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지는 핵뇌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터질 듯 터질 듯 위태로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MB)과 박근혜 전 대표의 기 싸움은 새해 들어서도 불씨를 키워가는 모양
새다. 누가 됐든 결정적인 점화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박 전 대표는 급기야 최근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당선인 쪽이) 공천을 잘못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를 잘 아는 정계 관계자들은 “마지막 상황까지 고려한 계산된 말임이 틀림없다”고 입을 모았다. MB쪽 핵심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해 대선정국에서 친
박진영을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가 최고의원직을 내놔야만 했다. 박 전 대표도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4월 총선을 겨냥,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쪽의 진검승부를 추적했다.
이 쯤 되면 동반자가 아니다.
대선 이후 꿈꾸었던 밀월관계는 물 건너간 지 오래고 당 안에선 “적보다 무서운 동료”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천시기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갈등이 내분을 넘어 분당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양쪽은 ‘최후 통첩성’ 발언을 앞 다퉈 내놓으며 무차별 포화를 퍼붓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앙금은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시각이다.
박 전 대표는 정치권에서도 단어사용에 철저함을 보이는 대표적 여걸이다.
그런 그가 지난 10일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과의 신년모임에서 ‘폭탄성 발언’을 내놨다.
“수단·방법 안 가릴 것”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 쪽을 염두에 둔 듯 “공천을 잘못하면 좌시하지 않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할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당헌 당규대로 한다고 말만 그럴 게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공천은 새 정부 성공을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공천을 새 정부의 성패 여부와 연관한 것은 이 당선인 쪽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전 대표와 친박진영 인사들은 친MB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당 지도부가 3월 공천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밀실공천을 통한 당의 사당화”라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계속해 공천시기를 늦추는 것은 결국 물리적 심사시간을 줄여 밀실에서 공천하겠다는 의미란 얘기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나라당이 이방호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총선기획단을 발족시킨 날이어서 박 전 대표가 작정을 하고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일부 강성 의원들은 총선기획단 또한 ‘시간 벌기용’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자리에 함께 한 참석의원 32명은 “박 전 대표와 전적으로 뜻을 같이 하고 행동을 함께 하겠다”며 도원결의식 의지도 다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심의 미소 ‘자유신당’
박 전 대표의 반발은 겉으론 당 지도부를 겨냥하지만 실제론 이 당선인 쪽이 타깃이다.
근래 친박진영 의원들 사이에선 “결정적으로 도와줬더니 돌아온 것은 비수뿐이다” “처음으로 공천위협을 느껴봤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내린다고 하더라” 등의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박 전 대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한 것도 위기감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친박진영에서 더욱 감정이 악화된 이유는 이 당선인 쪽이 박 전 대표의 반발을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캠프인사는 “최소한 조금이라도 시간을 두고 반박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경선라이벌을 당사자도 아니고 그의 최측근이란 사람이 ‘정신’ 운운하며 공격한다면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당선인 쪽에선 박 전 대표의 경고성 발언이 잇따라 나온 뒤에도 “정치적 이해에만 묻힌듯해 안타깝다”면서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친박진영을 자극했다. 배수진을 친 박 전 대표에게 “할 테면 하라!”는 식의 답변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박 전 대표가 아무리 뒤로 물러난다고 해도 탈당 등의 강수를 두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양쪽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은 적절한 선에서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진영과의 계속되는 갈등이 결국엔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적잖다.
친박, “퇴로는 없다”
이런 양쪽의 갈등을 가장 흐뭇하게 지켜보는 쪽은 이회창 전 총재의 (가칭)자유신당 사람들이다.
새 보수주의를 기치로 신당을 추진 중인 이 전 총재는 최근 박 전 대표에게 다시 한 번 구애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는 “지금 당장 같이 할 수는 없더라도 강물은 바다에서 다시 만난다”면서 “뜻을 같이 한다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건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여의도 정가에선 한나라당 분당 시나리오와 이른바 ‘창·박 연대설’이 점차 힘을 받는 분위기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합신당이 산산이 찢어질 경우 그 파급력은 반대편으로도 전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며 “충청권과 영남권에서 자유신당이 초반 분위기를 선점할 경우 친박진영은 더욱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이어진 박 전 대표의 독설은 더 이상 후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벼랑을 향해 치닫고 있다.
MB쪽 역시 이에 움찔하기보다는 더욱 몰아치고 있어 사태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양쪽의 갈등이 올봄 총선을 앞두고 당을 또 한 번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기의 NGO, 대반격 작전
대운하 건설 관련 저지 활동 전방위 시동
한나라당의 대선승리는 시민단체 진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보수로 흐르는 사회분위기는 관가, 정가를 넘어 진보성향의 거대 단체인 참여연대 까지 위기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단체관계자는 “기존 방식만으론 힘들지 않겠느냐는 자성론이 내부에서 적잖게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확보한 자료는 많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관련된 단체는 더욱 사정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감사에 나서는 등 여러 모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진보진영의 일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지원 중단을 요구해 왔고, 이 당선인쪽에서도 이를 적극 받아들일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단체들도 새 정부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폐지방침을 원칙으로 정한 터라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관련단체 인사는 “대부분의 과거사위가 대선 뒤 없어질 것을 예상, 지난해 서둘러 정리작업을 마쳤다”면서 “당선인 쪽이 보수언론들과 손잡고 무분별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은 이 당선인 쪽이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중심으로 반격을 꾀하고 있다.
문화연대와 환경연합 등이 중심이 된 ‘경부운하 저지 시민운동’은 최근 한반도 대운하 건설 즉각 철회를 주장하며 국민서명운동과 반대시위를 준비 중이다. 나아가 예산감시 및 건설관련 단체들도 구체적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어서 행보가 주목된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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