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숨죽인 관가

이명박(MB)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관가엔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새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진행될 변화가 어떤 것이 될지 그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곧 들어설 새 정부 명칭을 ‘실용정부’로 정했다. 이에 앞서 이 당선자는 선거 때 공개한 공약집을 통해 정부조직 개편 시기를 2008년 2월로 밝힌 바 있다. 이 두 가지만 미뤄 봐도 곧 관가에 폭풍이 몰아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특히 공무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것은 조직개편 내용이다. 서울 광화문청사와 경기도 과천청사, 대전 제2청사에선 벌써부터 여러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다.
이 중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은 ‘중앙부처 대 축소’ 시나리오. 정보통신부를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와 하나로 묶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에 대해 공무원들은 실현가능성 80%이상이라 보고 있다. 관가의 각 부처는 생존전략마련을 위해 초비상이 걸려 있는 분위기다.
시중에 나도는 얘기를 종합할 때 바람 앞의 등불 신세에 놓인 대표적 부서는 국정홍보처다. 한나라당의 대표적 공약이 국정홍보처의 폐지이기 때문이다. 국정홍보처 직원들은 새 정부의 청와대 입성을 앞두고 국정홍보처 폐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또 폐지는 아니지만 대대적 수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부처들도 벌벌 떨긴 마찬가지다. 특히 경제관련 부처는 이 당선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칼을 들이댈 전망이다.
경제인 출신인 이 당선자는 ‘경제대통령 이명박’을 대선표어로 내세울 만큼 경제문제에 대해 적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당선자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들을 비판하는 입장이어서 대 부처, 대국 체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 부처 대국 체제는 잘게 쪼개진 부처들을 합쳐 큰 부처와 큰 국으로 바꾸겠다는 얘기다.
여기에 거론되는 것은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이다. 현 정부의 최대 수혜부서인 기획예산처를 재경부와 하나로 묶을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 금감위와 금감원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주목거리다.
대북정책, 외교중심 전환
이 당선자의 실용정부가 열리면 경제정책와 더불어 가장 관심 끄는 부분은 대북정책. 이에 통일부를 어떻게 개편할지도 국민적 관심사다. 남북정상회담 등을 이끈 통일부는 현 정부에서 조직이 비대해진 감이 없잖다. 이에 다른 부처로의 통폐합 가능성이 거론되는 부처 가운데 하나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은데 대한 국민적 만족도가 크므로 대북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관가 안팎에서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당선자를 도운 외교안보 진영은 국제정치 분야 전공자들이 많아 정책의 우선순위가 외교 · 국방 · 통일 순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참여정부의 통일중심 대북정책을 외교중심 대북정책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 당선자 의지에 앞서 대수술이 절실한 부처로 꼽히는 곳 중 하나가 교육인적자원부다.
교육부직원들은 이 당선자의 교육정책 공약 중 ‘대학입시 자율화’ 등이 교육부 축소와 물갈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좌불안석이다. 또 교육부 안에선 차기 교육부 수장이 누가 될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정치권인사, 대학총장, 외부기관 간부 등 교육계인사 중 어떤 사람이 올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당선자가 전문분야, 전문인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제3의 인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당선자가 제시한 대입자율화나 공교육 내실화 등 공약이 구체화되면 대입정책 등에서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대입정책 변화로 각종 권한과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가면 교육부가 ‘인사태풍’에 휘말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입시담당부서를 중심으로 한 여러 조직들이 크게 재구성될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어수선한 분위기다.
재경부 개편 새 정권 시험대
참여정부의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정책을 맡아온 건설교통부도 변화의 바람을 피해가긴 어려울 듯싶다. 건교부는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동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건교부 공무원들은 대부분 대선결과에 크게 흔들림 없이 평소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주요 공약 중엔 건교부와 직결된 게 많아 변화에 대해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이 당선자는 건설에 대해 전문적 지식이 있는 만큼 불합리한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전하면서도 “참여정부의 건교부는 이 당선자와 뜻을 달리한 부분들이 있어 아무래도 우리 쪽(건교부)에도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 것 같다”고 불안감을 비췄다.
특히 이 당선자의 주 공약인 경부운하 건설과 관련, 건교부가 주도한 태스크포스는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어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건교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다.
이 당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경부의 변화다.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그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초반의 평가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당선자 쪽이 벌써부터 재경부 개편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재경부 직원들은 이 당선자 취임을 앞두고 조직개편 향방과 정책기조 변화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울러 인수위에 누가 참여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 경제부총리엔 누가 유력한지 등도 재경부의 관심사다.
재경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뭣보다 조직 축소 여부가 제일 큰 관심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차기정부에서 재경부 역할이 클 것이므로 조직축소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이 당선자가 모든 공조직의 군살빼기를 할 계획인 이상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경찰, 사상최대 인사개편 불안
공정거래위원회는 새 정부 노선이 공정위의 정책방향과 사뭇 다른 점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부당행위를 조사, 제재하는 역할을 맡아온 만큼 경제인 출신으로 친기업인 성향을 가진 이 당선자가 취임하면 심상찮은 변화가 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선자는 공약을 통해 공정위의 주요 업무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고 공정거래법도 경쟁촉진법으로 돌리겠다고 밝혀 공정위 개편을 예고했다.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뜻이다. 공정위는 출총제를 없애는 것은 때가 이르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멀리 볼 땐 없애는 게 불가피하나 재벌들의 순환출자 등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책기조가 달라 조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조사부문에 쏠렸던 공정위 역할이 이 당선자 뜻에 따라 상당부분 약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군에도 한차례 바람이 불 것으로 점쳐진다. 국방부는 한나라당 성향이 참여정부와 다른 점들이 많아 군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당선자의 국방분야 공약이 △미래형 최첨단 정예강군 육성 △신세대 병영환경과 복지 개선 △희생장병에 대한 국가지원 등임을 감안, 다소 안심하는 눈치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찰청 안엔 ‘인사태풍 소문’이 번지고 있다. 경찰청 간부들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사상 최대의 인사개편이 단행될 것이라 보고 있다.
정권교체시기가 내년 2월 이택순 경찰청장 임기만료 시점과 맞물려 있어 이때 새 청장임명과 더불어 간부급 인사를 할 것이라는 게 경찰청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경찰청의 인사담당 관계자는 “인사 때가 지났음에도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인사가 늦어지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정권교체를 앞둔 시점이어서 그런 것 같다. 직원들(경찰간부) 사이에서 인사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것은 사실이나 대규모 인사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예견했다.
BBK 사건에도 법무부 ‘조용’
BBK주가조작의 주인공인 김경준씨 귀국으로 홍역을 치른 이 당선자는 특검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법무부에 대해선 별다른 공약이나 언급이 없다. 따라서 법무부는 술렁이는 다른 부처와 달리 조용히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검찰개혁안들을 내걸어 법무부를 긴장시켰던 데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게 법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분위기와 다르다. 새 정부가 검찰에 어떤 변화를 요구할지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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