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선에 무관심 사무총장 중임 나설 듯”
“반기문, 대선에 무관심 사무총장 중임 나설 듯”
  • 선태규 기자
  • 입력 2008-09-16 12:15
  • 승인 2008.09.16 12:15
  • 호수 751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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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통령 만나는 임덕규 디플로머시 회장 인터뷰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야권에 없다. 이런 와중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반기문 카드’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자칫 소문에 불과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역대 UN 사무총장처럼 재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사모(반기문 사랑 모임)’를 조직하며,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지휘했던 UN 사무총장선거 총지휘자 임덕규 디플로머시(Diplomacy) 회장을 만났다. 디플로머시는 1975년 창간된 영문 외교월간지로 표지모델이 항상 각국 정상인 점이 특징이다. 임 회장은 300여명의 해외 정상과 인터뷰를 가져 왔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중임운동을 하고 있다” 임덕규 디플로머시 회장은 “반 총장이 한국 대통령을 하느냐 여부에는 관심 없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중임운동 사례로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인터뷰 뒤 나눈 사적 대화를 소개했다.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임)”

“그게 뭡니까(강)”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됩니다. 바로 옆에 있는 북한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 및 평화정착에 기여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기회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임)”


반기문 총장과 36년 인연

강주석은 갑자기 큰 덩치를 벌떡 일으키더니, 임 회장의 손을 덥석 잡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라며 미소 띤 화답을 했다.

임 회장과 반 총장의 인연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회장은 한국-인도 친선협회 간사로, 반 총장은 인도대사관 사무관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임 회장이 UN 사무총장 출마를 권유한 것은 장관으로 있던 2004년 1월 무렵이었다. “제가 어떻게 합니까”가 반 총장의 첫 반응이었고, “2006년 12월 현 사무총장의 임기가 끝나니 계획 세워 추진하면 가능하다”고 임회장은 재차 권유했다. 임 회장은 선거 중에 장관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점, 떨어져도 한국을 알리고 국위선양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출마자체가 유익하다”고 설득했다.

이후, 임 회장은 2005년 10월5일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 등 5개국 대사와의 부부 만찬을 통해 반사모 조직을 제안한 뒤 동의를 받아 활동을 본격화했다.

임 회장은 또 평상시 친분 있던 주 UN 말리국 대사를 UN 반사모 총 책임자로 영입했다.

임 회장은 주한 대사를 통해 각국 UN대사에 연락해 반 총장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각국 정상과의 친분을 활용, 각국에서도 반 총장을 지지할 수 있도록 움직였다.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비상임이사국 10개국에 총장 투표권이 있지만, 그외 국가들의 설득도 잊지 않았다. 투표는 회원국 분위기, 자국 이해관계 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

특히 유력후보들의 출마를 원천봉쇄한 것은 임 회장이 주도한 선거운동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대표적인 게 폴란드 대통령과 뉴질랜드 총리의 총장 출마를 막은 것이다.

당시 미국은 폴란드 대통령을 총장으로 만들어 나토 사령부를 폴란드로 이전하려 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그런 와중에 폴란드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다. 폴란드 수상을 접견한 임 회장은 “대통령이 비서(secretary)라는 영문표현이 들어간 사무총장(secretary-general)직에 도전하는 건 국가적 망신”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수상을 설득했다. 수상은 “대통령을 설득해 출마를 못하도록 하겠다”고 확답했다. 폴란드 대통령은 출마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임 회장과 폴란드대통령간의 오랜 친분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임 회장은 또 반 총장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전략적으로 만나게 했고, 두 사람을 누구보다 친하게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라이스 장관과 반 총장이 얼마나 친한지, 2005년 6자회담 합의문 발표당시 합의문 조정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틀 반 동안 7번이나 만났다고 반 총장이 임 회장에게 귀띔했다.

2006년 초, 중국, 러시아가 “이번 총장에 아시아 출신이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했고, 미 라이스 장관 등에 힘입어 최종 순간 미국, 일본도 반 총장 쪽으로 돌아섰다. 결국 UN 사상 최초의 만장일치 사무총장 당선자가 탄생됐다.


“향후 1000년간 한국에서 UN총장 안 나온다”

“UN 사무총장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향후 1000년 동안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총장들은 중임했습니다.”

200여 나라 회원국이 한 차례씩 돌아가며 총장을 한다고 치면 계산상 1000년이고, 중임까지 계산에 넣으면 대략 1500년 정도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사무총장을 한다는 것은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그 위치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임 회장은 최근 동향과 관련, “UN 내 여당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재선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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