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매화꽃, 가을엔 물안개가 아름다워…

전라북도 땅에서도 가장 깊은 내륙에 자리하고 있는 임실군의 천담·구담마을은 섬진강 육백리 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물안개가 마을을 감싼다. 고된 일을 끝내고 삽과 호미를 씻던 낮의 섬진강과 다른 이른 아침 천담·구담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의 풍광은 몽환적이면서도 도도하다. 해뜨기 전 펼쳐지는 장대한 운해의 움직임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옥정호도 마찬가지, 운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붕어섬은 가슴을 뜨끈하게 만들고 또 감질나게 한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견(義犬)이 있는 오수마을과 네 명의 신선이 놀았다는 사선대가 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2천년을 오롯이 서있는 용암리 석등이 있으며 산양 두 마리로 시작된 치즈마을이 있는 임실은 ‘꺼리’가 많은 고장이다.
‘돌돌돌’ 새벽잠을 깨우는 물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이끌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면 희뿌연 물안개가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 굽이굽이 돌담과 탱글탱글 박덩이 그리고 길가의 개망초 또 먼 곳에서 온 이방인까지 살포시 보듬는 물안개는 잠이 덜 깬 어린 아이를 안아주듯 조심스레 마을을 안아준다.
천담마을, 그곳은 섬진강 줄기가 품어주는 마을이다. 진안군 백운면의 작은 샘(데미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물방울을 모아 옹달샘을 만들어 낮은 땅으로 흘려보내면 호남의 작은 물줄기들이 더해져 3개 도 12개 군을 거치며 600리 길을 흘러간다. 거세지 않으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물우리마을을 지나면 크게 한번 회오리를 친다. 둥글게 몸을 말았다 다시 흐르니 진메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을 만드는 물돌이동이다.
천내리와 구담리를 합해 행정구역상 천담리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천담마을 구담마을을 혼용해 부른다. 모두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활처럼 휘어 흐르고 못(潭)처럼 깊은 소(沼)가 많다 하여 천담(川潭)이라고 부르고, 이 강줄기에 아홉 군데의 소(沼)가 있다하여 구담(九潭)이라 부른다.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龜)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구담(龜潭)이기도 하다.
마을은 1680년경인 조선조 숙종 때 해주 오 씨가 정착하며 형성되었다. 불과 몇 년 전에 길이 났으니 그 전까지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산과 산이 첩첩 둘러 있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긴 어려웠지만 섬진강 물길은 스스로 찾아들어 둥글게 돌아나가니 산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가 선경(仙境)이다. 예로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물이 힘차게 달려오고 나가는 물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곳이 명당마을이라 했다. 구담마을 당산에 서면 왼쪽에서 힘차게 달려오며 시원스런 물소리를 내는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물길이 사라진다. 또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기러기 형국이기도 하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TV 문학관 ‘소나기’, 드라마 문학관 ‘쑥부쟁이’ 등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당산에 놓인 나무 데크에 올라서면 물돌이의 모습을 더욱 선연히 볼 수 있다. 더불어 쭉쭉 뻗은 당산나무와 당산제를 지낼 때 쓰는 제단, 그 뒤쪽으로 아이를 점지해 주시는 삼신할머니의 무덤과 삼신할머니를 위한 제단이 남아있어 지리학적, 민속학적인 학술접근의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강으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물가를 가만가만 걸으면 풀벌레 소리와 물소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 조화롭게 들린다. 바위에 앉아있던 백로와 왜가리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목을 길게 뺀 자라가 일광욕을 즐기다 슬며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 강가에서 마을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슬기를 잡는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섬진강 줄기는 다슬기 국처럼 푸르다. 저녁이면 돌돌돌 섬진강 자장가가 들려 절로 잠이 든다. 농부의 곤한 코골이 소리에 맞춰 물줄기는 밤새 달리고 새벽이면 또 다시 물안개를 피어 올린다. 몽환적인 새벽강가에 서면 보이는 건 희뿌연 강줄기요 들리는 건 물소리며 비릿한 풀냄새와 물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햇살이 비치면 다시 정겨운 섬진강 줄기가 보이고 마을이 깨어난다. 일생에 한 번 쯤은 지켜보아야할 물돌이동 구담마을의 풍광이다.
이렇게 섬진강은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옥정호도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4번째로 큰 물줄기이자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긴(총길이 212.3㎞) 섬진강이 한동안 머무는 곳이 바로 옥정호다.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과 정읍시 산내면에 걸쳐있는 265㎢의 넓은 호수는 호남평야에 물을 대기위해 만든 저수지로 옥정호가 유명세를 탄 것은 운해 때문이다.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운해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붕어 모양의 섬 ‘외얏날(붕어섬)’은 감질나도록 그 모습을 아끼다 해가 뜨면 제 몸을 드러낸다. 산으로 한참을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섬,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육지속의 섬이다.
임실 땅의 다른 곳도 살펴보자. 오수면에 들어서면 100년 전 충견 이야기가 있다. 고려시대 최자(1188-1260)의 ‘보한집(補閑集)’에 의하면 김개인(金蓋仁)이라는 노인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 들에서 잠이 들었다한다. 산불은 번져오고 주인은 정신이 없자 개울에 가서 온 몸을 물로 적신 뒤 주인의 주변을 뒹굴어 물기로 불길을 막아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기진맥진 쓰러져 죽었다는 것이다. 노인은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무덤 위에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놓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려 훌륭한 나무가 되었다한다. 사람들은 이를 개나무(오수, 獒樹)라고 불렀고, 이 고장 이름은 오수가 되었다. 관촌면 관촌리에는 네 명의 신선이 놀다 갔다는 사선대(四仙臺)가 있고 신평면 용암리에는 보물267호로 지정된 임실용암리석등이 근엄하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2번째로 크다. 이천년의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석등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오늘도 푸른 하늘을 이고 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여행이라면 임실 치즈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이장님들이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가서 송아지에게 우유먹이고 치즈를 만들며 그 치즈로 피자도 만들고 산양우유로 비누를 만드는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문의전화
임실군청 문화관광과 063-640-2344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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