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대북 특사… 文 대통령 "다시 시작"
무산된 대북 특사… 文 대통령 "다시 시작"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0-06-18 09:02
  • 승인 2020.06.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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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17일 보도하고 있다. 2020.06.17.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0.06.17. [뉴시스]
조선중앙TV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17일 보도하고 있다. 2020.06.17.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0.06.17. [뉴시스]

 

[일요서울] 남북 정상간 소통의 물꼬를 터줄 대북 특사 카드마저 무산되면서 남북 관계를 복원할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를 두고 남북이 강대강 설전을 벌이면서 한반도 정세가 마치 4·27 판문점 선언 이전인 2년 전으로 회귀한 듯한 격랑기를 맞이했다.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북측에 제안했다는 사실이 1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알려졌다. 마침 문 대통령이 북한에 '함께 돌파구를 찾자'는 대북 메시지를 발신한 날이다.

2018년 3월과 9월 두 차례의 대북 특사단을 통해 남북 정상 간 만남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3차 대북 특사단 추진 역시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사전 물밑 단계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우리 측의 제의를 '불순한 제의'라고 일축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가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자국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북 특사 카드를 제시한 것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통신은 "공염불하면서 특사를 보내겠다는 남측의 불경스러운 태도를 엄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남측이 현 상황을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고 그 후과를 어떤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가는 대충 짐작이 되지만 이렇듯 참망한 판단과 저돌적인 제안을 해온데 대해 우리는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전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대북 특사 파견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며 일축하면서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의 발표로 우리 측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이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한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대북 특사 파견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북한으로부터 쏟아진 담화들에 대해 청와대가 이틀 연속 '강공 태세'를 취하면서 남북 경색 국면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전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 등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면서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 관계를 후퇴시켜선 안 되며 남과 북이 직면한 난제들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자는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북측이 김 제1부부장 담화에서 이런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북한이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파괴한 데 이어 문 대통령까지 정조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면서 일련의 행위들이 최소한의 선을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북한의 담화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자국민의 문제였으니 세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사실상 대북 특사 파견 카드도 무산되면서 현 상황을 돌파할 뚜렷한 해법이 없어 청와대 내부에서는 답답함이 뒤섞인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면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등의 사업들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북 간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전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박재규·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대북 전문가들과 오찬을 갖고 경색 국면에 접어든 남북 관계에 대한 고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일방적 파괴와 관련해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실망과 화, 좌절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렇지만 인내를 갖고 필요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미국을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이를 모멘텀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특사 파견이 사실상 무산된 것과 관련, 앞으로의 구상을 묻는 질문에 "계속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들은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정해서 하지 않지만, 상황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파악하고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이 역시 유동적인 흐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뉴시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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