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출 위기 놓인 친노, ‘신당 프로젝트’ 본격 가동
축출 위기 놓인 친노, ‘신당 프로젝트’ 본격 가동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7-12-26 13:31
  • 승인 2007.12.26 13:31
  • 호수 713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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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봉화 구상’

5년 전의 기쁨과 영광은 온 데 간 데 없다. 참패의 화염만이 가득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얘기다. 대선 패배 원인 중 상당수가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탓이라고 돌리고 있다. 창조한국당 관계자도 문국현 후보가 한 자릿수 대에 그친 것과 관련,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총체적 난관에 부딪힌 통합신당은 새해 1월 전당대회를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설 상황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이 발목을 잡을 분위기다. 당내 일각에선 “대선에서 진만큼 이 기회에 완전 갈라서자”는 강경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 뒤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친노 그룹들도 이런 ‘축출론’에 대해 불쾌하다는 분위기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이 나서 전열재정비에 나선 뒤 노 대통령의 퇴임과 맞춰 ‘친노 신당’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8대 총선을 겨냥한 ‘친노 신당 프로젝트’를 집중 취재했다.

통합신당 내 친노 그룹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이 바뀐 이상 참여정부가 기치로 내걸었던 대표적 정책들이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기 말 기자실 폐쇄를 비롯해 주요 사안들에 대해 이명박 당선자 쪽은 “원상복귀 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군 내 반응도 최악이다. 통합신당 안에선 “이대로 가면 의회권력도 넘겨줄 수밖에 없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노 대통령과의 ‘결별’까지 거론될 만큼 심각하다. 정 후보 쪽 관계자는 “경선 뒤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오락가락했던 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분석하며 “확실한 인적 쇄신 없이는 총선도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언급된 인적 쇄신의 핵심 대상은 다름 아닌 ‘친노 그룹’을 겨냥한 것.


“노 지지층 없었다면…”

신당 관계자는 “당초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왔을 때 구상은 친노 그룹을 뺀 나머지 의원들과 민주당을 결합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결국 이를 해 내지 못한 게 패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노 그룹 인사들 생각은 다르다. 참평포럼 관계자는 “당초 20%도 안 되던 정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25%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노 대통령 지지층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선을 전후로 ‘참평포럼’을 해산한 것도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병완 포럼 대표는 “참평포럼이 활동을 끝냈다고 해서 참여정부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친노 그룹 해체설을 부인하며 “이후 정치상황을 반영, 활동방향을 새로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포럼 관계자는 “정 후보 쪽이 계속해서 대선패배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돌리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친노 축출론으로 당이 산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광장’ 등 불씨 여전

신당 안팎에선 여러 이유들을 들어 ‘친노 신당’ 태동에 회의적이다. 우선 경선에서 보여준 친노 주자들의 부진이 충격적이었다.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의원이 나선 뒤 ‘단일화’까지 이뤄냈지만 결국 예선탈락의 쓴 맛을 봐야만 했다.

그만큼 친노 세력의 정치력이 급감했음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4월 열릴 총선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발목을 잡고 있다. 신당은 오충렬 대표가 주위의 만류에도 ‘대선패배책임’을 이유로 사퇴한 상황이다. 또 다시 ‘비대위’ 체제에서 1월 전당대회를 통해 불씨를 살려야 할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친노그룹이 먼저 당을 나가 신당을 꾸리기엔 여러모로 여건이 불리하다.

참평포럼 관계자도 “현재로선 따로 정치세력을 도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탈당보다는 통합신당 내 같은 지향점을 가진 정치인들과 함께 총선에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신당 안에서 ‘친노 축출론’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 분위기는 오히려 반전될 수 있다는 게 친노 그룹 관계자의 예견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8월 ‘광장’ 모임에서 이렇게 경종을 울렸다. “참여정부를 부정하면 안 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정통성과 성과, 한계를 안고 가야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


특별한 ‘결속력’

친노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18대 총선에 나설 후보군들은 상당수 확보해놓은 상태다. 대선이 끝난 만큼 정치인들 각자의 활동반경이 한결 자유로워진 면도 유리하다.

참여정부와의 ‘끈’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결속력은 다른 계보들보다 튼실하다는 평가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이광재 의원, 김두관 전 장관, 이강철 특보 등 유력정치인들과 이병완·안희정·김만수 등 참평포럼멤버들을 합치면 최소 50여명은 출마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의 친노지지세력들도 각 10여명 안팎의 출마설이 나돈다.

대선 뒤엔 청와대 개편을 통해 전해철 전 민정수석, 윤승용 전 홍보수석, 박남춘 전 인사수석이 가세했다. 이들은 일단 통합신당의 총선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친노그룹의 단체 행동여부에 따라 당적은 유동적이다. 최근 유시민 의원이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 출마설’을 내비친 것도 ‘친노 신당설’과 관련해 의미 있는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유시민 대구행, 왜?

하지만 뭣보다 중요한 것은 ‘승부사’인 노 대통령의 지원여부다. 노 대통령은 “퇴임 뒤에도 정치와 언론, 문화와 관련해 계속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지역균형발전’과 ‘생태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결같이 총선과 깊은 관련이 있는 화두들이다. 퇴임 뒤를 고려한 노 대통령의 ‘봉화 구상’이 ‘친노 신당’ 태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청와대와 이명박 당선자와의 관계도 변수다. 신당관계자는 “양측이 초반부터 갈등을 빚는다면 친노그룹의 ‘총선 올인’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전망하며 “정권교체기의 밀월관계가 총선까지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친노 신당설’과 맞물려 친노그룹의 ‘핵분열’ 시나리오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미 대선을 거치며 이런 기류는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는 이회창 후보를 택했고 이해찬 전 총리 등 통합신당 인사들은 정동영 후보와 손잡았다.

반면 실무진에선 문국현 후보로 옮긴 인사들이 많았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일부 인사들은 이명박 당선자 쪽으로 배를 옮겨 탔다.

친노 성향의 의원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진 전 장관이나 김 전 지사를 전형적인 ‘친노’라고 할 수 있느냐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부정적 시각을 보이며 “정치이념면으로 볼 때 친노는 여전히 있는 실체다”고 말했다. 꼭 친노 신당을 창당 않더라도 창조한국당과 손잡는 대안도 있다는 견해다.

정권교체기에서 우군에게까지 돌팔매를 맞고 있는 친노그룹이 노 대통령의 2월 퇴임과 함께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시 보는 노무현 인수위 뒷이야기

“5년 전 그들은 즐거웠다”

참여정부출범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는 54일간 활동하며 12대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다음은 그 때 인수위가 자랑스럽게 내놨던 내용들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점을 감안, 그 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 “맞습니다. 맞고요!”

1월 24일 일일업무회의. 당선자의 화법이 마침내 화제에 올랐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 : 최근 세간에 당선자의 화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희상 당선자 비서실장 : ‘맞습니다. 맞고요!’ 하는 흉내가 딱 맞더라.

이 대변인 : 그걸 갖고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이 와 있다.

오가는 대화를 재미있게 듣던 노 당선자.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고요!”


■ 기자실은 학원종합반(?)

인수위 기자실을 ‘입시학원 종합반’에 비유했던 글.

‘딱딱한 의자로 가득 찬 학원 강의실(기자실)은 오늘도 아침부터 수험생들(경쟁기자)로 넘쳐난다. 이 학원(인수위)이 요새 잘 나가는데다 강의실 출입(기자실 개방) 제한을 풀면서 많은 학생들(다른 부서 기자들과 인터넷 매체, 전문지 등)이 모두 이 학원으로 몰린다. 하루 일과는 담임선생(대변인)의 강의(공식 브리핑)로 시작된다. 학생들 항의가 이어지면서 가끔씩 과목강사(각 분과 간사나 위원)들이 특별강의(분과별 주요 사안 브리핑)도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의욕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학원강사들과 학생들의 면담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은 역시 흡연실과 화장실이다.


■ 전화 노이로제

1월 하순. 인수위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공포’에 한창 시달리던 때다. 한 인수위원은 “심할 땐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거의 2분 간격으로 전화가 걸려와 업무를 못 볼 지경이다”고 말했다.


■ 홀아비생활

50대 중반 나이의 한 인수위 인사는 “결혼 뒤 처음 떨어져 사는데…. 나이 먹으니까 더 힘들다”며 홀아비생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방에서 살다 서울로 ‘차출 된’ 인수위원들은 두 달 가까이 ‘고달픈 서울 살이’를 해야 한다. 그나마 설 연휴가 있어 다행이었다.


■ “여보세요, 노무현입니다”

지난 1월 중순. 노 당선자 집으로 전화를 건 방송사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당선자가 “노무현입니다”라며 직접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선 후에도 ‘집안 생활’엔 아무 변화가 없는 당선자인데다 비서도 쉬는 일요일이어서 전화를 직접 받은 것이다.


■ 정부명칭 아이디어 만발

노 당선자의 인수위는 공식홈페이지와 국민제안센터를 통해 새 정부 이름을 접수 받았다.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아 최종 선정된 ‘국민참여정부’ 외에도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열린 정부’, ‘시민의 정부’, ‘토론의 정부’, ‘국민사랑 정부’, ‘국민주권 정부’ 등이 많이 제시됐다.


■ 언론과의 전쟁

인수위는 수차례에 걸쳐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출범한지 얼마 안 된 1월 초, 인수위는 그 짧은 기간동안 1면 톱기사 19건이 실제 검토조차 안 된 사안이라며 확인취재를 거듭 당부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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