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 ‘쩐의 전쟁’ 내막
대선후보들에게도 ‘돈 문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선거의 3대 요소로 조직, 인재, 자금을 꼽는다. 하지만 ‘총알’이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한 때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선출마 포기 결심에도 자금난이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건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측근은 “정당이 없는 후보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전하며 “고 전 총리는 돈 줄 사람이 만나자는 자리조차 꺼려했다”고 말했다. 대권경쟁이 막판으로 치닫는 가운데 각 캠프들이 벌이는 ‘쩐의 전쟁’도 그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에 허용된 법정선거비용 한도는 465억원. 이를 위해 중앙선관위는 지난달 말 각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줬다. 통합신당이 116억원, 한나라당이 112억원 가량을 지원 받았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엔 20억3000만원과 19억600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현역의원을 1명씩 가진 창조한국당과 참주인연합에 주어진 국고보조금은 1700만원. 무소속 이회창 후보 쪽은 정당이 없어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기업 기부 ‘전면 금지’
대선자금을 둘러싼 고민은 크게 두 가지다.
거대정당의 유력후보는 국고보조금을 뺀 나머지 돈을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일차적 관건이다. 군소정당이나 무소속후보에게 법정선거비용 한도를 모두 채우기란 애초부터 머나먼 꿈일 뿐이다.
2002년 대선까지는 기업들로부터 일정액의 기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행정치자금법은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하고 있다.
개인후원금도 최대 1천만원으로 한정해 놓은 실정이다. 예전처럼 불법정치자금을 기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자금난’을 풀기 위한 각 후보 쪽의 몸부림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합신당은 의원 한 사람당 3000만원씩 신용대출을 하는 등 십시일반 보태고 있다. 하지만 다 모인다고 해도 4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담보는 ‘지지율 15%’
한나라당은 제2금융권으로부터 260억원을 대출하는 신종해법을 썼다. 4개의 상호저축은행에서 한나라당 이름으로 260억원을 대출 받아 국고보조금을 합치면 법정한도액에 가까운 수준까지 된다.
은행이 아닌 2금융권을 택한 것은 은행권의 정치자금대출이 금지돼 있는 까닭이다. 은행권보다 높은 이자가 부담스럽지만 다른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나라당이 대출신청 때 잡힌 담보는 선거 뒤 지급될 정부의 비용보전금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대선 득표율이 15% 이상 되는 후보는 465억원 한도에서 전액보전 받을 수 있고 득표율이 10% 이상이면 사용한 선거비용의 절반을 받을 수 있다.
이명박 후보 쪽의 한 인사는 “정당한 금융대출을 받음으로써 ‘차떼기 정당’ 이미지도 지울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뒀다. 국고보조금과 대출 후에도 모자란 돈은 당 대표 1억원, 최고위원급 5000만원, 시·도당 위원장 3000만원 등으로 할당해 채워나가고 있다. 이명박 후보 본인도 특별당비를 내도록 했다.
‘무소속’ 가장 설움
한나라당처럼 정당명의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제1당인 통합신당조차도도 지지율 15%가 명확하지 않아 쉽사리 대출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 당직자들과 보좌진들까지 ‘책임 갹출’에 나선 상황이다. 일부 의원들은 개인대출까지 받아 비용을 보태고 있다.
정 후보 쪽 관계자는 “막판 역전을 위해선 홍보가 가장 중요한 데, 그러다보니 일치감치 자금난에 부딪혔다. 최대한 주위 사람들 도움을 받아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빅3 후보 중 가장 고전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이라 가장 불리한 상황이다.
후원금과 보조금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전액을 모아야 하는 까닭이다. 일단 주위 사람들에게 30억원을 빌린 이 후보는 본인소유의 땅과 집 등을 담보로 추가대출을 받을 계획이다.
민주노동당은 당의 자랑인 10만 진성당원의 특별당비가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본인 소유 주식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본인이 책임진 돈만 벌써 70억원 가량인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불법 자금만 1천억’
대선자금과 관련된 두 번째 문제는 법정한도(465억원)의 현실성 여부다. 과거 사례로 볼 때 유력후보들은 이를 웃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땐 시민단체가 각 정당의 대선자금을 감시해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12월 18일 ‘2002 대선유권자연대’는 같은 해 11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각 후보들이 쓴 돈의 액수를 발표했다.
해당 후보들의 회계장부와 증빙자료를 바탕으로 한 만큼 실질적인 ‘최소금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약 298억원, 한나라당 약 253억원이었다. 가장 깨끗하다고 평가받는 민주노동당은 11억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검찰조사에서 나타난 불법대선자금은 이를 훨씬 넘는 수준이었다.
한나라당은 823억원, 민주당은 113억원 가량 불법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관련자들이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후원자 구하기도 힘들어”
정치권 관계자는 “5년 동안의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유력후보들은 한도액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터넷 등 아무리 홍보수단이 발달됐다고 해도 거리에 나온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자발적이라고 누가 믿겠느냐”고 지적하며 “각 캠프에서 광고 등에 쓰는 홍보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여유가 있는 이명박 후보 쪽 핵심인사는 “하루에도 우리를 도와주겠다며 만남을 요청하는 전화가 3~4통 된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과거 사례도 있는 만큼 철저하게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통합신당 쪽 관계자는 “2002년 대선 때보다 개인후원자들 찾기도 힘들어졌고 ‘개미’들의 후원금도 저조하다”고 고충을 털
어놓았다. 그는 “그나마 후보지지율이 높아지고 있어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출신 진대제, MB 지지 왜?
범여권이 ‘삼성-이명박 커넥션’을 제기하는 가운데 삼성그룹 출신 인사 중 대표적인 참여정부인사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명박 후보 지지의사를 밝혔다.
진 전 장관은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이번 대선은 물론 앞으로도 기업경영의 성공경험이 있는 CEO출신이 국가지도자가 되는 게 시대흐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한나라당 진대제 영입설’이 나왔지만 헤프닝으로 끝난 바 있다.
이번 진 전 장관의 MB지지엔 BBK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발표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선 진 전 장관에 이어 몇몇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추가로 MB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통합신당 박영선 의원은 삼성 내부문건을 바탕으로 “삼성이 자금지원을 명목으로 보수세력과 결탁됐으며 광고비를 통해 언론을 우군화 하는 작업을 했다”고 주장하며 “삼성의 황영기, 지승림 등이 MB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커넥션 의혹을 제기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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