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4‧15총선이 끝난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은 총선 결과 분석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번 총선은 한국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전체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획득해 공룡 여당이 됐다. 단일 정당이 총선을 통해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어선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한국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가 교체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의 주류는 영남·산업화 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수에서 비주류로 불리던 호남·586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 진영으로 교체된 것일까. 지역별 총선 결과를 통해 주류와 비주류 교체론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 민주당 ‘중앙‧지방‧의회’까지 모두 장악, ‘진보 주류론’ 대두
- 전국 정당 득표율에서 보수 여전히 건재, 교체론 한계 지적도
민주당은 지역구 163석을 포함해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17석을 합해 총 180석을 획득했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두면서 중앙과 지방, 의회 권력까지 모두 장악하게 됐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84석에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19석을 포함해 103석을 얻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는 1988년 13대 총선 이래 최악의 성적표다. 민주당의 ‘4연승’은 통합당의 ‘4연패’를 뜻한다. 가히 궤멸적 수준의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민주당 의회까지 모두 장악, '진보 190 대 보수 107’
21대 국회 권력 지도는 민주당에 범여권인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호남이 지역구인 무소속 이용호(남원시임실군순창군) 의원까지 포함하면 진보 진영은 190석이다. 반면 보수진영은 중도성향의 국민의당(3석)을 제외하고 통합당 출신 무소속 ‘4인방(홍준표·권성동·김태호·윤상현)’을 포함하면 107석이다. ‘190 대 107’로 국회 권력은 완벽하게 진보가 주류를 형성하게 됐고 보수는 비주류 처지가 된 것이다.
최근 여권에 비판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총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양당체제가 아닌 1.5당 체제라는 뉴노멀 시대가 왔다”며 “일본에서 자민당이 1당이고, 민주당과 다른 정당들 다 합친 게 0.5당인 것처럼 한국도 민주당이 1당이고, 통합당과 다른 정당들 다 합친 게 0.5당이다. 이 상황을 이제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그동안 4번의 선거 모두 민주당이 승리, 그것도 대부분 압승이었다”며 “이번에 코로나19가 없었어도 민주당이 고전은 좀 했겠지만 승리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제가 말했듯이 한국사회의 주류가 산업화세력(1960~70년대)에서 민주화세력(1980~90년대)으로 교체됐다는 것을 의미”라고 강조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그룹 ‘민’ 대표도 총선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주류가 확실하게 교체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보수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고 비주류라는 게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치지형상 과거에는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였다면 이제는 선명하게 ‘민주당 대 반민주당’ 구도가 된 것”이라며 “역사관이나 이념 등 사회문화적 유산도 보수 우위가 진보 우위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국 정당 득표율에선 여전히 보수 건재
반면 민주당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싹쓸이 하면서 지역구 의석을 163석이나 획득하고 통합당은 84석에 그쳤지만 전국 정당 득표율을 봤을 때는 여전히 보수가 건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기준이 되는 전국 정당 득표율을 보면 더불어시민당이 33.35%, 미래한국당이 33.84%를 획득했다. 지역구를 포함한 전체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팽팽히 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총 49석)의 경우 지역구에서 민주당 41석 통합당 8석, 인천(총 13석)에서는 민주당 11석 통합당 1석, 경기(총 59석)에서는 민주당 51석 통합당 7석이다. 반면 정당 득표율을 보면 서울에서 시민당 33.20% 한국당 33.10%, 인천에서는 시민당 34.57% 한국당 31.32%, 경기에서는 시민당 34.72%, 한국당 31.39%였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싹쓸이했지만 정당 득표율에서는 통합당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에서는 전체 65석 중 민주당은 7석만 획득하는데 그쳤고 통합당은 56석을 싹쓸이했다. 정당 득표에서도 한국당은 경북(56.76%), 대구(54.79%), 경남(44.60%), 부산(43.75%) 등에서 절반을 넘나드는 득표율을 자랑하며 영남이 보수 텃밭임을 입증했다.
민주당은 전국적 의석수에서는 앞서지만 영남에서는 지난 총선보다 성적이 오히려 저조했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영남권 65석 중 12석을 확보한 바 있다. 다만 민주당이 영남에서 지난 총선보다 정당 득표율이 일부 상승한 지역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민주당은 부산에서 지난 총선에서는 26.64%, 이번에는 28.42%(시민당 기준), 울산에서는 22.76%에서 26.76%, 경남에서는 24.35%에서 25.59%로 상승했다. 경북에서도 12.89%에서 16.14%로 득표율이 올랐다.
민주당은 호남에서는 광주를 포함한 전체 28석 가운데 27석을 싹쓸이했다. 민주당은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에게 무릎을 꿇었던 패배를 설욕하며 막강 파워를 자랑했다. 정당 득표율의 경우 민주당은 광주(60.95%)와 전남(60.34%), 전북(56.02%)에서 절반이 넘는 득표를 기록하며 텃밭 인증을 확실해 했다. 반면 한국당은 광주(3.18%), 전남(4.18%), 전북(5.73%)에서 6% 미만의 득표율을 보이며 극심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충청권의 경우 민주당은 전체 지역구 의석 28석 가운데 20석을 획득했고 통합당은 대전과 세종에서는 당선자가 없고 충남과 충북에서만 8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정당 득표율의 경우 시민당은 대전 33.68%, 세종 36.53%, 충남 31.23%, 충북 30.86%, 한국당은 대전 32.25%, 세종 25.57%, 충남 35.40%, 충북 36.26%였다. 시민당은 세종에서만 한국당에 앞섰고 대전에서는 득표율 차이가 크지 않았다. 충남과 충북에서는 오히려 시민당이 한국당에 뒤졌다.
박형준 전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통합당의 득표율과 관련 “의석수를 보면 참패가 맞는데 득표율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며 “주워 담을 수 있는 보수표는 그런대로 많이 담았다. 지난 대선 때 24%, 지방선거 때 27% 얻었다. 이번엔 41%인데 의석수가 3분의 1에 불과한 건 지지보다 훨씬 못한 의석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진보‧보수 주류 교체론’ 한계는 명확
전문가 그룹에서는 통합당이 전국 정당 득표율에서 민주당과 팽팽한 경쟁을 보였지만 큰 의미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합’을 봤을 때 범진보가 범보수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비례대표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시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민생당, 민중당 등 범진보 진영이 얻은 득표의 총합은 52.2%로 집계됐고 한국당, 국민의당, 우리공화당, 한국경제당 등 범보수 진영의 득표는 41.54%였다. 범진보가 범보수 득표율보다 10.66%포인트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대 총선 정당 투표에서 새누리당(현 통합당)이 33.50%를 얻고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진보가 32.7%를 획득하며 보수와 진보가 힘겨루기를 했던 것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15일 ‘일요서울’ 통화에서 “전국 정당 득표율에서 한국당이 시민당에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범진보 진영의 정의당, 열린민주당 득표율까지 다 합하면 이제 우리나라 전체 주류는 진보가 맞다”며 “의석수를 따져봐도 ‘범진보 190 대 범보수 107이다. 장관 등 파워 엘리트 그룹의 지도를 그려봤을 때 진보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굳건한 기득권을 유지해오고 있는 재벌과 보수언론 등을 위시한 보수세력이 여전히 건재한 점 등으로 봤을 때 다수파, 주류가 진보진영으로 완전히 교체됐다고 보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민주당이 이번에 압승을 거둔 것은 중도층의 쏠림 현상일 뿐이고 중도층이 돌아서면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 19대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지난달 2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압승에 대해 “중간층이 확 쏠린 것”이라며 “또 못해서 중간층이 확 떠나면 판이 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보수·진보 주류가 교체되거나 완전히 판이 기울거나 이런 것은 아니다”며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한 50%~49.9%, 통합당이 41% 정도 얻었고, 정당 투표도 민주당 계열이 38%, 통합당 쪽이 34% 얻었다. 민주당이 약간 크긴 하지만 양쪽의 힘의 균형이 맞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사랑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