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폴리테이너들 ‘금배지’ 향해 달린다!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펼치는 ‘폴리테이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4월에 있을 18대 국회의원을 앞두고서다.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한 ‘MB라인’ 방송·연예인들의 정치행보가 엇갈리는 가운데 폴리테이너의 총선관련소식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인 폴리테이너(politainer)는 연예인 출신 정치인을 일컫는다. MB라인을 중심으로 금배지잡기에 나선 방송·연예인들의 행보와 ‘폴리테이너 열풍’의 면면을 살펴본다.
유정현, 서울 동작 갑지구 도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월 대선에서 유례없이 많은 방송·연예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MC ‘뽀빠이’ 이상용과 탤런트 겸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인 유인촌, 탤런트 백일섭·이덕화, 가수 서인석 등 여러 분야에서 뛰고 있는 수십 명의 연예인들이 ‘MB대통령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논란이 일긴 했지만 30명 이상의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회원들이 이 당선인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당선인의 승리 후 세간의 관심은 대선캠프에서 땀 흘린 방송·연예인들의 정계진출에 모아지고 있다.
지난 5일 이 당선인이 소속된 한나라당의 18대 총선 공천후보신청이 마감되면서 일부 MB라인 방송·연예인들의 엇갈린 행보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방송인 유정현은 출마, 가수 김흥국은 불출마를 선언한 것.
지난 대선에서 이 당선인의 총괄팀 홍보위원장으로 활동한 유정현은 일찌감치 총선출마 준비작업에 나섰다. 지난 해 12월 초 정치입문을 선언한 뒤 SBS <도전 1000곡> 등 진행을 맡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총선 입후보자는 선거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방송활동을 할 수 없다’는 현행 선거법 때문이었다. 이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 참석 등의 정치활동을 펼친 유정현은 한나라당에 공천신청서를 냈다. 지역구는 서울 동작 갑지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총선 예비후보등록도 마쳤다.
김흥국 “108배 올리며 결정”
유정현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10년 전 성수대교 붕괴소식을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통곡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나라의 잘못된 점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잘못된 점을 바로 고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야 그 다짐을 실천에 옮기려한다”는 출마의 변을 밝혔다.
반면 김흥국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일생일대의 기로에서 108배를 올리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질문까지 던지는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김흥국은 축구로 맺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오랜 친분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 당선인을 지지했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방송에만 전념하기로 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정치적 욕심이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출마를 접은 만큼 김흥국은 기자회견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4~5년 뒤 기회가 오면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정계진출 가능성을 남겼다.
유인촌, 총선<문화부장관?
대선 때 이 당선인의 지지연설을 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문화분과 상임자문위원이자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회 위원인 탤런트 유인촌은 요즘 상종가다.
MB라인 연예인들 중 정계진출여부가 가장 주목되는 그는 5일 현재까지 총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후보신청도 하지 않았다. 선관위 대선 예비후보명단에도 이름이 없다.
유인촌의 경우 새 정부 문화부장관 물망에 올라 있는 만큼 출마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그는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장관직 임명은) 철저하게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전제한 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을 해야 할 것이다”는 말로 장관직 제의 때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인촌 외에 이덕화, 정흥채, 이상용 등 여러 MB라인 연예인들의 총선출마소식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대구 달서 갑지구로 한나라당 예비후
보등록을 마친 홍지만 전 SBS 앵커를 비롯한 언론인들의 총선준비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때문에 이달 중 예정된 각 정당의 공천결과를 통해 얼마나 많은 방송·연예인들이 총선출마에 나설 지 관심이 모아져 있다. 특히 무소속으로 나갈 경우엔 3월 25일~26일까지 진행되는 국회의원 후보자등록만 하면 돼 18대 총선에 도전장을 던질 방송·연예인의 규모는 지금으로선 파악하기 어렵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연예인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후보자 등록일까지 기간이 많이 남은 만큼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달라진 연예인 위상 실감
한편 MB라인 방송·연예인들의 정치행보가 화제를 모으면서 ‘폴리테이너’에 대한 관심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폴리테이너는 넓은 의미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는 연예인들도 이에 포함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선거 등에 폴리테이너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가 커지고 있다. 2004년 16대 대선에서 각 후보들을 지지하는 연예인이 여럿 등장하면서 폴리테이너들의 존재가 각인됐다. 이
어 17대 대선에선 폴리테이너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정한용, 강신성일, 이순재 등 국회의원을 지낸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폴리테이너 증가 이유로 상당수 연예관계자들이 연예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상승을 꼽는다. ‘딴따라’로 불리며 무시당하던 과거엔 연예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낸다 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거의 없었다. 자의보단 강요에 따른 정치활동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연예인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보다 자유로운 입장표명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 소신을 가진 연예인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맞물려 ‘폴리테이너 시대’를 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각 정당의 권유까지 더해져 방송·연예인들의 정계진출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적지 않은 폴리테이너가 정치참여 계기로 “지인 이나 정치인들 권유”를 꼽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반듯한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를 가진 중견연기자들에게
적지 않은 정계러브콜이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충동적 정치활동 절대 금물
인지도가 높아 별다른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 주목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연예인들을 폴리테이너로 만드는 힘이다. 일반인들은 자기이름과 얼굴부터 알려야 하지만 연예인들은 다르다. 선거공약을 바로 내세워도 무방하다. 지지하는 후보자를 알리는데도 유리하다.
반면 유명세가 오히려 폴리테이너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노래하고 연기나 하던 연예인들이 정치는 무슨 정치냐’는 편견의 벽이 여전한 까닭이다. 이순재, 정한용, 강부자, 고 이주일 등 국회의원을 지낸 상당수 연예인들이 “연예인이란 편견으로 의정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국내 폴리테이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벤트성 정치참여가 많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 나아지고 있지만 정치적 소신이 아닌 지연, 혈연, 학연 등의 관계와 권력욕에 혹해 충동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얼굴마담’ 노릇만 하는 연예인들이 없지 않다.
국회로 간 폴리테이너들이 정책수렴 등에서 전문가적 견해를 보여주지 못해 불신이 쌓였다는 견해도 있다.
유권자인 최현아(30·여)씨는 “선거철에 갑자기 연예인들이 후보유세 등에 적극 나서는 걸 보면 어색하다”며 “외국처럼 사석, 공석에서 꾸준히 정치적 견해를 나타내고 지지 바탕을 충분히 닦은 뒤 정계에 나서는 게 순리다”고 지적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인에 대한 편견으로 활동이 힘들었다지만 국회로 간 연예인 중 상당수가 전문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신뢰를 잃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연예인으로 쌓아온 좋은 이미지와 인기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정계에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배지 단 연예인은 누구?
1978년 탤런트 홍성우 최초…이후 활발
배우출신 대통령(레이건)과 주지사(아놀드 슈워제너거)가 나올 정도로 폴리테이너 활동이 활발한 미국. 하지만 우리나라도 만만찮다. 적지 않은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의 시작은 TBC(동양방송)에서 활동하게 뛰었던 탤런트 홍성우였다. 그는 1978년 10회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3선에 성공, 폴리테이너의 길을 열었다.
이어 11대 총선에 나선 탤런트 이대엽. 경남 마산출신인 그는 국회의원 3선 당선과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연예인 출신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없애는데 앞장섰다. 그는 지금 성남시장으로 재임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예인들의 국회진출은 더욱 활발해졌다.
13대 총선에선 영화배우 최무룡이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당선됐다.
14대 총선에선 탤런트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코미디언 고 이주일이 금배지를 달았다.
특히 민자당 국회의원이었던 이순재는 민자당 부대변인까지 지내며 ‘가볍지 않은 정치인’이미지를 남겼다. 고 이주일은 “4년 간 코미디공부 많이 했다”는 말과 함께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정치판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15대 국회의원 중엔 탤런트 정한용과 가수 최희준이 있었다. 이어 16대 총선에선 1970년대 최고의 배우 강신성일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대구 수성구에 출마, 금배지를 단 강신성일은 한나라당 총재특보까지 지내며 성공적인 정치경력을 쌓는 것 같았다. 하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2005년 징역 5년, 추징금 1억8천7백만원을 선고받아 정치인으로서 치명타를 입었고 지난해 2월 특별사면·복권됐다.
강신성일과 함께 196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 신영균은 15·16대 국회의원을 연임, 폴리테이너 파워를 과시했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tomboysh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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