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총선’ 올인 할 것”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1997년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범여권이 10년만에 다시 내줄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범여권이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후보 단일화’도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대선 결과를 기점으로 어떻게 정치력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두 승부사들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DJ와 노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임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꼬집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도 두 사람을 향해 일침을 날리며 대립각을 세웠다.
“김 전 대통령은 이인제가 뛰쳐나가서 됐고, 노 대통령도 그저 남을 끌어내려 지도자가 됐다. 그런 지도자들이 국민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으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나.”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사법처벌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안풍’ 등의 실체가 밝혀지며 홍인길 전 청와대 수석 등 최측근들이 법정에 서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정권교체의 후유증은 DJ조차도 피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 초기 ‘대북 특검’이 시작되자 동교동계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명박 대세론’이 대선 막판까지 이어질 경우 DJ와 노 대통령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질 전망이다.
‘햇볕정책’도 위기
이 후보가 ‘햇볕정책’ 기조는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들어선 전임 정부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와 관련, “햇볕정책은 북한주민들을 부유하게 못하고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며 지난 10년간의 남북정책이 북핵문제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비단 남북문제뿐만 아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정권교체에 성공할 경우 전임자들의 실정을 파헤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란 목소리가 작지 않다. 강성 의원들은 “모조리 파헤쳐 반드시 뜯어 고치겠다”는 공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극우보수그룹에선 이참에 DJ와 노 대통령을 청문회 자리에 세워야 한다며 ‘서명운동’까지 벌일 태세다.
DJ와 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조금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일치감치 범여권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양강 구도를 강조했던 DJ는 “자랑스러운 10년”을 강조하며 대역전을 주문한 바 있다.
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과 ‘정치개입’ 여부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청와대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10년”
범여권 관계자는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상까지 받은 김 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더 초조하지 않겠느냐”고 해석하며 “처음부터 지지기반이 약했던 노 대통령은 큰 잡음 없이 임기를 마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두 사람 모두 대선결과와 상관없이 내년 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DJ아들 김홍업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 통합신당에 가세한 것은 총선에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
통합신당과 민주당 내 상당수 인사들은 ‘후보단일화’나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총선에서의 고전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친노그룹 인사들도 대선보다는 총선을 위해 일찍 지역구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진다. 신당 경선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지지했던 이강철 특보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조직화’에 한창이고 갈매기사단은 노 대통령 고향인 부산·경남지역의 총선을 준비 중이다.
이들 외에도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이 2008년 총선출마를 위해 움직일 것으로 알려졌다.
DJ는 퇴임 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작 대선정국이 임박해선 자신의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노 대통령도 퇴임 뒤 정치와 언론문제만큼은 손을 놓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신당관계자는 “DJ와 노 대통령이 살기 위해서라도 총선엔 ‘올 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호남과 친노인사들의 분전에 따라 차기정부 임기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의 위기 속에서 이들이 정치력을 이어가기 위해선 내년 총선 결과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충분한 ‘방패막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사’는 또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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