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이 빚고 세월이 담근 깊은 울림의 맛, 완주 송화백일주

송화백일주는 수도승들이 고산병 예방을 목적으로 즐겨 마셨다는 곡차(穀茶)에서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송화백일주는 송홧가루, 솔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찹쌀, 백미, 보리 등 다양한 재료로 빚은 밑술을 증류해 얻는 증류식 소주. 송홧가루의 황금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송화백일주는 38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럽고 소주지만 청주 같은 묵직함도 느껴진다. 은은한 솔향과 달짝지근한 뒷맛도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깊은 맛의 비법은 따로 있지 않다. 벽암스님의 말처럼 좋은 물과 좋은 재료를 이용해 정성껏 빚는 게 최선의 비법이다. 사실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송화백일주에는 기다림이다.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 기다림. 술 한 병을 빚는 데 꼬박 100일이 걸리고, 제 맛을 완성하기 위해 3년을 더 참아내야 하는 기다림 말이다.
좋은 술의 기본은 좋은 물이다. 송화백일주는 수왕사(水王寺) 약수를 이용해 빚는다. 송화백일주 12대 전승자인 수왕사 벽암스님은 수왕사 약수에 대해 좋은 물이 지녀야 할 네 가지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좋은 물이 갖춰야할 4대 덕목은 서쪽에서 나서 동쪽으로 흘러야 하고, 바위틈에서 나와야 하며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여야 할 뿐 아니라 물이 무거워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게 바로 수왕사의 약수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진묵대사(1562∼1633)에 의해 송화백일주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수왕사의 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다.
좋은 물 다음으로는 좋은 재료다. 어떤 재료로 술을 빚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은 180˚ 달라진다. 송화백일주는 그 이름에서처럼 송홧가루가 주재료이다. 간혹 알레르기 때문에 송홧가루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효음식에 있어서 송홧가루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것도 드물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송홧가루가 날리는 5월이면 고추장과 된장을 담은 장독 뚜껑을 열어 놓고 송홧가루가 장에 내려앉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고추장과 된장에 내려앉은 송홧가루가 방부제 역할을 해 우리 몸에 좋은 효모와 효소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인데, 송화백일주에 들어가는 송홧가루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송화백일주는 오래 두고 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송화백일주의 맛은 크게 세 번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1단계는 술을 만드는 것이고 2단계는 100일이 지나 술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며, 3단계는 3년을 숙성시켜 원숙한 맛을 완성하는 것이다. 발효주와 달리 증류주는 오랜 숙성과정을 거칠수록 그 맛이 부드러워지는데 송화백일주는 특히 오래 보관하면 할수록 그 맛과 향이 깊어진다.
윤 4월(5월 초), 송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벽암스님은 어느 때보다 바쁜 일과를 보낸다. 술 빚을 때 사용할 송화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인데, 송화백일주에 들어가는 송홧가루는 대부분 수왕사가 자리한 모악산 7부 능선 인근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다음은 술을 빚는 도기. 송화백일주는 송홧가루와 솔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빚은 밑술을 증류해 받은 도수 38도의 증류식 소주다. 때문에 어떤 도기를 사용해 술을 증류하는지는 무척 중요하다. 수왕사에서는 예로부터 송화백일주 제작에 사용되는 증류용 소줏고리를 집적 구워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수왕사 주변에서 발견된 많은 가마터와 유물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소줏고리에 천칠(天七)이라는 글씨가 거꾸로 새겨져 있다는 점. 벽암스님은 이에 대해 매월 7일 술을 내리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수왕사에서 사용하던 소줏고리는 현재 전주의 전통술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다.
350년을 이어온 송화백일주. 그 깊은 맛의 비법은 따로 있지 않다. 벽암스님의 말처럼 좋은 물과 좋은 재료를 이용해 정성껏 빚는 게 최선의 비법이다. 사실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기다림이다.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 기다림. 깊은 울림을 간직한 명주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그렇게 뚝딱뚝딱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완주여행에는 놓칠 수 없는 두 명산이 있다. 바로 대둔산(大屯山·877.7m)과 모악산(母岳山·793.5m)이다. 하지만 이 두 산은 그 느낌이 참 다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둔산에선 부성(父性)이 그리고 모악산에선 모성(母性)이 느껴진다. 이것저것 다 빼고 그 산세만으로도 이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선 굵은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대둔산에 비해 모악산은 섬세한 곡선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겉모습만으로 단정 짓는 게 억지스럽다면, 산행에 나서보자. 그러면 이는 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우선 아버지의 엄격함처럼 시작부터 세차게 몰아세우는 대둔산은 그 오르고 내림이 만만치가 않다. 적잖이 땀 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정상에 오르기도 쉽지 않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 딱 그 정도다. 하지만 대둔산과는 달리 모악산은 적당히 완만하고 적당히 가팔라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완만하게 시작해 지루할 만하면 오르막이 나오고 다시 힘들어질 만하면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모악산 산행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둔산과 모악산은 역시 겨울에 찾아야 제 맛이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 계절 놓칠 시기가 없지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대둔산의 설경과 ‘모악춘경(母岳春景)’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악산 설경은 모악춘경보다는 모악설경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웅장한 모습의 대둔산은 그 호탕한 외양만큼이나 설경도 무게감이 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기암절벽은 호남의 소금강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뽐낸다. 특히 직벽(直壁)에 가까운 삼선대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그 장쾌함을 뭣에 비견할 수 있을까. 그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끌어와 붙인다 해도 그 멋스러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대둔산의 장쾌한 설경과는 또 다른 멋을 지닌 모악산의 설경도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다. 호남평야와 김제평야를 감싸 듯 완만하게 솟은 모악산 설경은 볼수록 깊이를 더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 접한 모습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마치 십년지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 누군가 ‘대둔산과 모악산 중 어느 곳의 설경이 더 멋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가 더 좋은지 답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이처럼 두 산은 모두 제 나름의 멋을 지니고 있어 어디가 더 멋있다고 단정 짓기가 쉽지 않다.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둔산의 설경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면, 모악산의 설경은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완주의 두 명산인 대둔산과 모악산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이다. 아버지의 든든함과 어머니의 인자함을 간직한 대둔산과 모악산. 그 깊은 맛을 만끽하며 산행을 해보는 것도 완주여행에선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자가운전자가 늘어나면서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드라이브 코스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이브 코스란, 단순히 목적지에 빨리 닿기 위해 고민하는 ‘최단의 코스’라기보다는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야 보다 깊이 있는 여행이 될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는 ‘최상의 코스’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이상으로 그 여정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송광사에서 동상호를 거쳐 대아호에 이르는 완주의 741번 지방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서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도로임에 틀림이 없다. 송광사, 위봉폭포, 대아수목원 등 다양한 볼거리는 물론 동상호와 대아호를 넘나드는 호반도로의 멋스러움까지 간직한 길이기 때문이다.
741번 지방도로의 들머리는 송광사가 위치한 완주군 소양면의 벚꽃길이다. 터널식으로 조성된 이곳 벚꽃 길은 벚꽃이 피는 4월경이면 그 멋스러움이 절정에 달한다. 벚꽃길을 벗어나 조금 더 오르면 송광사에 닿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평지에 세워진 송광사에는 학이 내려앉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亞’ 자형 종각(보물 제1244호)과 국내 최대 크기의 소조 좌불이면서 국란이 있을 때마다 땀과 눈물을 흘린다는 삼불좌상(보물 제1274호)을 만날 수 있다.
송광사를 지나 추줄산(위봉산) 중턱에 오르면 위급 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쌓았다는 위봉산성과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일품인 위봉폭포 그리고 아담한 사찰인 위봉사가 연이어지고 위봉사를 지나 조금 더 차를 몰면 동상호를 끼고 도는 본격적이 호반도로가 시작된다. 동상호에서 대아호에 이르는 호반 드라이브 코스는 낮에도 물론 좋지만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 풍경도 놓칠 수 없다. 특히 동상호 수면 위로 내려앉은 겨울 달빛은 그 운치가 예사롭지 않다.
동상호의 흐름에 맞춰 잘게 흔들리는 달빛을 바로보고 있자면, 그 애잔한 매력에 쉬이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완주에서 동상호와 대아호 못지않게 명소로 통하는 호수가 바로 경천호다. 경천호로 가기 위해서는 동상호와 대아호를 잇는 741번 지방도로가 끝나는 고산면에서 17번 국도를 이용해 삼기삼거리까지 간 후, 이곳에서 643번 지방도로를 따라 화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산면 화평리와 성북리 그리고 운제리에 이르는 경천호는 고산, 봉동, 경천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저수지로, 예로부터 붕어를 비롯한 각종 담수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강태공들의 손맛을 유혹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경천호의 유혹이 비단 강태공의 손맛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경천호 주변에는 완주 8미 중에서도 첫 손 꼽히는 참붕어찜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럿 모여 있어 출출해진 배꼽시계를 채워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
▶관련 웹사이트 주소
●완주군청 문화관광 : http://tour.wanju.go.kr
●송화양조 : http://www.songkwangsa.org
▶문의전화
●완주군청 문화관광과 : 063)240-4257
●송화양조 : 063)221-7047
●모악산도립공원 : 063)222-7816
●대둔산도립공원 : 063)263-9949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정보
[고속버스]
서울 센트럴시티(호남선) ↔ 삼례 2시간 20분 소요
서울 센트럴시티(호남선) ↔ 전주 2시간 30분 소요 (배차간격 5~15분)
동서울터미널 ↔ 전주 2시간 30분 소요 (배차간격 30분)
[철도]
서울역(전라선) ↔ 삼례역, 죽림온천역, 전주역
●자가운전 정보
호남고속도로 서전주 IC → 716번 지방도 전주방면 → 산너머 사거리 우회전 → 27번 국도 구이방면 → 향가 교차로 빠져나와 좌회전 → 굴다리 지나 바로 우회전 → 1km 정도 직직 → 송화양조
▶숙박정보
●모악산모텔 :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063)222-2023
●둥지모텔 : 전북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063)221-9390
●샤넬모텔 : 전북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063)222-0145
●대둔산장 :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063)262-2294
●대둔산관광호텔 :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063)263-1260
▶식당정보
●산수장 : 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참붕어찜 063)263-5078
●약수가든 : 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참붕어찜 063)262-2602
●원조화심생두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순두부 063)243-8952
●화심순두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순두부 063)243-8268
●전주고향식당 :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채정식 063)263-9151
▶축제 및 행사정보
●대둔산축제 : 매년 10월 말경, 운주면 대둔산도립공원 잔디광장
●딸기축제 : 매년 3월 말경, 삼례 공영주차장 일원
●소양벚꽃길행사 : 매년 4월 초·중순. 소양면 황운리 송광사 벚꽃길
▶주변볼거리
●화암사, 동상곶감마을, 구이저수지, 대아수목원, 고산자연휴양림
최은남 기자 cen@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