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朴계, 박근혜 대결심 압박

한나라당에 이상기류 조짐이 보인다. 특히 공천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의 초조함은 이를 데 없다. 대부분의 현역의원들이 1차 심사는 통과했지만 최종 낙점 가능성은 미지수다. 서울과 수도권은 예상했던 대로 이명박 대통령계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영남권에서마저 밀린다면 7월로 예정된 당권장악도 낙관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초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박 전 대표 쪽은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동향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배 수 압축과정에선 계파안배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 하지만 최종 공천작업 땐 박 전 대표 쪽 사람들이 대거 ‘피바람’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추측되면서 긴장감은 날로 높아지는 분위기다. ‘친박’진영 일각에선 박 전 대표의 중대결단을 촉구하는 압박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더 이상 밀리면 끝장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사느냐, 죽느냐 생존이 걸린 문제다.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다.”
2차 공천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친박’진영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칼자루를 쥔 공천심사위원회가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2차 심사를 통해 본격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1차 단수확정지역에서 살아남은 인사들은 대부분 핵심 ‘친이’인사들이었다. 반면 ‘친박’인사들은 2~3명 안팎의 ‘친이’인사들과 함께 2차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유일하게 생존을 약속받은 사람은 박 전 대표 한 사람 뿐’이란 얘기까지 나돈다. ‘친박’계 사람들이 그만큼 절박한 입장이다.
“호남은 바꾸는데 영남 쪽은…”
박 전 대표 쪽의 긴장감이 높아진 데엔 여러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이 ‘호남권 현역의원 30% 물갈이’를 천명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영남권 현역의원들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
여론조사 반영비율 역시 ‘친박’의원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친박’계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30%만 반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여의도연구소가 배제된 가운데 여론조사를 할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도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친박’진영의 영남권 3선 의원들 실명이 공천탈락 리스트에 올라있는 등 정가 분위기가 흉흉하기만 하다. 애초부터 복수로 압축되는 2차 과정을 거칠 뿐 각본은 미리 짜여져 있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인물 비중도 있고 아무리 제대로 공천신청을 해도 헛일이란 것이다.
당 안팎에선 ‘친박’그룹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과 이강두 의원, 핵심참모인 유승민 의원 중 한 명이라도 낙마한다면 전체 진영에 미치는 파장이 적잖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사정에 밝은 한 당직자는 “원래는 ‘친박’인사들 상당수가 물(?)을 먹을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지만 내각인선 실패 등으로 청와대쪽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멈칫한 것으로 안다”면서 “결국 칼자루를 쥔 공심위 쪽에 다시 공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양날의 칼 ‘이상득 논란’
이상득 국회 부의장 공천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친박’진영에겐 위기감을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당내 소장파 사이에선 이 대통령 친형이자 70대에 5선 의원인 이 부의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공심위 외부 인사들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이 부의장은 “나이가 공천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반박하며 “공천은 나이가 아닌 비리연루 여부, 당 기여도, 의정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 부의장의 공천여부 문제는 ‘친박’진영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당과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건 사실이나 그의 용퇴는 ‘친박’계 중진들을 물 먹이는 명분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친박’진영 대변인격인 이혜훈 의원(서울 서초구 갑지역)이 지난달 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의장이 대통령 형이라고 갑자기 국회에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 기여도가 높고 경험도 풍부한 분 아니냐”며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낸 것도 그런 고민의 단면을 보여줬
다.
일각 ‘밀약설’ 모락모락
‘친박’진영은 공천결과와 관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공천결과가 최종 나올 것으로 보이는 10일까지는 외부목소리를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심위 심사가 진행 중인데다 내각인선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질타로 청와대 입지가 약해지고 있어 먼저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것.
‘친박’계 인사는 “새 정부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당내 갈등까지 부른다면 국정운영지지율이 곤두박질칠 것이다. 자기사람 몇명 살리자고 과연 모험을 하겠느냐”면서 “김무성 의원 논란으로 우리는 단체행동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친박’진영 안에선 “공천탈락 때 분당을 감수하고서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유승민 의원 등 ‘친박’진영 인사들이 장관내정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못잖은 맹공을 펼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박 전 대표도 여러 통로를 통해 최악의 상황발생 때 중대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가 일각에선 ‘친박’계 핵심인사 20여명의 이름이 공심위에 전달됐고, 이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최종 낙점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이 취임식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박 전 대표를 방문,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정치적 동반자라 생각한다”고 전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분당 불씨’
양쪽이 ‘동반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공천과정에서 박 전 대표 쪽 지분이 보장돼야만 한다.
그 약속이 깨진다면 원칙주의자를 자처하는 박 전 대표로선 ‘제3의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분당 불씨’는 3월 중순을 기점으로 중대기로에 설 전망이다.
공천과정에서 ‘친박’인사들이 얼마나 살아남느냐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정치행보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영남권 친박 사람들을 데리고 무소속으로 나온다고 해도 최소한 국회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면서 “이를 잘 아는 이 대통령 쪽이 공천에서 쉽게 칼자루를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친박’진영의 핵심인 유승민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없고 문제 있는 정책이 한반도 대운하사업과 영어몰입교육”이라며 이 대통령의 최대공약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공천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동지에서 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최종 공천결과를 놓고 양쪽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가운데 공심위가 과연 어떤 결단을 꺼내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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