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마지막 날 ‘게릴라 작전’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고기 잡는 법을 빗대어 ‘물고기를 잡아주는 아버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버지’로 표현한다. 이것은 자식을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강한 부정(父情)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계에는 독특한 교육으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들이 있다. 어장의 물고기를 싹쓸이 해 남몰래 자식들의 어망에 채워주는 아버지들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유통업계 1위, 재계순위 5위인 롯데그룹은 아무도 모르게 게릴라 작전을 벌였다. 신격호 회장이 자신의 주식 2000억 원을 4개의 결손 기업인 자회사에 무상증자 한 것이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그가 가진 돈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신의 기업에게 증자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내는 증여세를 물지 않고 자식에게 편법증여를 하겠다는 속셈이다. 롯데에서 일어난 31일 밤 대 게릴라 작전. 남들의 눈을 속여 가며 자식들의 어망에 물고기를 넘겨주려고 했던 롯데그룹의 회장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의 기업경영과 가족경영 그 양면을 살펴본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공시를 통해 신 회장의 지분이동을 공개했다.
신 회장이 27~28일에 걸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계열사 주식을 4계 계열사에 무상 증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신 회장의 지분을 받은 계열사는 롯데미도파, 롯데브랑제리, 롯데알미늄, 롯데후레쉬델리카 등 4곳의 결손기업이다.
결손기업 재무건정성?
자녀들 편법증여?
계열사들에게 무상 증여된 주식은 대외적으로는 합법적인 방법이었으며, 명분은 재무건전성이다.
롯데미도파는 2006년 말 기준 순이익 617억원을 기록했으나 결손금이 3077억원에 달했다.
롯데브랑제리는 2006년 말 기준 41억원 순적자, 결손금 132억원, 롯데후레쉬델리카도 결손금이 94억원에 달한다.
신격호 회장은 롯데미도파에게 롯데제과(2만 6437주), 롯데칠성음료(5만8250주), 롯데삼강(4만 7180주), 롯데 알미늄 (6만 2407주) 등 7개 계열사 1716억 2000원이 무상증여했다.
또 롯데브랑제리는 롯데건설 주식 12만 8219주(133억 2800억원), 롯데 알루미늄은 롯데건설 4만 8100주(50억), 롯데후레시델리카는 롯데로지스틱스 주식 7만 1320(48억5600억)주가 각각 무상 증여했다.
그러나 신 회장이 현행법상 증여받는 기업이 결손 법인이고 대주주가 법인일 경우 증여세를 면제 받는다는 것을 이용해 편법증여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결손기업이 아닌 경우 신 회장이 증여한 2000억원 경우 전체 금액의 45%인 900억원의 증여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즉 결손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한 푼의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것이다. 또 대주주관계가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무상증여를 받은 기업의 대주주가 아들과 딸로 구성된 특수관계인이라는 사실이다.
무상증자의 방식이 결국 신격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신동빈, 신유미의 3인에게 다시 증여되는 편법증여라는 것.
롯데미도파와 롯데브랑제리의 경우 롯데쇼핑이 각각 79%와 90.9%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다시 롯데쇼핑은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14.6%)와 차남 신동빈 부회장(14.6%)이 대주주다.
결국 결손회사에게 넘긴 주식이 결국 두 아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 회장의 편법증여방법이 더 들어나는 경우가 있다. 롯데알미늄의 경우 일본 롯데상사가 84.5%, 신격호 회장 등 특수 관계인이 15.5%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롯데알미늄은 롯데제과 지분 13.4%, 롯데칠성 8.4%, 롯데건설 12.1%, 롯데기공 18.3% 등을 보유하고 있
다.
바로 손실기업인 롯데 알미늄에 롯데건설 지분을 증여했으며 롯데 미도파에 롯데 알미늄 지분을 넘긴 것이다. 결손회사에 결손회사의 지분을 넘기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롯데알미늄의 재무건전성을 높이며, 롯데 미도파를 통한 롯데알미늄의 지분확대로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계열사 총동원 막내 신유미 지분 급상승
또 베일에 감춰진 신유미의 등장이 시선을 끌고 있다. 2남 2녀 중 늦둥이 막내인 신유미에 대한 지분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미는 신 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미스롯데출신 서미경의 딸이다. 그러나 최근 롯데 후레쉬 델리카의 주요주주로 떠올랐다.
또 이번 증여에 앞서 롯데 관계사인 일본 미쓰이 물산으로부터 롯데 후레쉬 델리카의 지분 9.3%를 물려받았다.
막내 유미 씨와 장녀인 신영자가 롯데후레시카의 지분을 똑같이 보유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롯데에서 유미 씨에게 그룹차원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다.
이번 무상증자에 유미가 주요주주로 있는 롯데 후레시 데리카가 증여 받은 롯데로지스틱스 주식이 지난해 말 신 회장의 계열사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롯데냉동과 합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유미에게 재산증식을 하기위해 계열사들이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유미 씨가 본격적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롯데는 일본과 한국의 롯데는 각각 신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승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 회장의 장녀와 차녀인 신영자와 신유미의 지분경쟁도 본격 점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은 올해 85세의 고령으로 접어들었다. 그의 가족사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각각 2명의 부인과 1명의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2남 2녀의 자녀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홀로서기를 위해 각기 다른 배를 타고 떠나기에 분주하다.
이에 신 회장은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처럼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롯데 나눠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지난 31일 날 벌어진 신 회장의 게릴라성 무상증자에 대해 비난과 의혹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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