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제례문화 정신 깃든 건강식 ‘헛제사밥’

유교문화에서는 제사를 많이 지낸다. 안동에는 지금도 1년에 10여 차례 제사를 지내는 종가들이 있다. 제사를 정성껏 받들기 위해서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사 음식은 많이, 급하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상님이 돌보아주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이 바로 헛제사밥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 음식과 똑같이 해서 먹는 음식이기에 헛제사밥이라고 불린다. 각종 나물을 비벼서 먹는 밥과 어물, 육류를 끼운 산적에 탕국이 곁들여진다. 일반 음식과 달리 소금, 국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 자극성을 피한 식재료를 양념으로 사용한다. 안동 헛제사밥은 채소, 단백질 등이 골고루 어울렸으며 유교적 제례문화의 정신이 깃든 일품요리이다.
안동시를 상징하는 별미로 헛제사밥, 건진국수, 안동식혜, 간고등어, 안동찜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헛제사밥(허제반)은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중심지이며 유교문화의 본향이라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방음식이다. 비빔밥이라는 한국 전통음식이 유명 외국항공사들의 기내식으로까지 등장한 오늘날, 헛제사밥은 안동의 상징적 음식으로 대접받아 안동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으레 헛제사밥을 찾곤 한다.
안동 헛제사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먼저 안동시 풍산읍에서 전해지는 ‘헛신위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풍산읍 서미리 목현마을 사람들은 긴긴 동지섣달 밤이면 사랑방에 모여 즐겁게 놀다가 저마다 쌀과 나물을 추렴해서 밥을 짓고 나물을 얹어 비빔밥을 해먹었다고 한다. 이 밥의 이름이 ‘헛신위밥’이었다.
안동 유생들의 야참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 늦은 밤까지 글공부를 하던 안동 유생들은 밤이 깊어 속이 출출해지면 하인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장난기 어린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헛제사상이 차려졌는데 선비들이 진짜 제사는 올리지 않고 제삿밥만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하인들이 그날의 밥상을 ‘헛제사밥’이라고 불렀다.
또 어떤 민속학자는 비빔밥 재료가 제사 음식과 유사해서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도 한다. 즉 서원이 많았던 안동 지방에서는 유림과 유생들의 모임이 자주 벌어졌는데 그들을 위해 준비하는 비빔밥의 재료가 제사에 올리는 음식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동시 남선면 샘뜰에 살던 부자 배씨가 밤이면 밤마다 ‘허신지밥’이라고 해서 한 상 가득 잘 차려 먹다가 가세가 망해버렸다는 실화도 헛제사밥 탄생 일화의 하나로 입에 오르내린다.
헛제사밥이 안동지방에만 존재하던 음식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일화도 있다. 조선시대 때 경상관찰사로 부임한 사또는 대단한 식도락가였다. 그는 진주의 제사밥이 유명한 것을 알고 밤마다 부하들에게 이를 구해오게 했다. 부하들이 진주까지 갈 수 없어 꾀를 부려 헛제사밥을 만들어 바쳤다가 탄로가 나고 말았다. 음식에 제사 때 쓰이는 향 냄새가 배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유교제례문화가 발달한 안동지방에서는 ‘헛제사밥’이라는 대중적 먹을거리가 식당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제사음식을 가족과 일가 친척들이 골고루 나눠 음복을 했던 풍습이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널리,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 집성촌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제사를 지내는 횟수가 많았으며, 제사음식을 준비하는데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하고, 그 음식을 골고루 돌려 제사음식을 먹을 기회가 자주 있었던 안동 사람들이었기에 ‘헛제사밥’이라는 별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동에서 ‘헛제사밥’이라는 음식 명칭이 식당의 메뉴로 등장한 것은 1978년 무렵이라고 한다. 1976년 안동호가 완공되고나서 안동민속박물관의 야외전시관 자리에 수몰될 운명에 처한 고가가 옮겨졌다. 이 집에서 조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헛제사밥을 팔기 시작한 것이 안동 헛제사밥 대중화의 시초라고 한다. 당시 조씨 할머니는 그냥 ‘제사밥’이라고 부르려 했으나 기독교계를 의식해서 앞에 ‘헛’자를 붙여 ‘헛제사밥’이라고 이름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헛제사밥 상에는 쌀밥에 고사리, 숙주, 도라지, 무나물, 콩나물, 시금치 같은 나물류 하며 쇠고기, 상어 같은 산적류 외에 배추전, 다시마전, 호박전, 동태전, 두부전 같은 전류, 그리고 간고등어와 탕국이 올려진다. 사람마다 따로따로 차려서 상에 올리니 모두가 좋아한다.
기본 헛제사밥은 밥, 탕, 숙채, 전, 산적, 생선 등으로 구성됐고 이보다 값이 조금 더해진 양반상(선비상)에는 국수, 청포묵이나 도토리묵, 조기구이, 떡, 약식, 안동식혜가 오른다. 실제 제사상에 오르는 안동문어, 가오리찜, 닭, 포, 유과, 과일 등은 빠져 있다.
경상도 음식이란 짜기만 했지 뭐 먹을 게 있느냐고 한 마디씩 던지던 대도시 사람들도 헛제사밥 상을 받고서는 태도가 달라지기 일쑤이다. 짜지 않고, 맵지 않고, 담백하고, 깔끔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안동 헛제사밥은 조리를 할 때 후추, 마늘, 고춧가루 같은 자극성이 강한 양념류를 피하고 소금, 국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으로 맛을 살려낸다. 그러므로 탕, 찜, 구이 등의 맛은 담백하다. 밥과 반찬을 비벼먹어도 좋은데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무나물, 콩나물, 토란 등의 나물 재료라 건강과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안동양반들의 별식인 건진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반반씩 섞어 직접 만든 손국수를 삶아서 건져낸 다음 찬 물에 씻고 육수에 말아먹는 음식이다. 그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며 함께 나오는 조밥도 맛깔스럽다.
고두밥에 무, 고춧가루, 생강즙, 엿기름물로 발효시킨 독특한 음식을 안동식혜라고 한다. 안동식혜는 특히 겨울철 별식으로 살얼음이 살짝 낀 식혜는 깔끔한 맛이 으뜸이다.
간잽이의 손을 거친 안동간고등어 역시 짭짤하고도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영덕 강구항에서 안동 채거리장까지 고등어를 운반하는 데에 이틀이나 소요되다 보니, 고등어를 상하지 않게 하려면 소금간이 필수적이다. 소금간을 하는 방법에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고등어를 잡자마자 즉석에서 배를 따고 간을 하는 방법, 포구에 도착해서 간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륙의 소비지로 운반해서 간을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전통적인 안동 간고등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으로 모두 사용해 염장한다. 안동 간고등어는 안동의 지리적 여건이 탄생시킨 특산품인 셈이다. 짭짤하고도 쫀득하게 씹히는 안동간고등어의 맛은 염장과 숙성과정에서 결정된다.
●문의전화
안동시청 관광산업과 054-840-6391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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