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최규선<유아이에너지 대표>, MB 에너지정책 핵심 급부상

최근 원유개발 등 자원개발사업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지역 석유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라크북부 쿠르드스탄지역에서 17억 배럴 규모의 석유를 추가 확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쟁력특별위원회 하찬호 전문위원(전 주 이라크 대사)은 지난 2월 19일 “최근 쿠르드 자치정부와 17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유전지분을 넘겨받기로 합의했다”면서 “14일 석유공사 등이 참여한 한국컨소시엄이 쿠르드 상가우 유전 등 4곳에서 확보한 13억 배럴을 합하면 2월 한 달 간 쿠르드에서만 30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한 셈”이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쿠르드지역 내 40개 유전의 쿠르드정부 지분 중 10%씩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석유공사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은 본 계약을 두 달 안에 맺게 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성과라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외유전개발사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지만 최근 양해각서(MOU)를 맺은 쿠르드지역은 불확실성이 높고 생산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려 탐사광구 확보만으로 자주 개발률을 높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여기에 최규선씨가 이 사업에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일부에선 불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선 제2의 오일게이트가 터질 수도 있다며 이번 사업을 주시하고 있다. <관련기사 70~71면>
쿠르드자치정부와 계약이 이뤄질 경우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원유량은 17억 배럴이다. 우리나라가 2년 쯤 쓸 수 있는 분량이다.
하 전문위원은 MOU를 맺은 사실을 밝히면서 “우리 건설업체들이 주도하는 쿠르드 인프라 구축사업 규모도 2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규모가 커진 것은 처음 합의한 4차로 고속도로건설사업 외에 발전소(100만㎾급), 상·하수도 시설, 학교 등을 쿠르드정부가 추가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라크 자극 경제파탄으로
그러나 이 사업이 이뤄지려면 이라크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그렇잖으면 이라크의 원유공급이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라크는 지난해 쿠르드자치정부와 유전개발계약을 맺은 SK에너지에 대해 자신들 승인 없이 불법 계약했다며 원유공급을 중단했다.
이 사업에서 이라크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건 쿠르드지역이 터키, 이라크, 쿠르드가 맞물리는 분쟁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이번 계약은 이라크의회에 계류 중인 석유법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우리 정부와 이라크정부 사이에 외교마찰이 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MOU체결소식이 전해지자 참여연대는 지난 2월 15일 “이라크 종파 간 석유갈등을 무시한 채 쿠르드자치정부와 일방적으로 맺은 계약이란 점에서 섣불리 자축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이라크석유법 개정안은 외국기업 진출허용범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간의 석유분배권 문제 등을 놓고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석유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한국정부가 쿠르드자치정부와 맺은 계약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
했다.
외교전문가들은 지금대로 계속 일이 이어지면 참여연대의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석유파동과 함께 국내경제는 파탄날 것이란 분석이다.
이라크와 쿠르드의 갈등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석유를 둘러싼 양쪽 갈등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와 쿠르드는 수년전부터 외국회사에 석유채굴권을 나눠주는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이는 국제석유시장의 큰 골칫거리다.
엄청난 피해 불 보듯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지난해 11월 SK에너지와 석유공사, 몇몇 국내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결성해 쿠르드 바지안광구에 대해 생산물 분배계약을 맺었다. 바지안은 하 전문위원이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곳과 같은 지역이다.
그 때 한국기업은 이라크와 쿠르드가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양쪽 조율도 없이 쿠르드와 계약을 맺었다. 이 일로 분개한 이라크중앙정부는 1차로 SK에너지에 구두 경고를 했다. 하지만 SK는 빨리 대응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라크는 올 1월부터 실력행사에 나서 계약 당사자였던 SK에너지에 원유공급을 중단해 버렸다. 이로 인해 SK에너지는 훨씬 비싼 값으로 현물시장에서 부족분을 사다 메우는 사태를 맞았다.
이라크는 한국기업들이 계속 쿠르드지역에서 석유개발사업을 지속하면 아예 우리나라에 대한 원유수출을 통째로 멈추겠다고 경고해놓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쿠르드와의 계약을 적극 추진해 눈길이 쏠린다. 이라크가 우리나라에 원유수출을 멈추면 한해 도입량의 5% 이상이 부족해져 국내 경제가 위협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번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쿠르드자치정부 총리와 사업에 관해 대화를 나눴으니 이제 이라크 반응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이라크가 우리에 원유수출을 중단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MB의 상식 밖 외교
이라크가 반대하는 이상 쿠르드지역 석유를 채굴한다 해도 운반 역시 쉽지 않다. 이라크중앙정부 관할의 송유관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쿠르드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의 송유관 배치도를 보면 이라크 내륙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나갈 수 있는 길은 3군데다. △이라크 전략송유관을 거쳐 걸프만과 이어진 바스라항을 통한 수출 △시리아-요르단 송유관을 이용 △터키 경유 송유관
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라크중앙정부와 외교마찰을 빚게 되면 이라크가 관할하는 걸프만과 시리아-요르단 송유관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터키 경유 송유관이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이용이 쉽지 않다. 쿠르드와 터키가 외교상 앙숙관계란 이유에서다. 터키의회는 쿠르드반군 진압을 위해 이라크북부에 대한 군사작전을 승인, 양쪽 간에 분쟁이 일기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쿠르드와 손잡을 경우 이라크는 물론 터키와의 관계도 위험하다는 것. 터키는 K-9 자주포와 XK-2 흑표 차기전차 등 국산무기시장의 가장 큰 소비자 중 하나다. MB가 이번에 쿠르드와 손잡은 이상 두 나라 간에도 이상기류가 생길 확률이 높다.
쿠르드와의 계약은 미국의 차기대통령이 한일 양국의 정세를 무시한 채 일본과 동해 해저자원개발 계약을 맺은 것과 같은 경우다.
쿠르드와 계약 최규선이 주선
이런 악조건이 있음에도 MB는 이 계약을 왜 추진한 것일까.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선 최규선씨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이번 MOU체결에 숨은 다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권력비리사건인 ‘최규선 게이트’로 세상을 뒤흔든 그가 어떻게 MB와 연결됐는지 그 과정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마당발인 그가 폭넓은 인맥을 활용했을 것이란 추측만 떠돌 뿐이다.
그가 다시 정권 핵심부와 연결되건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최규선 게이트’로 복역 중이던 2003년 옥중에서 유아이앤씨란 회사를 세운 뒤 그해 10월 건설사업을 통해 쿠르드에 진출, 화제를 낳았다.
그 뒤 그는 자신의 마당발인맥을 활용, 쿠르드 고위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활용한 인맥은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이다. 존스 전 회장은 최 씨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대신해 쿠르드인사들을 만나고 현지에 수차례 다녀오며 쿠르드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최씨는 지난해 유전개발사업에 나서면서부터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는 2006년 자원개발업체인 유아이에너지를 인수, 지난해 초부터 쿠르드지역 석유채굴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유아이에너지가 석유사업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사업신뢰성을 낮게 평가했다.
최씨는 이런 인식을 없애기 위해 주변의 거물급인사들을 유아이에너지로 끌어들였다.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앤서니 레이크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솔라즈 전 미 하원의원, 로버트 스칼라피노 UC버클리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특히 솔라즈 전 의원과 스칼라피노 교수는 지난 1월 4일 이명박 당선인이 미국 유력인사들과 접견할 때 동석했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쿠르드유전사업을 MB에 제안하고 이를 계기로 최씨를 MB와 연결시켰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밖에도 쿠르드는 ‘이번 계약에 최씨가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에 유전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 안에서 그의 입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하면 외교라인부재가 아킬레스건인 MB가 최씨 주변의 유력인사들이 전
하는 도움말에 솔깃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라크 “한국·쿠르드 유전 계약은 인정 못해”
이라크중앙정부가 한국컨소시엄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지난 2월 14일 체결한 유전개발관련 양해각서를 사실상 무효로 규정했다.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양국의 극적인 화해 없이 이대로 간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자랑하는 첫번째 ‘자원외교’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 석유부의 아심 지하드 대변인은 지난 2월 22일 “쿠르드 자치정부와 한국컨소시엄에 대해 통보를 받지 않았다. 이라크정부는 쿠르드자치정부와 외국회사가 맺는 어떤 계약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지하드대변인은 “한국과 쿠르드 자치정부는 한국컨소시엄을 발표했지만 양쪽 정부 어느 쪽도 이번 MOU체결 전 이라크정부에 승인을 문의해 온 바도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변인은 이틀 전에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어떤 다른 나라도 바그다드 중앙정부와 관련부처를 통해 에너지개발을 하는 게 원칙임을 강조한다”고 말한 바 있어 한국정부가 이라크를 무시하고 MOU를 강행한 모양새가 됐다.
한국컨소시엄과 쿠르드자치정부의 계약체결은 현 정부가 아니라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의 ‘투자유치TF’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이라크정부는 중앙정부의 승인이나 협의를 거치지 않고 쿠르드자치정부와 외국 기업이 이라크의 에너지개발과 관련해 맺은 계약은 불법이며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에 쿠르드 유전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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