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뱃길 따라 갖가지 풍물이 몰려들던 여주장은 5백년 역사를 자랑한다. 양화 장에서부터 시작돼 여주5일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며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고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조달해줬다.
지금의 여주5일장은 여주군청 별관에서부터 중앙통까지의 시장통과 그 사이 골목길에 펼쳐진다. 장날이 되면 집에서 키우던 씨암탉과 흑염소에서부터 고추 모종·매화꽃 묘목에, 산과 들에서 자란 산나물과 알뜰살뜰 지은 귀한 농산물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거기에 만병통치약인 두꺼비 기름과 무조건 천원 하는 장돌뱅이 난전까지 합세하면 여주장의 흥은 절정에 달한다. 여주장에 물건을 대던 남한강의 황포돛배는 예전처럼 신륵사 앞을 오가고 뱃전에 부딪는 강바람이 시원하다. 명성황후의 자취와 백성을 보살피던 세종대왕의 숨결이 느껴지고 도자를 빚던 도공의 섬세한 손놀림도 따라 흐르니 여주는 찬찬히 돌아볼 곳 많은 고장이다.
서울에서 1시간 여 달리면 남한강 줄기를 거슬러 여주에 닿는다. 조선시대 황포돛배가 그림처럼 떠있던 여주의 여강(驪江)이다.
황포돛배란 말 그대로 누런 포로 돛을 달고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던 배다. 삼국시대부터 신륵사 앞 조포나루는 서울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 4대 나루로 불리며 충주에서 한양까지 풍물을 실어 나르던 중간 기착지였다.
통행량이 워낙 많아 신륵사 하류에 보제헌이 설치되어 숙박을 제공하기도 했다. 더불어 발전한 것이 여주장이다.
‘뼈대있는 5일장’
여주군지에 따르면 ‘조선시대 여주에서 주로 생산된 공산품은 싸리산 도자기와 창호지이며, 남한강을 이용한 배들이 주로 농산물이나 임산물을
실어가고, 올 때는 생선, 새우젓, 소금 등을 들여왔다’고 기록돼 있다.
적어도 5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니 여주장은 ‘뼈대 있는 장’이다. 세종 연간에 들어서는 여주 양화군에 정조 250석 적재적량의 조선이 15척, 그 이하 사선 포함 20여척이 있었으니 양화장, 천령장, 흥천장 등이 성행했다. 이제 세월이 지나 여주5일장만이 그 명맥을 잇는다.
여주 5일장은 여주군청 별관에서부터 중앙통까지 시장길을 따라 펼쳐진다. 굳이 세분하자면 중앙통부터 상리 창리 하리로 구분되는데 상리부터 창리까지는 유명 브랜드와 카페 등이 들어선 여주 최고의 번화가이고 창리부터 하리까지는 여주의 재래시장인 제일시장이 서 있는 푸근한 곳이다.
달력의 끝자리가 5와 10인 장날이 되면 상리부터 하리까지의 사잇길과 골목골목에 좌판이 들어서 왁자지껄해진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리
쪽에 있는 제일시장과 그 사이 좌판이 먼저 떠오르기에 ‘하리장’이라고도 부른다.
추억어린 ‘호기심 천국’
여주 5일장을 찾으면 재미난 것이 많다. 5일장을 따라 다니는 떠돌이 장꾼들의 좌판부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끼고 온 오리, 토끼, 강아지, 씨암탉에 흑염소까지 나와 있다. 선홍의 매화꽃, 복사꽃, 해당화, 남경화 묘목도 한 판 장으로 펼쳐지고 채소전이며 어물전에 인근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북적인다.
뒷다리가 그대로 붙은 돼지 반 마리를 어깨에 걸쳐 멘 정육점 아저씨도 지나가니 옛 모습 그대로라 정겹다. 배경음악으로 빠질 수 없는 ‘뽕짝 메들리’도 들린다. 10살부터 부모님을 도와 만두를 빚었다는 간판도 없는 만두집은 장날에만 문을 여는데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강에서 잡은 우렁이가 한 바가지에 삼천 원이고 반들반들 호미는 천원이면 살 수 있다. 집에서 말린 콩가루, 볍씨, 팥, 수수 등 고만고만한 봉투를 가득 늘어놓은 할머니는 수수부꾸미와 찹쌀 부꾸미를 즉석에서 부쳐 판다. 예전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여주장은 추억의 장터요, 어린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호기심 천국이다.
무좀 습진 각질 발냄새 아토피 주부습진 뭐든지 고친다는 만병통치의 ‘두꺼비 기름’도 여전하다.
명성황후 생가 터
여주 5일장을 구경한 후에는 여주장을 번성시켰던 황포돛배를 타보자. 옛 모양을 재현한 황포돛배를 타면 남한강을 굽어보는 신륵사와 다층전탑
이 옛 조포나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 신륵사는 이성계가 심었다는 향나무와 나옹선사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은행나무가 연륜을 자랑한다. 강가 절벽에 세워놓은 강월헌은 ‘달을 낚는 정자’라는 뜻으로 남한강의 물굽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륵모종(神勒暮鐘)이라하여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는 여주 팔경 중 첫 번째며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여강의 모습도 아름답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아홉 분의 왕비를 배출한 여주는 왕기(王氣)가 서린 땅이기도 하다. 여주 능헌리에서 태어난 명성황후가 잘 알려져 있다. 1851년 민치록의 딸 민자영으로 태어나 여덟 살까지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다.
열여섯 살에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추천으로 조선 제26대 고종의 비(妃)가 되었다. 능헌리 생가 글공부하던 방이 있던 자리에는 “명성황후 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비가 세워져 있다.
다양한 체험행사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도 여주에 자리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조선시대 3대 성군 중 하나로 학생들의 필수 견학 코스이며 넓은 잔디밭과 수백 년 된 울창한 노송림은 가족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세종전 뜰에는 측우기와 자격루 등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전통 목공예와 불교미술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목아 박물관도 들러볼만하며 5월 내내 펼쳐지는 여주 도자기 축제에 참가해 여주생활도자관에서 흙놀이를 즐기는 것도 추천 코스다.
근처 참숯마을에 들러 숯가마 찜질로 오랜 피로를 풀어도 좋다. 굴참나무를 이용해 백탄만 구워내는 10개의 숯 가마는 숯을 꺼낸 다음날 개방하는 꽃탕에서부터 고온탕, 중온탕, 저온탕 등 체질에 맞춰 찜질을 즐길 수 있다. 가마에서 숯을 빼는 시간에는 부삽에 고기를 올려 순식간에 익히는 ‘3초 삼겹살 삽구이’가 진풍경이자 별미다.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에는 고려 때 다섯 명의 대감들이 살았다는 오감 도토리마을이 있다. 야산에 도토리나무가 많아 도토리를 이용해 묵을 쑤고, 도토리 가루로 전을 부치고, 도토리송편을 만들어 먹는 체험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계절별로 다양한 농촌 체험행사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남석진 nsj@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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