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움직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 움직이고 있다”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8-03-05 09:15
  • 승인 2008.03.05 09:15
  • 호수 723
  • 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공천 내홍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후보자 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공천심사 채점표 공개를 요구하며 공천심사위원회를 빗댄 금붕어를 전시하고 있다. 이들은 공심위를 '입만 뻥긋하는 금붕어'로 규정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 탈락자들이 늘면서 불협화음도 커지고 있다. 여의도정가가 연일 시끄럽다. 대다수의 탈락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공천심사위원회 심사에 문제가 적잖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박근혜 계’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다. 일부 인사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다”며 공천심사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지자들을 동원, 중앙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기본이고 분신자살 시도 같은 충격적 수단까지 쓰고 있다.

몇몇 탈락자들은 공심위 심사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힘’이 배후에 있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일부는 폭발직전이다. 한나라당 주위를 배회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추적했다.

“이명박 대통령(MB)과 가까우면 다른 조건은 다 무시돼도 되나!”

경북지역에서 출사표를 던졌지만 1차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A씨는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다.

공심위가 당 활동 및 충성도, 평소 지역 활동, 전문성, 참신성 등을 심사 잣대로 내세웠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공심위가 이 대통령의 대선승리에 공이 큰 D씨를 공천하기위해 다른 유력후보들을 1차에서 걸러냈다는 것.

더욱이 D씨는 당초 다른 지역구출마를 준비하다 이곳에 나와 공천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소리가 적잖다.


“이용만 당한 뉴라이트”

공천결과에 분통을 터뜨리는 건 탈락자들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도 “지금처럼 공천하면 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나도 다른 당에서 더 좋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를 찍겠다”고 공천 진행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당을 위해 헌신했던 당원협의회위원장들이 1차 공천과정에서 떨어지는가 하면 갑자기 1∼2주 전 줄을 타고 내려온 사람은 통과했다”면서 “이 대통령 쪽과 박 전 대표 쪽 모두 책임이 있지만 이 대통령 쪽 책임이 더 크다”고 질타했다.

당 공천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반발행태도 갖가지다. 경남 김해시 갑 선거구에서 공천을 신청했던 허점도 예비후보는 예심탈락소식이 알려진 뒤 중앙당사 앞에서 분신을 꾀하다 연행됐다. 그는 “뉴라이트 진영 후보들 대부분이 이용만 당하고 물을 먹었다”고 울분을
털어놨다.

기자회견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이의신청서를 통해 공심위 심사를 문제 삼는 이들도 많다. 충청권에 출마했다 1차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J씨는 “내 학력을 허위로 판단,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공천자를 정해 놓고 다른 후보들을 억지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천탈락자들 대부분은 심사과정이 불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 기여도와 지역공헌도 등을 고려할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


“각본 짜여진 형식적 절차”

이들은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에 출사표를 던진 MB쪽 인사들 대부분이 지역여론과 상관없이 1차 심사를 통과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청와대 개입설을 지목한 것이다.

수도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탈락자들은 “친MB계 가운데서도 최측근이거나 확실한 라인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았다”면서 “대선에서 공을 세웠다고 해도 힘없는 ‘친이’계 사람은 토사구팽 당하기 일쑤였다”고 분노했다.

대구지역에서 떨어진 한 인사는 “면접심사를 끝내고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아 심사결과가 나오더라”면서 “각본이 짜여진 형식적 절차였을 뿐”이라고 흥분했다. 살생부가 나도는 것도 그런 맥락이란 견해다.

일부 탈락자들은 권력실세인 한 인사가 일부 사람들에게 ‘밀실공천’을 약속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공천 잡음은 2차 심사 결과 이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공심위 내부갈등은 공천 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민주·선진당도 ‘공천 잡음’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도 본격 공천심사에 들어가며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천명한 ‘호남물갈이 30%’론이 핵심쟁점이다. 공심위 관계자는 “호남지역 의원들을 A, B, C, D등급으로 나눠 하위 25%인 D등급을 떨어뜨린 뒤 쇄신의지를 더하는 차원에서 5%를 추가할 것”이라고 탈락 폭을 설명했다.

전북에서 3곳, 광주·전남에서 6곳이란 구체적 수치까지 나오면서 지역정가가 들썩이는 모습이다. 현역의원들 사이에선 “객관적 기준이 사라진 여론몰이 식 물갈이”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비리연루자들에 대한 기준적용도 논란거리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신계륜 사무총장, 이호웅 전 의원 등을 놓고 강경론과 온건론이 팽팽하게 맞서있다.

자유선진당에선 비공개신청자명단이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 달 28일 1차 공천신청을 마감한 가운데 신청사실의 비공개를 요청한 사람이 30여명에 이르렀다. 한나라당(13명), 민주당(7명)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정계 일각에선 한나라당공천에서 떨어졌거나 탈락가능성이 높은 일부 사람들이 비공개로 선진당 문을 두드린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