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처와 청정자연을 동시에 ‘양구 파로호’
분단의 상처와 청정자연을 동시에 ‘양구 파로호’
  • 남석진 
  • 입력 2007-09-12 11:59
  • 승인 2007.09.12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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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9월의 가 볼만한 곳 <2>
- 강원 양구군

파로호는 1941년 북한강 상류에 완공된 화천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평화의 댐을 지나온 북한강의 본류와 양구 수입천, 서천 등의 지류도 모두 이 호수로 흘러든다. 파로호는 한국전쟁 때에 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퇴시켜 수장시킨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그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천저수지’라는 원래 지명을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로 바꿨다. 오늘날 파로호 일대의 산하는 때 묻지 않은 자연미를 자랑한다. 유역의 상당 부분이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이나 DMZ(비무장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로호의 상류에 자리 잡은 양구군은 청정자연과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또한 분단조국의 아픔과 전쟁의 깊은 상흔이 또렷하게 남은 냉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파로호는 1941년 강원도 화천군 강동면 구만리에 화천댐이 세워짐으로써 생겨난 인공호수다.

화천댐이 완공된 지 10년쯤 지난 한국전쟁 때에는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당시 국군 6사단은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퇴시켜 파로호에 수장시켰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전과를 기리기 위해 원래 ‘화천저수지’였던 지명을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바꿨다. 그뿐만 아니라 1955년에는 아예 파로호 호반에 전용별장까지 지었다고 한다.

파로호는 물길의 길이가 백 리를 넘는다. 화천 땅의 경계를 훨씬 지나 양구읍내와 맞닿아 있다. 호수의 중간쯤인 화천군과 양구군 경계 근처에서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합쳐진다. 금강산에서 시작돼 평화의 댐을 지나온 북한강의 본류, 그리고 양구 땅의 수입천과 서천을 아우른 지류가 파로호로 흘러들어 하나가 된다. 파로호 주변에는 높고 험한 산들이 즐비하다. 더군다나 DMZ와 인접해 있어서 여느 인공호수들처럼 근사한 호반드라이브길이 개설돼 있지도 않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

도로는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것만 뚫려 있고, 그나마 터널을 뚫거나 산비탈을 절개하여 개통된 구간이 대부분이라, 차창 밖으로 호수가 보이는 구간은 퍽 짧다. 특히 양구읍내와 맞닿은 파로호 상류지역은 장마철이나 집중호우가 내린 뒤가 아니면 호수 바닥을 드러낸 날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파로호 유역의 양구 땅에는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안보관광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민족의 화합, 조국통일의 염원’이라는, 진지한 테마를 앞세운 여행지로는 안성맞춤이다.

북한강 최상류이자 양구군 최대의 하천인 수입천에는 두타연이 있다. 방산면 건솔리의 민통선내에 위치해 있어서 약 50년 동안이나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됐던 하천이 절경이다.

지금도 최소한 이틀 전에는 양구군청 문화관광과에 팩스나 메일, 전화로 미리 출입신청을 해야 두타연을 구경할 수 있다. 출입가능시간도 하루 단 1회뿐이며, 군청 직원이나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와 인솔 아래 한꺼번에 들고나야 한다.


비단 같은 폭포수

비경 중의 비경인 두타연은 이처럼 찾아가기가 다소 번거로운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마련이다.

인적 없는 첩첩산중의 계곡에 형성된 높이 10여m의 폭포가 우레 같은 물소리와 안개 같은 물보라를 피워 올리며 쏟아지는 광경이 일대장관을 이룬다. 비단결 같은 폭포수가 소용돌이를 이루며 떨어지는 소(沼)는 푸르다 못해 검은빛마저 띤다.

또한 소의 주변에는 높이 20m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암벽 아래에는 아득한 옛날 인근 두타사의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보덕굴이 뚫려 있다. 이곳에 흐르는 계류는 얼마나 맑고 서늘한지, 차가운 1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는 열목어도 비교적 흔한 편이다.

그래서 매년 5월이면 산란기를 맞은 열목어들이 상류의 산란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두타연 서쪽에는 야생 산양의 서식지이자 한국전쟁 당시 매우 치열했던 백석산전투의 현장인 백석산(1,140m)이 우뚝 솟아 있다.

양구군에는 백석산뿐만 아니라 도솔산, 크리스마스고지, 대우산, 가칠봉,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등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전투의 현장이 매우 많다.


‘펀치볼’ 해안분지

그중에서도 흔히들 ‘펀치볼’이라 부르는 양구군 해안분지는 꼭 한번쯤 찾아가볼 만하다. 해발 450m 내외의 전형적인 분지인 해안면은 평균 1,000~1,100m대의 봉우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동면과 해안면 간의 돌산령 정상이나 남방한계선 철책과 맞붙은 을지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면 전체가 거대한 가마솥이나 접시 모양을 이룬다. 이런 모양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의 외국인 종군기자들이 ‘펀치볼’(Punch Bowl)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펀치볼은 포도주에 과일 등을 섞어 만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그릇이다.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분지를 구성하는 암석들이 풍화와 침식을 견뎌내는 강도가 달라서 만들어진 ‘차별침식분지’라는 주장과 커다란 운석이 충돌해서 생겨난 지형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남북 7.5㎞, 동서 5.5㎞, 면적 44.7㎢의 해안분지 북쪽에 우뚝한 가칠봉 능선에는 을지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해발 1,049m 고지의 이 전망대에서는 북녘 땅의 금강산이 또렷이 보이고, 중동부전선의 우람한 산악지형이 한눈에 조망된다. 또한 가을빛이 무르익은 10월에는 둥그런 산 능선부터 울긋불긋 물들이기
시작한 단풍의 기세가 섬뜩하리 만치 아름다운 곳이다.


박수근 화백의 고향

을지전망대 초입의 산중턱에는 휴전선 일대에서 발견된 네 개의 땅굴 중 하나인 제4땅굴이 있다.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 지 12년만인 1990년 3월 3일 양구읍 동북방 26㎞ 지점의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땅굴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땅굴은 높이와 너비가 워낙 좁아서 내부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관람하려면 먼저 해안면 소재지 부근의 양구통일관에서 출입신청을 해야 된다. 단 휴무일인 월요일은 피해서 찾아가야 한다.

양구는 세계적인 화가인 고 박수근 화백의 고향이다. 1914년 2월 21일 양구읍 정림리에서 태어난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1932년에 조선미술전 서양화부에 입선했다.

서민들의 일상을 그윽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박수근 화백은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서민화가이자 오늘날 작품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받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생가터에는 양구군에서 지난 2002년 10월에 개관한 박수근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200여 평의 미술관 내부에는 그의 유품과 작품 스케치, 습작, 판화, 삽화 등의 유작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마치 옛 성처럼 돌로 지은 건물 자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양구군은 한반도의 한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극서와 극동, 그리고 극남과 극북을 잇는 두 선을 종횡으로 그었을 때에 만나는 지점이 바로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라는 것이다.

GPS좌표상으로 동경 128°02′02.5″, 북위 38°03′37.5″인 국토 정중앙 점에는 가로 10cm, 세로 10cm, 높이 50cm의 표지석이 매설돼 있다. 그러나 군부대 훈련장 내에 위치해 있어서 휴일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세워져 있는 국토정중앙천문대에 차를 세워둔 뒤 산책하듯 가벼운 기분으로
다녀올 만한 곳이다.

사진,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남석진  ns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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