ 진영 껴안기에 나선 것도 위기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근 통합민주당의 ‘공천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마련에도 나섰다.
‘저승사자’로 불리는 박 공심위원장의 활약으로 모처럼 호재를 만난 통합민주당은 ‘부활’의 기미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천탈락자들의 무소속출마를 최소화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당을 떠나지 않도록 설득하는 모습이다.
손 대표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미안함을 전하고 있는 것도 그 흐름에서다.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은 은근히 양 당의 공천파동을 즐기는 눈치다. 선진당은 두 당의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유능한 인재들이 입당을 원할 경우 문을 적극 열겠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이삭줍기 성과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각 당의 치열한 공천싸움과 양 당의 표 대결에서도 어부지리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친박’ 진영 마지노선은 어디?
박근혜 전 대표가 측근들의 공천탈락 뒤 이례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박 전 대표는 이규택·한선교 의원 등이 공천에서 떨어진 데 대해 “단지 나를 도왔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며 ‘표적공천’임을 주장했다.
이례적으로 모든 공식일정을 접고 자택칩거에 들어간 것도 탈당 등 중대 결단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영남권 공천심사와 관련, 공심위에 보내는 무언의 ‘압박’으로 보는 시각도 없잖다.
‘친박’진영 인사는 “영남권 공천이 결국 최후 관건이 되지 않겠느냐”며 “김무성·유승민·이강두 의원 등이 공천에서 배제된다면 박 전 대표로서도 당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에 수시로 모여 공천결과를 놓고 대책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강경론자들은 “뭔가 조직적인 행동을 보여야할 때”라며 박 전 대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천에서 배제된 이규택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칩거에 들어갔다”면서 “일단 재심청구를 했으니 최고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의 약속을 믿는다던 박 전 대표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발휘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공천 파문’에 DJ도 화들짝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심위원장으로부터 시작된 ‘공천파동’이 동교동계도 뒤흔들어놨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수족과 같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 차남인 김홍업 의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동교동계 막내인 설훈 전 의원 등이 공천에서 제외됐다.
당 통합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DJ를 비롯해 동교동계는 공천배제결정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DJ는 이와 관련, 곧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권의 현역의원들에 대한 당의 대대적인 물갈이 예고도 동교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신진인사들이 대거 발탁될 경우 DJ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선 DJ가 공천심사에 불만을 두러내며 호남지역에 동정여론을 확산시킬 경우 통합민주당의 선거전략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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