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대수술’ 3단계 칼바람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자의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능력과 실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선작업도 한창이다. 인수위는 일단 정부 부처의 대대적인 개편을 비롯, 공공부문을 개혁한 뒤 청와대 체제도 큰 폭으로 바꿀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4월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물밑작업에도 나섰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당·정 분리 폐지와 관련해 운을 띄운 것도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 이 당선자 쪽은 대통령 취임 직후 펼쳐질 총선에서 ‘의회 권력’을 접수하지 못한다면 5년 임기 내내 시달릴 것으로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대수술 작업은 정부, 청와대, 여의도 정치권을 향해 차례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 주요 로드맵을 추적했다.
‘탈 여의도 정치’를 선언했던 이 당선자의 최종목표는 또 다시 정치권의 목을 정면으로 겨눌 전망이다.
이 당선자 쪽은 성공적인 정권인수가 마무리되는 대로 올봄 총선을 통해 ‘여대 야소’ 정국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국회의장, 부회장은 물론 주요 상임위원장과 간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말할 것 없다.
이를 위해 정부 각 부처와 청와대 체제에도 칼바람이 회오리칠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도 도마 위에
이 당선자는 후보시절부터 대대적인 공공부문 개혁안을 내놨다. ‘절약하며 일 잘하는 실용정부 만들기’가 골자다.
이를 위해 56개 중앙행정조직을 대 부처 대국 체제로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416개에 이르는 정부위원회도 대폭 손본다.
공기업 민영화 또한 추진될 예정이다. 국가가 지분을 갖고, 경영은 민영화하는 싱가포르방식을 꾀한다는 것. 정부 부서는 현재 18개 부처에서 11~14개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한나라당 공세의 타깃이었던 국정홍보처 등이 이 과정에서 흡수 · 통합될 것으로 점쳐진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일부 기능을 합친 ‘국가전략기획원’ 신설 가능성도 관심대상이다.
통일부, 행정자치부, 여성부, 노동부 등은 정부 개혁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기관들이다. 인수위는 이 달 말까지 정부조직법을 마무리 한 뒤 조각과 인사청문회를 속전속결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국정과제 수정 불가피
정부 개편과 함께 논란이 됐던 주요 국정과제들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정권교체에 따라 남북문제와 대미관계는 가장 많이 영향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이 당선자 쪽은 참여정부 내내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외교라인 구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주 외교’를 강조하며 “미국에도 할 말은 하겠다”고 했던 노 대통령과 달리 이 당선자는 “전통적 관계를 존중하고 양국 관계를 더욱 강화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MB독트린’과 ‘비핵 · 개방 3000’ 구상으로 요약되는 이 당선자의 대북정책도 한반도 정세를 또 다른 방향으로 돌릴 전망이다.
이 당선자는 북핵 폐기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 이를 기준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대정부수술이 끝나는 대로 기존 청와대 체제를 대폭 손질할 전망이다. 일단 기존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외교안보실장의 ‘삼두체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과 업무가 겹쳐 ‘옥상 옥’이란 지적을 받아왔던 정책실장이 수정 대상 0순위다. 외교안보실장도 외교안보수석으로 격하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시민사회수석, 사회정책수석, 혁신관리수석도 조정되거나 없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참여정부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던 국정상황실 또한 존폐위기에 놓였다.
“반 통령 실패 없을 것”
하지만 청와대 개편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역시 당·청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들이다.
당·정 분리를 원칙으로 내걸었던 노 대통령이 청와대 정무기능까지 줄였다 적잖은 후유증을 겪은 게 반면교사가 됐다.
이를 위해 이 당선자 쪽은 정무수석직을 되살리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주례회동을 부활하는 등 다양한 방안마련을 꾀했다.
한편에선 이 같은 방안을 놓고 이 당선자 쪽이 ‘의회 권력’을 접수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금 제도 아래선 대통령과 당이 가까워질수록 행정 권력에 무게 중심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주된 이유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은 MB 진영 일각의 당·청 일체론에 대해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의도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당선자와 강재섭 대표가 서둘러 만나 ‘당·정 분리 원칙’을 재확인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MB그룹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오는 2월 취임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공천을 늦추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놨다.
비슷한 때 총선출마를 준비했던 이 당선자 측근들이 대거 인수위와 비서실에 복귀한 것도 이상 징후로 받아들여졌다.
‘친박’ 진영 일각에선 공천 연기주장에 대해 ‘밀실공천설’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새해 1월말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도 늦는데 더 이상 늦추자는 것은 ‘밀실공천’을 통해 자기 사람들을 국회에 대거 포진시키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이 당선자도 이를 의식한 듯 당내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역의원들 개개인의 희생이 좀 따를지도 모른다”고 의미 있는 표현을 썼다.
‘완전한 정권교체’ 전략
실제로 이 당선자 쪽은 정부와 청와대 개혁이 성공하더라도 정치권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절반의 성공’에 머문다는 인식이 강하다. 캠프에서 뛰었던 이들 중 적잖은 수가 총선 출마 준비에 들어간 것도 개인적 이유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한나라당 인사는 “이명박 식 탈 여의도 정치도 정작 국회를 바꾸지 않고선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행정권력에 이어 의회권력도 접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8년 새해 벽두와 함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이 당선자가‘절반의 승리’를 넘어 ‘완전한 정권교체’를 이뤄낼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MB맨들, 4월 총선 출마 리스트
정태근·장광근·조해진·강승규 등 10여명
대선 승리 후 총선출마를 꾀하며 흩어졌던 이명박 당선자의 최측근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헤쳐모여 식이다.
캠프 내 핵심인사인 이재오 의원이 “총선공천을 2월 대통령 취임 뒤로 미뤄도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게 신호탄이 됐다.
이와는 별도로 정두언 의원도 총선출마인사들에게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소집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출마 일정을 일단 늦추고 다시 모인 인사들은 백성운 전 선대위 상황분석실장, 강승규 전 커뮤니케이션팀장, 조해진 PR팀장, 송태영 전 공보특보, 김영우 국제정책연구원 정책국장 등이다.
백 전 실장은 자신이 관선군수를 지낸 경기도 고양시에서 출마를 준비했지만 인수위 행정실장에 임명됐다. 강 전 팀장도 서울지역 출마를 고민하다 부름을 받고 인수위 부대변인직을 맡았다.
조 전 팀장은 출마를 희망하는 경북 밀양 ·창녕지역으로 내려가려는 무렵 연락이 와 다시 서울에 눌러앉았고 수도권과 청주출마를 검토 중인 송 전 특보로 비서실에 합류했다.
경기도 포천·연천 출마를 준비했던 김 국장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 외에도 박영준 인수위 총괄팀장은 경북 고령·성주·칠곡 출마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이밖에 전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MB맨들도 적지 않다. 정태근 전 서울시 부시장(서울 성북 갑), 김해수 후보비서실 부실장(인천 계양 갑), 장광근 대변인(서울 동대문 갑), 은진수 변호사(부산진 갑) 등이 금배지를 노리고 열전에 뛰어들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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