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정국 4대 시나리오-새 판짜기 빅뱅

12·19대선은 싸움의 끝이 아니다. 내년 4월 새 정부와 임기를 같이할 18대 국회의원 총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이기는 쪽이 여세를 몰아 총선까지 승리한다면 말 그대로 ‘강한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가 된다면 노무현 대통령 표현대로 ‘반통령’ 얘기가 또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의 패자들 또한 배수진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패한다면 당의 존립이 위기에 놓이게 된다. 1
0년간 권력을 가졌던 범여권으로선 가장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17대 대선부터 내년 봄 총선까지 펼쳐질 4대 정국 시나리오를 추적해본다.
시나리오 1 범여권 핵분열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승하며 상승세를 타는 데 반해 범여권은 분열을 이어가며 총선에 임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여대야소’ 외엔 다른 결과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추진하는 ‘신당’ 위력이 변수가 되긴 하나 ‘보수 우세’란 기본구도는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 관계자들도 통합신당. 민주당, 창조한국당이란 각자의 깃발을 들고 총선에 임한다면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유권자들의 ‘견제 의식’이 총선에서 작용할 여지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범여권이 쪼개진다면 이 역시 정가 전체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명박 후보 쪽 인사는 “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의회권력을 강조했던 게 오히려 우리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하며 “경제에 대한 기대가 절대적인 만큼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MB지지층이 총선에서도 같은 힘을 발휘할 것이란 얘기다.
시나리오 2 보수층 단일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여기에 합류한다면 그 여세는 더욱 무서워질 전망이다. 대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두 후보 지지율의 합계는 60%대에 이른다.
이 경우 범여권이 힘을 모아 총선에서 맞선다고 해도 결과를 낙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단지 예전의 ‘양강 구도’가 이뤄진다면 전통적인 지지층이 뭉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범여권이 흩어질 땐 한나라당의 권력독식도 예견된다. 행정부와 의회가 임기를 거의 같이 하므로 ‘견제 장치’가 없어 임기 내내 오래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집권 초기 실정이나 무리한 의욕으로 임기 초반 민심을 잃는다면 ‘여소야대’가 될 개연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친박 진영 인사는 “대선을 거치며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은 오직 경제능력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보수그룹이 단일화해 총선에 임한다면 ‘압도적 우위’ 또는 그 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3 창 신당 부상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이기지만 이회창 후보의 신당이 떠오름으로써 범여권 세력과 3강 구도를 구성하는 시나리오도 점쳐진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MB와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햇볕정책을 ‘폐기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며 한나라당보다 강한 보수색채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또 신당창당과 관련 “모든 세력을 아우르는 새 정당을 곧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후보 쪽은 신당 참여 세력으로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등 기존 정당의 이탈세력, 참주인연합 등을 고려 중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신당이 총선에서 뜨기 위해선 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 진영’의 가세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MB그룹과 ‘친박 진영’은 또 한 번 격렬한 권력 다툼을 할 것으로 보여 이 과정에서 신당에 합류하길 바라는 눈치다. 이처럼 보수정당이 둘로 나뉜다면 이는 정치권 새 판 짜기의 시작이라 할 만큼 정국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범여권으로선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활로를 찾기가 한층 쉬워지는 시나리오라 볼 수 있다.
시나리오 4 한나라당 분당
대선 뒤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의 보수신당 등 3개 이상의 정당으로 쪼개지는 경우다. 현재로선 범여권이 막판 ‘단일화’를 통해 대선에서 대역전에 성공해야만 예측해볼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지면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선거에 임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지지를 놓고 고심하다 막판 선거유세에 뛰어든 것도 대선패배가 당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 관계자는 “패배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내면서도 “만에 하나 지는 일이 생기면 그 땐 당의 존립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사분오열 쪼개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20년 전 대선·총선 결과는 3당 합당 ‘대반전’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과 5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대선은 20년을 주기로 특별한 정치환경을 만든다. 비슷한 시기에 양대 선거가 치러지므로 대통령과 의회가 임기를 같이 하는 이유다.
20년 전인 1987년 대통령선거는 6월 민주화 항쟁의 열기가 이어지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교체’ 열망이 높았다.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선거제도도 야권에 유리했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두 대선 후보의 분열로 최종승자는 집권여당 후보였던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그 때 노 후보는 820만여 표(36.6%)를 얻었고 YS와 DJ는 630만여 표(28%)와 610만여 표(27%)를 얻었다. 김종필 후보는 180만여 표(8.1%)를 획득했다. 야당후보를 뽑은 유권자들이 훨씬 많았지만 표가 나눠짐으로써 어부지리를 안겨준 셈이다.
이듬해인 1988년 4월 13대 국회의원 총선은 여당에 대한 반감에다 ‘견제심리’까지 작용, ‘여소야대’ 현상이 두드러졌다. 집권정
당인 민주정의당은 125석으로 과반수에 25석이나 미달했다. 반면 야 3당(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은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이후 의회에서의 열세로 절치부심하던 민자당은 1990년대 초 ‘3당 합당’을 통해 정치권 새 판 짜기를 꾀해야만 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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