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피의 숙청’ 시작할까

각 부처 장관 인선을 둘러싸고 여야 공방이 뜨거워지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MB)의 인사개편과 더불어 정치보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엔 ‘사정(司正) 회오리바람’이 예고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대선 때의 BBK의혹과 관련, 한나라당 고소·고발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정봉주·김현미 의원이 검찰에 소환통보를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한나라당은 관련자들에 대해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코너에 몰리자 구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선 MB의 정치보복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아울러 한나라당이 정권장악을 노려 ‘노무현 사람’ 숙청작업에 나설 것이란 얘기도 나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이 김대중(DJ)·노무현 정부의 핵심비리 규명을 위해 은밀히 준비 중이란 소문이 나돌아 눈길을 끈다. 의혹규명은 과거청산과 정적숙청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더 없이 좋은 수단인 까닭이다.
MB정부의 인사정책을 ‘고소영’이라 부른다. 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인맥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정보원장에 경남 남해 출신의 김성호 전 법무장관을 임명하자 인사정책이 영남출신에 쏠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임채진 검찰총장(남해), 어청수 경찰총장(진주), 청와대 이종찬 민정수석(고성) 등도 영남출신이어서 연일 시
끄럽다.
같은 사정라인인 김경한 법무부장관 내정자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김강욱 민정2비서관은 안동이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이 당선되면 호남인맥이 대폭 물갈이될 것이란 추측들이 나왔다. 최근 이뤄진 사정라인을 보면 읽을 수 있다.
지난 정부 의혹규명이 목적
그렇다면 정적숙청설이 과연 현실로 나타날까. 정치권에선 현실화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보복 성격의 숙청작업이 관례화 돼왔던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비리의혹규명’으로 포장돼 왔을 뿐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구여권의 한 인사는 “어떤 식으로든 정적제거는 이뤄질 것이다.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면서 “특히 DJ정부 때 그냥 넘어간 의혹들이 많아 의혹규명작업이 선행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인사말대로 정적제거작업이 이뤄진다면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의혹규명’과 ‘개인비리조사’다. 개인비리는 탈세, 투기, 비자금조성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 봉하마을 조성비용 의혹조사설 등도 그런 맥락이다.
이와 함께 새 정부가 DJ·노무현 정부 관련의혹들을 은밀히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나라당도 △외환위기 후 은행과 각 기업 등의 공적자금 사용액, 회수 △DJ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대북지원사업 △노 대통령 측근비리의혹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떨고 있는 구 여권인사들
이런 가운데 공적자금으로 들어간 168조4000억원 중 회수가 어렵다고 보이는 돈의 행방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올 1월 재정경제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공적자금 손실예상액은 약 69조원에 이른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입도 공적자금 의혹규명 때 다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김재록 게이트’ 등도 마찬가지다.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정치권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이 부분을 집중 캐내기 위해 상당부분 조사를 벌였다’는 얘기가 나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안정되면 노 전 대통령 측근비리를 정적 제거도구로 쓰일 확률이 높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도 느슨하게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부분은 명쾌하게 드러난 게 없는 만큼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최근 특검주변에서 이를 따로 조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5년 전 노 전 대통령 취임 뒤 DJ정부 때 대북사업을 이끌었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조사를 받고 옥살이까지 했던 전례가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다.
DJ·노 정부를 동시에 겨냥하는 부분도 있다. 대북사업의혹이 그것이다.
새 정부는 대북협력기금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조5400여억원이 쓰인 남북협력기금은 그 규모가 적잖다.
이 기금은 시민단체 등이 꾸준히 문제점을 제기했으나 한 번도 실상이 드러난 적 없다.
이에 따라 사정당국이 지난 10년간의 협력기금운용 내역 등을 집중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협력기금은 MB정부가 국정과제로
발표했을 만큼 빠른 시일 내 진상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검찰, 경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은 물론 청와대, 법무부까지 총동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도 예견된다.
이처럼 10년간 여러 비리의혹들이 쌓여 있어 새 정부는 정적제거차원에서 다양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MB정권이 과거 비리의혹들을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갈지 주목된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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