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름으로”에서 “아버지를 뛰어넘어”로
“아버지 이름으로”에서 “아버지를 뛰어넘어”로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8-02-13 11:22
  • 승인 2008.02.13 11:22
  • 호수 720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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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탄 분야별 출마자 집/중/해/부 정치인 2세들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근혜 · 정몽준 · 정대철 · 김홍업 · 노웅래 · 이종구 · 조순형 · 남경필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아들’은 영광이라기보다 오히려 멍에란 생각이 든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길을 갔거나 꿈을 접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은 자서전에서 2세 정치인들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놨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선 대통령의 자녀라도 능력이 인정되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꿈을 짓밟거나 포기토록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견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부인인 한인옥 여사도 단행본 <자식이 뭐 길래>에서 “정치하는 집안의 자녀들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 정치인의 후광으로, 아버지의 그림자로 살았던 점을 보아왔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지난 12월 17대 대선에 나섰던 이 전 총재는 1997년(15대)·2002년(16대) 대선에서 자식들의 병역기피의혹으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같은 흐름에도 정치권 문을 두드리는 정치인 자녀들의 도전은 끊임없이 거듭돼 왔다. 오는 4·9 총선에서도 그 행렬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기 위한 ‘홀로서기’ 몸부림이 거세다. 이번 총선에서 금배지획득을 노린 정치인 2세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 아들인 한나라당 김성동 전 부대변인은 서울 관악 을지구에 나섰지만 치열한 공천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의 차남 최제완씨는 부산 연제구에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아들이자 방송기자 출신인 박재우 씨는 부친의 만류에도 부산시 사하 갑지구 출마를 결심했다.


‘한승수 사위’ 출사표

2005년 작고한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이자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위인 김세연 동일고무벨트 대표는 부친의 지역구인 부산 금정구에 예비후보로
나섰다.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장제원 경남정보대학장은 부산 사상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도 정치인 자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일형 전 신민당 부총재의 손자이자 정대철 상임고문 아들인 정호준 전 청와대 행정관은 서울 중구에 다시 한 번 도전한다.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인 김영호씨는 민주당 후보로 서울 서대문 갑지구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반면 여건이 안 돼 뜻을 접은 정치인 자녀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김현철씨가 대표적이다. 당초 경남 거제시에서 한나라당 공천신청을 준비했지만 중도에 꿈을 접었다. 한나라당 당규는 금고이상 형을 받은 부패전력자들에 대해 공천신청을 금하고 있다. 김씨는 무소속출마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인 3세’ 시대 꿈틀

이미 전·현직 국회의원 중엔 부친의 후광을 넘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정치인 2세들이 적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표적 인물이다.

1970년대 중·후반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했던 박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당선인과 격전 끝에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민주당을 떠난 뒤 민주신당에 들어간 김홍일 전 의원과 김홍업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이다.

‘미스터 쓴 소리’로 유명한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과 그의 형인 고 조윤형 의원은 고 조병옥 박사의 자제들이다.

최근 한나라당 공천 논란의 핵심으로 떠 오른 친박 진영의 좌장 김무성 의원의 부친은 참의원을 지냈던 고 김용주 의원이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고 남평우 의원의 아들이고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이다. 얼마 전 국민중심당을 탈
당한 뒤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진석 의원도 정석모 전 의원의 자제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과 정문헌 의원은 각각 이중재·정재철 전 의원의 장남이다.

민주신당 노웅래 의원은 노승환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초선인 노 의원은 매일경제신문, MBC 기자 출신으로 지난 17대 총선 때 아버지의 유명세를 타고 당선됐다.


딸도, 사위도 ‘국회로’(?)

무소속으로 있다 한나라당에 들어간 뒤 2인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정몽준 의원은 1992년 대선에 출마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하지만 정 의원은 1988년 13대 국회 때 국회에 입성한 반면 정 명예회장은 이보다 늦은 1992년 14대 국회 때 정치권에 들어갔다.

때문에 정치인 2세란 표현보다는 ‘부자 정치인’이란 의미가 더 정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에서 활동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북도백으로 당선된 정우택 도지사 부친도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정운갑 의원 이다. 정 도지사는 2선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정재문 전 의원은 7선 의원을 지낸 정해영 전 의원의 아들이다. 김동욱 전 의원은 고 김기섭 의원의 2세였다. 김용균 전 의원의 부친은 고 김명수 의원이었다.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인 고 김두한 전 의원과 그의 딸 김을동 전 의원(탤런트 겸 배우)도 모두 국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인 2세는 아니지만 ‘가족정치인’들도 눈길을 끈다. 친박 진영의 입인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울산지역 고 김태호 전 의원의 며느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도 4월 총선 출마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최근 공천신청을 했다.

민주신당 최규성·이경숙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부부 정치인’으로 화제가 됐다. 김선미 참주인연합 대표는 남편인 고 심규섭 의원의 뜻을 이어 정치에 입문했다.


‘형제 정치인’ 주목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과 약혼식을 올린 신상욱 백석문화대 교수는 서울 중랑구 을지역에 도전장을 내 눈길을 끈다.

서울 성동구 갑지구에선 권혜경씨가 남편인 김태기 성동구 갑지구 위원장을 대신해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신당 변재일 의원과 오효진 전 청원군수는 사촌지간이고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과 홍일표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형제다.

민주신당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두수 창조한국당 중앙위원 형제도 나란히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과 민주신당 최성 의원도 형제 사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선 함께 출마했지만 이번엔 동생인 최 의원만 나갈 예정이다.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동생인 김창호 부대변인도 경남 산청·함양·거창지역에 출마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녀들에게 정치를 시키겠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아니다’고 답할 것이다. 끝없는 정치자금이 가장 큰 이유다.”

박원순 변호사도 “우리 정치 풍토에선 대통령아들들을 시베리아에 유배시켜 놓아도 치열한 로비활동이 펼쳐질 것이다”고 일침을 놨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정치인 2세 바람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굵은 물줄기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부친’들로 인해 역차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실력으로 ‘진검승부’를 가리자”고 강조한다.

18대 총선을 기점으로 정치인 2세들이 과연 어떤 활약을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외국 유명 정치인 2세들

부시, 인디라 간디, 고이즈미, 부토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자 2인자였던 이기붕 전 부통령의 전횡은 끝내 자살이란 비극을 불러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도 각종 의혹에 연루되며 정치인 자녀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원인이 됐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세습체제도 2세 정치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훼손시켰다.

미국의 경우 정치인 2세들 중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들이 적지 않다.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아버지는 41대 대통령을 지냈고, 아들은 43대 대통령이다. 두 사람 모두 이라크전쟁으로 지지율이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친 공통점을 지녔다.

현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에 뛰어든 힐러리 여사는 42대 대통령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을 비롯, 유명정치인들을 여러 명 배출한 케네디가문은 미국 내 정치명문가로 유명하다.

동양에서도 정치인 2세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인도 네루 전 총리의 딸인 인디라 간디, 인도네시아의 국부 수카르노 전 대통령 딸인 메가와티 전 대통령 등 유독 여성정치인들이 많다.

지난해 말 테러로 숨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이었다.

기업대물림 전통이 강한 일본에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외할아버지 마타지로는 만주침략 때 체신장관을, 아버지인 준야는 방위청장관을 지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생선가계도, 야채가계도 대대로 해야 신뢰를 받는다”고 이색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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