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들의 추석 용트림

용을 지칭하는 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항룡(亢龍, 승천한 용), 비룡(飛龍, 하늘을 나는 용), 잠룡(潛龍,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이다. 용은 전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한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치권에서 목도할 수 있다. 다가오는 추석 민심을 두고 용꿈을 꾸는 사람들이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 역시 항룡, 비룡, 잠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미 꿈을 이룬 항룡에는 YS, DJ를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대중에 알려진 비룡군에는 박근혜, 정동영, 손학규, 정몽준 인사들이 포함된다. 잠룡군에는 한나라당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를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주당에는 정세균, 추미애, 김부겸 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추석을 맞이해 고향 방문보다 대권꿈에 가슴이 설레는 용들의 행보를 추적했다.
이미 승천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사생결단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10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구정권의 비리 사건과 좌파 세력의 척결을 내세우며 각을 세우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을 빌미로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압박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초 대북 특검을 통해 전 정권과 갈등을 벌인 것과 유사하다.
비룡 정몽준 행보 ‘눈길’
항룡의 다툼에 비해 잠룡과 비룡의 행보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미 과거 대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박근혜, 정동영, 손학규, 정몽준 4룡들은 차기 대권을 향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상임위를 중심으로 ‘대권 수업중’이다. 차기 지도자로 우뚝서기위한 내공 쌓기에 전념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에게 패한 정동영 전 의장은 7월초에 미국 듀크대 초정 교수 자격으로 연수를 떠나 정치 일선에서 잠시 비껴 있다.
정 전 의장은 공공정책이나 환경 분야에 관심을 두고 관련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견문을 넓힐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서울 은평을의 문국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 정 전 의장이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손학규 전 대표는 ‘자유인’으로 삶을 만끽하고 있다. 정 전 의장과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박진 의원에게 패한 손학규 전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 자택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손학규 지지모임인 선진평화연대와 경선에서 손 전 지사를 도왔던 사람들이 정기 모임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손 전 지사의 정계복귀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비룡인 박근혜, 정동영, 손학규 등 3인에 비해 그나마 분주하게 대권 행보를 보이는 인사는 정몽준 최고 위원이다.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해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 정 최고는 발 빠른 현안 대응과 스킨십 넓히기에 분주하다.
최고위원으로서 ‘공기업 선진화’, ‘최고위 무용론’, ‘이명박 정부 회전문 인사’ 등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친박 친이 양대 축 사이에 ‘틈새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귀공자’, ‘황태자’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동료 의원, 보좌관, 기자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대다수 비룡들이 정중동속에 내공을 쌓는 사이 잠룡들은 차기 대권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눈에 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7월부터 수도권 규제완화 쟁점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김 지사는 이명박 정부가 ‘선 지방발전-후 수도권 규제 완화’ 발표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변에서는 ‘너무 오버한다’, ‘고립을 자초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권용 행보’라는 지적이 많다. ‘도 지사를 한번만 하고 말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김 전 지사다.
반면 홍준표 원내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은 잠룡으로 구분되지만 차기 대권 행보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원내 대표직에 충실하겠다’고 한 발 비껴 서 있고 오 시장 역시 ‘서울시장을 한 번 더 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가 최근 정보위원 위원장에 자기 사람을 심고 국정원관련 압박과 관련 발언의 수위를 높이면서 차기 대권을 위한 ‘국정원 길들이기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미국에 머물고 있지만 지난 3일 미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사실상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전 최고는 미국 체류 100일 기념 간담회를 통해 파나마 운하를 언급하며 “운하가 관광 사업에 연계돼 일자리도 창출하고 수입도 올리고 있어 파나마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극찬을 했다.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로 알려진 그다.
특히 이 전 최고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의원직 상실 위기와 맞물려 한반도 운하 언급은 정치 복귀 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잠룡 정세균 ‘광폭 행보’
반면 정권을 잃은 민주당 출신 잠룡들은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 조심스런 모습이다. 단지 정세균 당 대표가 노골적으로 차기 대권 발언을 하는 등 적극적이다.
지난 대통합신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를 포기한 정 대표는 공공연히 측근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금강송’을 언급하며 ‘청와대에 금강송을 심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차기 대권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17대 탄핵 역풍에 따른 총선 실패로 2년간 미국 유학을 떠나 지난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추미애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천정배 의원 등 개혁그룹과 보조를 맞추며 차기 대권주자로 입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가 명절을 맞이해 여야의 비룡, 잠룡들의 속내는 고향이 아닌 대권 여의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형국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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