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홍준표-정두언 ‘기 싸움’
이재오-홍준표-정두언 ‘기 싸움’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7-12-21 09:54
  • 승인 2007.12.21 09:54
  • 호수 712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캠프 3인방 파워게임 시작됐다

대선정국을 거치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의 실세로 떠 오른 세 사람이 있다. 캠프 내 좌장이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BBK의혹을 온 몸으로 막은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 최측근으로 캠프의 기획본부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이 그들이다. 이명박 후보 ‘대세론’이 그대로 이어질 경우 이들 세 명은 승리의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가 일각에선 과거 ‘천-신-정’에 빗대 ‘이-홍-정’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세 사람들 간에서도 불꽃 튀는 신경전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이후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물밑싸움에 들어갔다는 것. MB캠프 내 실세들의 파워싸움을 추적했다.

MB 캠프 내 3인방으로 불리지만 저마다의 역할은 달랐다. ‘좌장’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외부의 적보다 더 강했던 박근혜 전 대표 쪽을 견제하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친박 진영이 적극적인 지지에 망설이고 있을 땐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 했을 정도다.

결국 그는 자신에 대한 집중포화를 맞고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동시에 캠프 내 활동도 전면에 나서기보다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MB쪽 관계자는 “그렇지만 이 의원이 이 후보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것은 분명하다”고 전하며 “역풍을 예상하면서도 그렇게 나서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BBK 수문장‘

반면 홍준표 의원은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국에서 이 후보와 동문수학했던 그는 평소 자리에서도 이 후보를 ‘선배’라고 부를만큼 두터운 정을 쌓았다. 지난 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서 이 후보가 자신이 아닌 오세훈 시장을 밀어 양쪽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대선을 치르며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

이 후보의 최대고비로 꼽혔던 BBK의혹이 그나마 무사히 넘어간 것도 홍 의원 공이 컸다. 그는 ‘모래시계 검사’란 과거 별칭에 걸맞게 법조계 인맥을 통해 관련정보들을 발 빠르게 입수했다. 기자들이 이 후보에게 불편한 질문을 할 때 “원래 이 선배가 좀 무대포 같은 면이 있었다”고 말을 돌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캠프 공보팀 관계자는 “사실 BBK문제는 워낙 복잡해 웬만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사안”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그나마 법률에 정통하고 달변인 홍 의원이 있어 잘 넘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지방 선거 뒤 이 후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혹은 친박 진영을 택할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지만 결국은 ‘상당히 친했던’ 이 후보를 택했다. BBK의혹은 상대적으로 변방에 있던 홍 의원을 캠프 내 핵심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11월 초 김경준 전 대표 귀국설이 나오면서부터는 사실상 비상등이 켜진 캠프를 진두지휘하
는 역할을 했다. 이 후보는 BBK에 관한 일은 전권을 위임하며 신뢰를 보냈다.


비서실장 0순위

정 의원 역할은 그야말로 ‘오른팔’과 같았다. 한편에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희정·이광재가 있다면 MB에겐 정두언이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치감치 MB지지를 선언했던 정 의원은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과 의혹 등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하자 먼저 이를 제기하며 해명하는 등 기민한 상황대처로 분위기를 끌고갔다. 범여권 공세에 맞춰 대처법을 내놓는 것도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재오·홍준표 의원이 강성 스타일이라면 정 의원은 온건파에 가깝다는 게 캠프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를 잘 아는 당 관계자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주변정세를 잘 분석하고 해법을 내놓는데 뛰어난 비서형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기존 정치인들 이미지보다 가벼운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청와대행에 성공할 경우 정 의원이 비서실장 후보 0순위란 말이 나오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 의원은 20여년 공직생활을 거치는 동안 국무총리비서실, 국무총리행정조정실 등에서 일했다.


‘동상이몽’ 3인

이들 세 사람은 대선 후 예상되는 당권경쟁에서도 일단 ‘한 배’를 탈 가능성이 높다. 각자 힘만으론 넘어서기 힘든 박 전 대표가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말 이 · 정 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보고 있던 메모엔 ‘당 대표 문제’가 버젓이 적혀 있어 더욱 의심을 사는 계기가 됐다.

‘포스트 강재섭’을 노리는 이들 3인방 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지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친박 진영과 또 한 번 일전을 벌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세 사람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적잖다는 전언이다. 상당기간 당내 비주류 중진으로 활동한 이·홍 의원이 정 의원을 ‘같은 급수’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는 견해다.

특히 ‘강성’인 이 의원과 ‘온건’을 대표하는 정 의원은 대선 전에도 여러 번 신경전을 치렀던 경험을 갖고 있다.

당내 경선기간 ‘이명박 검증론’이 제기되자 이 의원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신당을 창당해서라도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정 의원 등 소장파가 중심이 된 온건파는 ‘당 잔류’를 고수했다.


‘역할 분담설’ 솔솔

경선 후 이 의원이 친박 진영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울 때도 해법은 달랐다. 이 의원은 ‘최고위원직 사수’ 의지를 내비쳤지만 온건파는 ‘책임론’을 내세우며 2선 퇴진을 주장했다.

역시 중진인 홍 의원도 지방선거와 서울시당위원장 선거 등을 거치며 이 후보 주변 초·재선 의원들과 관계가 수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 쪽은 클린정치위를 이끌며 이 의원에 필적할 만한 정치력을 발휘한 만큼 더 큰 역할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이 의원은 오래전부터 당권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다. 홍 의원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등 금배지 이상의 포부를 여러 번 나
타낸 바 있다. 반면 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은 나름대로의 당 개혁안을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MB캠프 관계자는 “세 사람이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당이 크게 잘못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선 뒤 본격화할 신주류 간 기 싸움이 과연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불붙은 2인자 경쟁, ‘포스트 이명박’은?

평소 같으면 한나라당 1인자는 강재섭 대표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서는 역시 후보가 0순위일 수 밖에 없다. 대선 정국을 거치며 2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게 진행됐다.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포스트 이명박’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선 이후 당권의 향방이 누구에게 가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위상이 가장 크다. BBK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보다 박 전 대표의 MB 지지 유세가 더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박 전 대표에 맞설 상대로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몽준 의원이 꼽힌다. 2002년 대권에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박 전 대표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의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강 대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집중 공격하며 ‘도미노 탈당’ 우려를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이 의원은 이명박 캠프 좌장을 넘어 한나라당 대표 자리를 내심 노리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