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등의 남부지방에서는 장승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고 모르는 경우가 많다. 충무시 문화동의 경우도 주민들은 장승이라 부르지 않고 벅수라고만 부른다. ‘벅수’라는 말은 ‘복수(卜水)’의 와음(訛音)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으나 아직 확증은 없다.
제작연대는 뒷등에 ‘광무 십년 병오 팔월○일 동락동 입’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있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광무10년은 서기 1906년도에 해당된다.
장승이라면 의례 남녀(男女) 한 쌍으로 두개가 서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하나만의 경우도 간혹 있다. 이것을 ‘독벅수’라 하는데, 문화동 벅수도 독벅수 중 하나다.
이 독벅수는 화강암 석재로서 높이는 198㎝이다. 뒷면과 좌우로 높이 70여㎝, 폭 40㎝의 돌담이 ㄷ자형으로 둘러있고 그 안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동체 전면에는 ‘토지대장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얼굴 표정은 일반 장승과 같이 벽사신, 수호신으로서 잡귀들을 쫓을 수 있는 공포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표정에는 약간의 미소같은 것이 서려 있어서 민속 조각품으로서 구수한 소박미를 풍겨주고 있다.
장승의 기능은 흔히 마을 입구에서 하는 마을 수호의 구실, 마을이나 사찰 입구 또는 주변에서 하는 경계표 구실, 그리고 길가에서 하는 이정표 구실들로 여겨지고 있다.
장승의 역사는 유구하여 신라시대부터 불교신앙, 풍수도참사상들과 결부되어 주위 산천의 허(虛)한 곳을 막아주는 ‘비보(裨補)’역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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