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지검은 지난 8일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특혜 분양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주 대검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서부지검은 공소장 및 서류 등을 토대로 관련 사실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번 주 안으로 자료 검토를 마친 후 다음 주 부터는 특혜분양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상암동 DMC 특혜 의혹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2년 6월 서울시가 자본잠식 상태인 ㈜한독산학협력단지에 외국 기업에만 배당할 수 있던 DMC 땅을 부당하게 분양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축 승인이 났고 분양업체가 사채시장에서 끌어다 쓴 100억원 가운데 39억원의 용처가 불분명한데다 관련 특혜 분양에 이 후보가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DMC 사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후보의 DMC 관련 특혜 비리 의혹은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논란이 됐던 A 방송사와 B 방송사간의 마찰도 실은 DMC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에서 비롯됐다. 당시 특혜 비리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A 방송사 측의 한 관계자는 DMC 사업에 대해 “정치권의 힘이 개입돼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관계자를 비롯해 DMC 사업자 선정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특혜 비리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DMC사업이란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새천년신도시 택지개발지구 내 17만2000여평에 사업용지 48필지와 도로, 공원 등 공공용지를 조성해 오는 2010년까지 방송, 게임 등 디지털업체를 집중 유치하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이 후보 재직 시절인 지난 2003년부터 사업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잡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지난 2004년 특정 방송사에 대한 특혜 비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논란은 본격화됐다.
이를 계기로 DMC 사업자 선정 입찰에 참여한 다른 업체들도 “이번 사업을 둘러싸고 특혜 비리 의혹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실제로 서울시는 당초 사업자 선정으로 2003년 내에 마무리 짓고 부지에 대한 분배를 2004년 초에 끝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사업자 선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다.
이 후보 시장 재직당시 서울시가 DMC 사업관련 사업자 확정을 계속 늦추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힘이 개입돼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2조원이 넘는 초대형 사업이 각종 의혹으로 얼룩진 채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업자 선정은 무성한 불협화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 측의 답변은 간단했다.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불만을 품고 악소문을 퍼뜨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DMC 특혜 배후는 정치권?
지난 2004년 11월 서울시는 상암동 DMC의 방송사업자뿐 아니라 랜드마크빌딩용지 공급대상자 선정에서도 모든 업체가 자격미달이라며 입찰 사업자 3곳 모두 선정을 유보하거나 탈락시킨 바 있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됐으나 입찰에 참여한 모든 업체가 탈락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서울시의 ‘공급대상자 선정 유보’결정에 대해 일부 참여사는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업체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제대로 심사가 이루어졌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며 심사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처럼 서울시가 DMC 사업과 관련, 사업자 선정 결정을 계속 미루자 이에 대해 갖가지 추측과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정치권 개입 의혹이다.
업체들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통한 정치자금 조성 의혹 등 ‘검은 커넥션’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모 업체 관계자 Y씨는 “서울시가 DMC 방송사업자 선정을 계속 미루면서 곳곳에서 별의 별 소문이 다 들리고 있다”며 “DMC 사업에 여·야 정치권이 이권다툼 형식으로 개입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거나 입찰 업체들 간의 파워게임 때문에 서울시가 눈치를 보고 있다거나하는 소문들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Y씨는 이어 “서울시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이런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기획서 만으로 평가했다면 사업자 선정은 벌써 끝났을 사안이다. 그렇게 됐다면 정치적 외압이 있다, 방송사간 파워게임이다 하는 소리가 나올 리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방송가 인맥 여대야소로 구분
이와 함께 방송가에서는 DMC 사업 의혹과 관련, MBC와 SBS의 치열한 신경전이 오간 내막에 대해 ‘정치권의 신경전이 그대로 드러난 양상’이라며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각 당에 진출한 방송인들을 살펴보면 나름의 개연성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정권 실세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대통합민주신당)에 MBC의 인맥이 포진해 있는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 쪽에는 SBS의 인맥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려있는 형국이어서 ‘DMC 사업 정치권 개입설’과 이로인한 ‘이 후보의 진퇴양란설’은 더욱 신빙성을 얻고 있다.
대표적으로 열린 우리당에는 MBC 기자 출신의 정동영 후보가 있고 한나라당에는 SBS의 한선교(43)씨와 인기 프리랜서 아나운서 이계진(58)씨 등이 있다.
그러나 모 방송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DMC 사업 입찰에 참여한 일부 방송사 배후에 정치권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은 사실이나 소문일 뿐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고 말해 정치권 개입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10월까지 DMC 사업 참여를 추진했던 스카이HD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 실세들이 직접 개입은 안 하지만 제 3자를 내세워 측면 지원하는 정도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정치권의 간접적인 압력행사 의혹에 무게를 실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서울시가 당시 이것(정치권의 간접적인 압력)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졌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업자 선정에 있어 서울시가 MBC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에 DMC사업의 추진이 계속 지연돼 왔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고려해 MBC의 손을 잡아줬다는 것이다.
그는 또 “MBC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어차피 국감에서 문제됐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된 부분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DMC 사업과 관련,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이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에 대형 건설사끼리만 응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형사로만 구성된 컨소시엄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끼지 못하는 중견업체들은 입찰에 참여해도 공사를 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편법적인 진입 장벽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중견업체를 중심으로 발주처의 공모(公募)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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