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기 품은 昌 DY와 ‘MB압박’

소리는 요란했지만 변죽만 올린 채 싱겁게 막을 내렸다. 17대 대선의 최대 변수로 불렸던 BBK의혹은 지난 5일 검찰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면서 맥없이 끝나가는 분위기다. 통합신당을 비롯, 범여권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진영이 여전히 검찰수사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뇌관’으로선 사실상 생명을 다했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이명박, 이회창 두 후보 사이에서 열쇠를 쥐고 있던 박근혜 전 대표도 “검찰수사 발표로 끝난 것 아니냐”고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검찰수사가 ‘반MB 전선’을 견인하고 있음을 주목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2주 앞둔 지난 5일. 대선 결과가 나온 듯 한쪽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면 이명박 후보 진영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 캠프는 ‘마지막 희망’이 물거품 된 데 대해 침통함으로 정적만이 흘렀다.
BBK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발표는 MB대세론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문화일보가 수사결과 발표 직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 지지율은 다시 40%대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대선 최고의 뇌관이 물거품이 된 만큼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란 전망도 만만찮다. 정동영·이회창 후보 등 MB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후보들은 유세일정을 전면중단하며 검찰과의 전면전에 나섰다.
‘김경준 메모’ 논란
BBK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대선구도는 MB 대 반MB로 전선이 빠르게 굳어져가고 있다.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는 규탄대회에 나섰고, 이회창 후보 쪽도 ‘범국민 저항운동’ 추진을 저울질하고 있다.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한 목소리로 검찰 수사결과를 질타했다.
통합신당의 한 중진은 이와 관련, “검찰수사 결과 발표가 후보들 간 합종연횡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 것이다”고 전망하며 “정동영·이회창 후보가 한 목소리로 MB를 겨냥한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회창 후보 쪽의 적극적인 대응이다. 이 후보 쪽은 ‘범국민저항운동’을 언급하며 “촛불시위, 항의방문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하겠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별도 법률대응팀을 구성, 김경준 전 BBK 대표를 접견하는 등 검찰수사 자체를 놓고도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이회창 후보 쪽 이혜연 대변인은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형량을 낮춰주겠다’는 내용이 담긴 김경준 메모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초원복집사건’(?)
검찰수사 결과 발표로 날개를 단 MB쪽은 이 기회에 상대진영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대세론’이 재확인된 만큼 다른 후보들의 ‘반MB 연대 전선’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검찰발표가 나온 뒤부터 통합신당과 창조한국당의 ‘물밑 논의’가 더욱 빨라졌다. 신당 안에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지금 배수진을 쳐야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편에선 승부가 물 건너간 만큼 대선이 아닌 총선을 목표로 뛰어야 한다는 ‘현실론’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분위기다.
BBK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는 일단 MB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1992년 ‘부산 초원복집사건’처럼 의외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게 범여권 인사들의 기대다.
‘초원복집사건’은 당시 부산의 유력기관장들이 음식점에 모여 지역감정 조장 등을 모의했던 사건이다. 상황 초기만 해도 여권에 심각한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였지만 막판엔 오히려 여당후보 지지층의 결집을 끌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뜻하지 않았던 ‘선거 막판’ 변수들
국민의 정부는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6·15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알렸다. 반세기 만에 남북한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정작 선거에선 ‘총선용’이란 비판을 받으며 오히려 여당후보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1992년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참석했던 ‘초원복집사건’은 정반대 효과를 낳았다. 처음엔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막판엔 그 때 김영삼 후보의 지지층이 단결하는 디딤돌이 됐다.
2004년 총선을 한 달 여 앞두고 시작된 ‘탄핵정국’도 신생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역풍’에 휘말린 한나라당을 누르고 제1당으로 떠오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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