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특검’, 에리카 김 마지막 승부수에 관심 집중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의 여러 의혹들을 수사 중인 정호영 특별검사팀 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BBK사건의 수사결과다.
김경준(42.구속 기소)씨를 수차례 불러 조사 중인 특검은 지난해 그가 검찰에서 조사받았을 때 검사의 회유ㆍ협박이 실제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8일 소환돼 조사를 받으며 이명박 당선인과 BBK사건을 수사했던 중앙지검 검사들과의 대질신문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어 이틀 뒤인 31일엔 ‘소환조사 대질신문 대상자 명단’을 작성, 특검팀에 냈다. 김씨는 또 검찰의 회유·협박 의혹과 관련, 김씨가 ‘추가증거’라고 주장하는 자료를 내기로 했지만 아직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 증거는 검찰수사가 진행될 때 김씨 누나인 에리카 김(43)과 김씨 변호를 맡았던 오재원 변호사 간의 국제전화 통화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주변에선 김씨의 이런 행동에 에리카 김이 얽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에리카 김이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게 그 근거다. 그의 ‘동생구하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그 궁금증 속으로 들어가 본다.
‘BBK사건’의 핵심인물 중 한명인 에리카 김이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그는 지난 12월 대선 직전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한 달이 넘도록 칩거해왔다. 하지만 미국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에리카 김은 자신의 법률사무실에 출근하는 등 밖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주변인들과의 접촉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에리카 김은 검찰에 의해 ‘BBK사건’에서 김씨와 공모한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다. 또 검찰은 김씨를 상대로 미국정부에 ‘범인인도요청’을 청구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11일 최재경 서울지검 특별1부장은 “범죄인 인도청구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에리카 김은 한국 검찰소환에 대한 주변 인사들의 우려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소환 움직임에 두려워했던 예전과 퍽 다른 모습이다.
다시 움직이는 에리카 김
이에 대해 미국 한인사회에선 에리카 김이 당당해진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의 범인인도요청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실제론 요청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만약 검찰이 ‘범인인도요청’을 했을 경우 빠르면 지난 12월 말, 늦어도 1월 중순께는 요청서가 미국 사법당국에 도착돼야 한다. 청구서작업은 통상 7~10일 쯤 뒤에 끝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아직껏 아무 소식이 없다. 에리카 김이 “그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김씨 회유·협박의혹이 특검수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그 사실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씨 변호인인 박찬종 변호사는 이 당선인 등 대질신문이 필요한 사람들 명단을 작성, 특검팀에 냈다.
김씨 쪽이 지목한 대질신문대상은 6명이다. △이 당선인 △BBK공동설립자인 오유선씨 △이 당선인의 최측근인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 △이 당선인이 LKe뱅크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 비서로 일해 온 이진영씨 △김씨 변호를 맡았던 오재원 변호사 △김씨를 조사했던 김기동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등이다.
이와 더불어 김씨는 검찰수사가 진행될 때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과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오재원 변호사 간의 국제전화 통화내용을 담은 녹취테이프를 검찰에 낼 계획이었다. 이 테이프엔 통화 때 에리카 김이 한국검사들이 관행적으로 피의자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 묻는 것과 오 변호사가 이에 대해 설명한 내용들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김씨 쪽으로부터 자료와 명단을 받아 확인한 다음 수사검사를 불러 김씨와 대질신문을 벌일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테이프는 아직 제출되지 않고 있다.
이 대화녹음이 있다면 특검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에리카 김은 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의문을 낳고 있다.
이에 일부에선 ‘에리카 김이 자신의 소환문제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특검 승부수는 무엇?
에리카 김 주변에선 그가 밝히지 않은 사안에 대해 공개 기자회견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2개의 항소심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될 경우 검찰의 ‘범인인도요청’이 정상대로 집행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법정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리카 김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란 얘기다.
지난해 11월 16일 자신의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면허를 반납한 에리카 김은 김씨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힘쓰다 이명박 당선인의 BBK연루의혹, 검찰의 회유·협박 등 무수한 의혹들을 뒤로한 채 대선직전 돌연 잠적했다.
또 그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검찰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무섭고 두렵다”고 심정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세간엔 에리카 김이 ‘동생 구하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지금 미국 한인사회에선 ‘에리카 김이 경우에 따라 특검을 향해 승부수를 던질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대조적이다.
에리카 김은 주변인들에게 “밝히지 않은 모든 것을 꺼내서라도 진실의 실체를 밝히겠다”며 동생구출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에리카 김이 이 같은 속내를 드러내자 한편에서 ‘그가 지난 검찰수사 때처럼 변죽만 울리다 끝날 것’이란 얘기도 나돈다.
그러나 에리카 김이 지난 검찰수사 때와 같은 상황을 또 다시 되풀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검찰수사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난해 검찰수사 때 에리카 김은 김씨 부인 이보라씨와 다른 증언을 하는가 하면 기자회견에 이씨만 모습을 드러내는 등 평범한 가족 사이가 아님을 보였다.
뭔가 껄끄러운 점이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 검찰에 낸 서류도 수사결과 이 당선인과 연관성이 희박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서류에 찍힌 도장이 이 당선인의 실제 사용도장과 다르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강력한 증거라고 믿었던 서류가 한순간 무용지물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에리카 김과 그 가족들 모두가 사기꾼으로 전락해 버렸다. 졸지에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어 에리카 김은 검찰이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며 자신을 회유·협박했다는 김씨의 메모를 공개했다.
하지만 에리카 김은 이 일로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검찰은 이를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맞받으며 이를 보도한 주간지와 담당기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또 이씨 가족들은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었는데 공연히 검찰을 자극, 오히려 일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며 그의 성급한 메모공개에 유감을 드러냈다.
이씨의 친정아버지(이두호 전 보건사회부 차관)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뜻하지 않게 공개된 메모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때 이씨는 친정에 전화를 해 “한글메모가 공개되는 바람에 우리 쪽에 유리했던 모든 게 이명박 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고 원망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에리카 김은 증거자료공개에 보다 신중한 자세다. 특검에 내기로 했던 자료 제출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그런 흐름일 수도 있다.
특검 ‘기획입국설’ 수사하나
한편 특검이 김씨의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를 뒤로 미루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검찰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최측근 인사가 김씨의 국내송환과정에서 김씨와 에리카 김을 직·간접으로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서 김 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 인사는 김씨가 입국하기 전 LA총영사관에 근무하다 최근 귀국, 김 원장의 오른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소식통에 따르면 이 인사는 에리카 김과 평소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했으며 김씨의 귀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 만약 이런 내용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기획입국설에 대한 특검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현지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은 김 원장의 최 측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씨를 면회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한달 전 미국 법무부에 김씨의 교도소 접견기록을 요청했다.
이 소식통은 또 “이 인사 외에 다른 국정원 관계자가 추가로 김 씨를 접촉했는지에 대해 검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미국법원은 김경준씨의 주가조작과 횡령사실을 인정하고 옵셔널캐피털 소액주주들에게 66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이명박 특검’ 수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법원은 2005년 김경준씨 쪽이 “회사를 함께 운영했던 이명박씨도 재판을 받을 책임이 있다”면서 이미 낸 제3의 피고신청을 소송당사자들과 합의 아래 기각했다.
특검은 미국 연방법원 판결문을 입수하는 대로 정밀검토 작업을 벌인 뒤 수사에 활용할 방침이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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