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 지나 정자 올라 달님 보며 소원 비세

울진군 남쪽 바닷가에 월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곳에 올라 동쪽으로 시선을 두면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여행객들은 월송정에 올라 휘영청 밝게 뜬 달과 장엄하게 솟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신라 화랑들이 찾아와서 달빛을 즐긴 솔숲에 지어진 정자이고 동해바다의 신선한 기운이 넘쳐나는 누각이니 여행객들의 소원은 솔향기와 해풍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성취의 열매를 맺는다. 후포항과 죽변항으로 가면 울진대게와 붉은대게를 맛볼 수 있고 덕구온천과 백암온천을 찾으면 온천욕도 즐길 수 있으니 이래저래 울진 여행은 즐겁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라면 민물고기생태체험관과 성류굴, 금강송군락지도 탐방해 볼만하다.
관동팔경이란 동해안 지방의 절경 8곳을 말한다.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그리고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이 그것이다.
월송정의 한자 표기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달 월(月)’자를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넘을 월(越)’자를 쓰는 것이다. 월송정에 관한 옛 기록들엔 두 가지 표기가 모두 보인다. 월송정은 달밤에 송림 속에서 놀았던 곳이라고 해서 월송정(月松亭)이라 하기도 했고 또는 월국에서 송묘를 가져다 심었다고 해서 월송정(越松亭)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료를 검토한 결과 월송정(越松亭)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맞다는 견해에 따라 지금의 표현대로 정착됐다.
둘 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월송정은 밤하늘의 달과도 잘 어울리고 월송정에 가려면 송림을 넘어가야 한다. 월송정이라고 하면 우선 달이 연상되고 그 다음으로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한국적 정서의 한 토막이 떠오르기도 한다. 월송정 주차장에서 정자까지는 솔숲을 왼쪽 옆에 끼고 100m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 길에는 솔가지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그대로 깔려 발로 전해지는 촉감도 좋다. 안내판을 읽고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월송정의 우아한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건축물을 볼 수 있기까지 이곳에는 제법 여러 가닥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우선 신라시대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신라의 네 화랑-영랑, 술랑, 남속, 안양-은 경주를 떠나 전국을 주유하며 심신을 달랬는데 그들은 이 소나무 숲에 와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밤이면 달빛을 즐겼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로 넘어와서 월송정 자리에 왜구의 침략을 살피는 망루가 세워졌다. 애초부터 정자가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조선 중기로 들어와서 왜구의 울진 침범이 잦아들자 중종반정 당시 공신이었던 박원종이 관찰사로 부임, 이곳에 정자를 세우게 된다. 이후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반열에 들면서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월송정을 소재로 어제시, 풍류 및 순행시, 기행문이 지어졌고 그림이 그려졌으며 고지도에도 이름을 남기게 됐다. 월송정 어제시로는 숙종과 정조의 시가 전해온다.
선랑의 옛 자취 어디에서 찾을까
만 그루 장송이 빽빽이 들어섰네
백설같은 모래 바람 눈 안에 가득
올라가 한 번 바라보니 흥을 못 참겠다
-숙종의 어제시
여행객들은 월송정 주변을 거닐며, 또는 누각에 올라 문인들의 시도 감상해본다.
평사 십리나 흰 담요 깔았는데
장송이 하늘에 닿아 옥창 끝도 가늘구나
쳐다보니 밝은 달은 황금 떡과도 같은데
푸른 하늘 물 같아 넓기도 하구나
-서거정의 ‘월송정’
1933년 월송정은 중건됐으나 일제강점기 말기 미군의 공습 목표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해서 일본 해군의 손에 의해 헐리고 마는 비운을 겪었다. 1969년 그 자리에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이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국적불명의 건축물인지라 1980년 아예 헐어버리고 다시 세운 것이 우리가 지금 보는 월송정이다.
그림으로 월송정을 남긴 이로는 겸재 정선, 정충엽, 강세황, 김홍도 등이 있다. 특히 정선의 월송정 그림(간송미술관 소장)은 정선(1676∼1759)이 63세 때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빽빽이 들어찬 소나무 숲을 화면 중앙에 담고 오른편에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형태의 월송정을 그려넣었다. 건물 아래로는 성문이 있고 양 옆으로 성벽이 이어져 문루임을 알 수 있다.
울진군청은 야간관광객을 위해 정자 사방으로 조명시설을 설치했다. 정자에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바닷가로 다가가면 북쪽으로 길이가 10리나 되는 구산해수욕장의 모래밭이 펼쳐진다.
주야로 월송정을 답사하는 여행객들은 저마다 마음 속으로 선인들의 시편과 화공들의 그림을 연상하며 어제의 삶을 되새겨보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기원해본다.
한편 망양정(근남면 산포리)은 망양해수욕장 인근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주차장에서 정자를 만나려면 망양정횟집 식당 옆으로 난 21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정자 정면으로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남쪽으로는 최근에 조성된 해맞이공원 정자가, 북쪽으로는 망양해수욕장과 2009 울진 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공원이 보인다.
본디 망양정은 고려 때 기성면 망양리 해변 언덕에 있었으나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그 망양정이 오래되고 낡았다고 해서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그 뒤로 1860년(철종 11)에 울진현령 이희호가 현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로 다시 이전시켰다. 망양정과 관련한 시문으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정추의 ‘망양정시’, 정철의 ‘관동별곡초’, 채수의 ‘망양정기’ 등이 전해내려온다.
울진을 대표하는 명찰은 불영계곡 내의 불영사이다. 불영사의 원래 이름은 구룡사였다. 신라 의상대사가 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을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구룡사라 불렀다고 한다.
불영사라는 명칭은 서쪽 산자락 위에 있는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불영사에는 응진전(보물 제730호), 대웅보전(국보 제 1201호),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삼측석탑(경북 유형문화재 제135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덕구와 백암 등 두 곳의 온천 또한 울진군이 자랑하는 관광자원이다.
덕구온천(울진군 북면 덕구리) 수질은 중탄산나트륨, 칼륨, 칼슘, 철, 탄산 등의 성분이 많이 함유된 약알카리성이며 신경통, 류머티즘, 근육통,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덕구온천지구에는 호텔덕구온천에서 운영하는 덕구온천스파월드가 있다. 일반적 온천시설(온탕, 열탕, 냉탕) 외에 테라쿠아(기포욕, 플로링, 바디맛사지, 벤치자꾸지, 넥샤워, 버섯탕 등), 액션스파(아쿠아포켓, 침탕, 스파탕, 에스테탕, 2레인풀 등), 어린이 슬라이더, 장수건강지압보도, 사우나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노천온천의 선탠장베드, 이벤트탕(자스민, 레몬), 바가지탕, 물안마폭포탕, 원목온탕, 정자황옥데크, 맥반석동굴탕도 휴식을 위한 여행에 도움을 준다.
자연 용출되는 온천을 보려면 덕구계곡 원탕으로 올라간다. 호텔에서 출발하면 왕복 4km로 2시간 정도 걸리며 중간에 형제폭포, 옥류대, 선녀탕 등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백암온천(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은 라듐이 많이 함유된 유황온천으로 피부병, 위장병, 신경통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시절인 1610년, 판중추부사 기자헌이 풍질 치료를 위해 ‘평해 땅 온천’에서 목욕하기를 청하니 광해군이 ‘잘 다녀오라’며 휴가를 주고 말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있을 정도다.
백암온천은 고려 때부터 공공시설로 이용됐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관 소유재산으로 경영됐다. 1979년 국민관광지 제3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종합휴양지로 자리를 잡았다.
민물고기생태체험관(근남면 행곡리)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아닌 민물고기만으로도 얼마나 멋지고 교육적인 체험전시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1층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민물고기 개관, 어디에 사나요,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물고기 친구들, 이웃나라 민물고기, 민물고기 가 가득 찬 대형수조, 표본전시실 등을 관람하게 된다.
동선은 지하 전시관으로 이어진다. 낙동강 생태계, 왕피천 생태계, 성류굴 생태계, 연어이야기, 귀염둥이 수달, 우리나라의 대형민물고기, 열대산 대형민물고기 등을 줄줄이 만날 수 있다.
이 민물고기생태체험관의 전시수조는 총 74개(대형 21개, 중형 24개, 소형 29개)이고 전시생물은 어류, 갑각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등 119종 4,440마리나 된다. 매주 월요일 휴관.
생태체험관과 가까운 곳의 성류굴(근남면 구산리)은 1천년 전부터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화랑의 훈련장 또는 숙소로 사용하였다는 삼국유사와 고려 말 이곡의 관동유기 및 조선 초기 김시습의 선유굴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성류굴의 원래 이름은 신선이 노닐만큼 경관이 아름답다고 해서 선유굴이다.
생성 시기는 약 2억5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전장 472m의 동굴은 종유석과 석순이 가득하고 왕피천과 상통하고 있는 12개의 광장과 5개의 못에는 많은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울진에서 서면 소광리의 금강송 군락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통고산자연휴양림과 서면소재지를 잇는 36번 국도의 중간쯤에서 917번 지방도를 따라, 불영천의 지류인 대광천을 거슬러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울진 금강송 군락지에 닿는다.
군락지 입구 정문 안내소에서 차량차단기를 지나고 금강송 전시실 앞에 다다르면 수령 520년의 금강송이 우뚝 서있다.
수고가 25m나 되고 지름이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도 손이 닿지 않는 이 소나무는 중간에 가지를 내고 약간 휘어진 모습이다.
그 덕에 벌목에서 제외돼 지금까지 남아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실감나게 해주는 나무라 하겠다.
임도를 따라 20여분쯤 걸어 들어가면 미인송이 반긴다. 수령 350년에 수간이 유난히 곧고 가지가 아름답게 퍼져 산림청이 한국 대표 소나무로 지정해놓았다.
이 지역 금강송의 수령은 150년∼520년 사이이며 23∼35m 키에 최대 직경이 110m에 이른다. 520년 된 보호수도 2그루나 되고 직경 60cm 이상의 소나무만도 1,672그루에 달한다.
임도를 따라가다 계곡 길로 내려서는 탐방로가 3개 코스로 만들어졌으며 전체를 둘러보는데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1800ha(483만평)에 달하는 이 숲은 2000년 산림청에서 실시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항구를 보고 싶다면 후포항과 죽변항을 찾아간다. 후포항(후포면 후포리)은 울진군 남단에 위치하며 울진대게, 도루묵, 가자미, 고등어, 골뱅이 등을 잡은 어선들이 많이 기항한다. 항구 주변에는 수산물을 가공하는 공장들도 즐비하다.
죽변항(죽변면 죽변리)은 울진군 북단에 위치하며 후포항과 마찬가지로 울진대게, 도루묵, 가자미, 고등어잡이 어선들의 입출항이 이뤄진다.
특히 죽변 등대 뒤편으로 넘어가면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 남아있어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잦다. 주황색 뾰족지붕의 교회, 일식 가옥 형태의 주인공 집, ‘용의 꿈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숲산책길 등은 울진의 바다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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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남 기자 c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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