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칼들 피바람 속 된서리 불가피”

정권교체는 권력기관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실용 정부’를 내건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중점 추진하는 과제에도 국가정보원과 검찰청 개혁이 핵심 사안으로 들어있다.이 당선인 쪽은 두 기관을 비롯, 경찰청과 국세청 등 권력기관 ‘빅4’를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복안을 세워둔 상태다. 정부와 공기업에 이어 칼날이 이들 기관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해당 기관들은 정보력을 총동원, 이 당선인의 구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권력기관들조차 숨을 죽이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이 ‘빅4’로 불리는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을 향한 본격 수술작업을 시작했다.
일단 국정원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라있다. 이 당선인이 지난해 대선과정에서부터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를 여러 번 경고했던 만큼 그 진폭이 적잖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 당선자와 관련된 정보유출건과 김경준 전 BBK 대표의 ‘기획입국설’ 배후로 국정원을 꼽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정치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으므로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정권이 바뀐 만큼 그래도 가시적 변화는 있지 않겠느냐”고 점쳤다.
국정원, ‘원톱 체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정원 개혁 방안을 수차례 내놓았다. 이 중 가장 강도가 높았던 것은 국정원의 발전적 해체란 처방이었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국정원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 정보기구를 다시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사, 정치, 외교란 고전적 명제를 벗어나 경제, 문화, 인적차원 등의 시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당선인 쪽에 따르면 차기정부의 국정원 개혁방안은 이 정도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실용 정부’에 걸 맞는 국정원으로 대대적인 재편을 꾀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다른 개혁 구상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개혁방안도 아직까지는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인수위는 정치사찰의 근원지로 여겨졌던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을 철저하게 없애는 대신 경제분야 업무를 크게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국가기관과의 조정역할을 국정원이 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다.
‘실용’을 중시하는 이 당선인으로선 이런 조정능력을 청와대나 국정원과 같은 특정기관에 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방안으로 청와대 국정상황실,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등으로 나눠져 왔던 정보수집·관리·활동 체계를 국정원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 상황에 밝은 통합신당 관계자는 “그런 능력을 국정원에 주어 ‘원톱체계’로 간다는 것 자체가 무소불위 권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며 “지나친 효율성 강조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권교체에 따른 남북관계 흐름이 달라짐에 따라 국정원 내 대북 분야도 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 동안 호남인맥이 강세였던 기관 내 권력지도도 새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검찰청, 수뇌부 인선 촉각
사상 초유의 ‘당선인 수사’를 떠맡게 된 검찰도 이 당선인이 어떤 칼을 빼들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임명은 그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 검찰개혁은 핵심과제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 공직부패수사처 설립방안, 공판중심주의 확립 등 사안마다 청와대와 검찰은 갈등을 빚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조직의 운명’이 걸린 이 당선인의 검찰개혁 청사진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당선인이 검찰개혁 공약을 내걸지 않았던 만큼 참여정부보다는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BBK 관련 특검 수사결과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민단체 등에서 검찰의 ‘정치 시녀화’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검찰 인사는 “과거 정권교체기보다 큰 변동은 없을 것 같지만 검찰을 향한 시선은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우려하며 “정성진 법무부 장관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유임 여부가 첫 단추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체질개선 한창
최근 이택순 경찰청장 후임으로 어청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내정된 경찰청 사람들은 수사권독립에 대한 이 당선인 입장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인수위 보고 자리에서도 “기초질서를 확립하고 공권력 권위회복을 위해 더욱 분발해 달라”는 당부정도만 나왔을 뿐 조용히 지나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통합·축소의 큰 물결은 거스르지 못할 전망이다. 인수위는 경찰에 예산 10% 절감과 부서 통·폐합방안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자체적인 인력 재배치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광역자치경찰제도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 경찰조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못잖게 국민 실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국세청도 개혁 사정권에 들어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국세청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발 빠른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당선인이 세금징수 위주에서 ‘친기업적인 국세청’을 표방한 터여서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인수위 쪽은 국세행정개혁을 위한 실무팀 가동과 부동산투기방지를 위한 TF팀 구성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국세청의 고위직 세무공무원과 요직 간부들의 물갈이와 더불어 대대적인 자리바꿈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 조직 개편, 하부기관 인사는 말할 것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경제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기세무조사 비율을 대폭 줄이는 등 기업 감시 역할을 줄이는 것은 멀리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력기관에 대한 이 당선인의 수술작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수위 인사는 “그 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파격적인 안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며 “출범을 전후로 개혁의 속도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기 어청수 경찰청장 내정, 왜?
권력교체기에 이뤄진 어청수 경찰청장 내정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찰청장 내정은 청와대와 이명박 당선인 쪽이 사전교감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겉으론 청와대 추천, 당선인 수용으로 진행됐지만 실제론 인수위가 먼저 어 청장을 내세웠다는 것.
인수위가 차기 치안총수로 어 청장을 내세운 것은 그가 비고시 출신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전임이었던 최기문·허준영·이택순 경찰청장은 모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출신이어서 간부후보생 출신 경찰간부들의 불만이 적잖았다.
한편에선 어 청장과 당선인의 인연을 주목하기도 한다. 어 청장은 서울 강남서 정보과장이던 1992년 이명박 당선인과 만나 교분을 시작했다. 이 당선인이 종로에 출마할 땐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으로 뛰었다.
2000년 서울 은평경찰서장 땐 이 당선인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과 깊은 친분을 나눴다는 전언이다.
경남 진주출신인 어 총장이 신임 경찰총장으로 내정됨에 따라 검·경은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의 수장체제로 접어들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경남 남해 출신이다.
한편 새 정부 출범 뒤에도 임기가 남은 주요 고위직은 전윤철 감사원장(임기만료일 2011년 11월), 임 검찰총장(2009년 11월),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2010년 8월),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2010년 8월), 권오룡 중앙인사위원장(2009년 8월), 조창현 방송위원장 (2009년 7월) 등이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임기제 취지는 지켜주는 게 좋다”고 요구했지만 이 당선인 쪽은 ‘코드인사’가 적잖다며 교체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