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치권 주변의 시각은 모임의 배경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핵심 인사들이 고건 연대론 내지 합당에 찬성하는 인사들로 꾸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 뜨거운 논란 속에 정치관계법이 통과돼 올해 첫 도입된 제도를 재차 개정한다는 명분도 약하다. 무엇보다 정치관계법 특성상 여야가 합의해 이뤄지는 만큼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실현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다. 지방의회 ‘지역 일꾼론’을 내세운 여야 국회의원 42명의 복잡한 정치적 속내를 들여다봤다.
지난 6월 21일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여야 국회의원 42명이 ‘(가칭)기초자치단체장 및 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여야 국회의원 모임(이하 여야모임)’을 꾸렸다. 이들은 지방의회의 중앙정치 예속을 우려하며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29일 공식적으로 출범해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1년도 안돼 재개정 시도 ‘왜’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는 지난해 여야가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기초의원 중선거구제 및 유급화 도입과 함께 통과된 사안이다. 당시 공직자 선거법은 기초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5년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이로 인해 지난 5·31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에 중선거구제(1개 선거구 2~4명 선출) 및 정당 공천제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선거 제도가 도입된 지 1년도 안돼 재개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몸담았던 관계자나 입법조사관들은 ‘왜 이 시점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여야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치관계법개정을 너무 급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배경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특히 열린우리당은 기초의원 선거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당시 영남지역에서 자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배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완전히 물건너가 버렸다. 한나라당 출신 기초 의원들이 수도권은 물론 지역 텃밭에서도 싹쓸이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재개정을 추진하는 게 명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2년 적용을 목표로 한다면 차기 지방선거전까지 시간이 5년이나 남아있다. 이에 대해 모임측 관계자는 18대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리당략에 빠져 할 수 있겠느냐며 이해관계가 적은 17대 국회의원들이 추진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17대 국회의원이나 18대 국회의원과 차별성이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공직자 선거법이 민감한 사안임에도 모임에서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지 않고 상임위-본회의를 거쳐 통과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정치개혁특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참에 정치관계법을 고쳐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낮은 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 정치 인생을 연장하려는 속셈 아니냐”는 의혹도 던졌다.
김혁규-이상배-최인기 ‘선봉’
주목되는 점은 또 있다. 참여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임시 공동대표로는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민주당 최인기 의원, 김낙성 국민중심당 의원이 임명됐다. 김혁규 의원과 고 전총리는 민선 2기로 각각 경남도지사와 서울시장을 지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아직도 남다른 친분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은 고 전총리와 같은 고등고시 13회(61년)출신이다. 동기 모임을 통해 매달 13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적극적으로 ‘고건 영입’을 주장하는 인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민주당 최인기 의원은 내무부(행정자치부의 전신) 공무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최 의원은 장차관을 지낸 인사들의 모임인 보름회(매달 15일 모임)를 통해 매달 15일 고 전총리와 만나며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또 고건중심 정계개편에 우호적인 국민중심당의 김낙성·류근찬·정진석 의원, 민주당 이정일 의원, 지방선거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권선택(무소속) 의원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이뿐만이 아니다.
모임에는 호남출신 여당 의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광주가 지역구인 김태홍 의원, 전남출신의 이영호, 주승용, 전북 출신의 채수찬 의원 등이 그들이다. 최근 참여의사를 밝힌 박찬석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 9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에서 2년간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들은 고건 전총리와 ‘뭔가’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펄쩍 뛴다.친고건 인사가 다수 포함된 점에 대해서 김혁규 공동대표측의 한 관계자는 ‘우연’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고건발 정계개편 시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난해 정치관계법 통과 당시 수정안을 내며 반대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한 것일 뿐”이라고 순수하게 봐 달라는 입장이다.
DY계 와해 따른 구심점 찾기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이번 모임에 대해 야당 일각에서는 DY계의 몰락으로 인한 당내 구심점 상실을 대비한 돌파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당내 최대 계보를 갖고 있는 정동영계보는 사실상 와해됐다는 게 여당내의 중론이다. 다수는 고건 앞으로, 일부는 김근태 진영으로 흡수됐다는 것이다. 최근 월간중앙에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142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7일부터 일주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실제 응답자 70명)에서 ‘고건과 연대해야 한다(64.3%)’, ‘아예 합당해야 한다(15.7%)’고 답변했다. 두 집단을 합치면 응답자 중 80%가 고건과의 연대에 찬성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여야 모임에 참석하는 열린 우리당 의원 다수가 설문조사 응답자와 중첩돼 있다는 점도 눈길을 모은다.
한편 고 전총리도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지난 5월초 박주선 전의원과 만남에서 고 전총리는 박 전의원의 ‘서울시정은 소속 당과는 상관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울시장은 시민 삶을 높이는 자리로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도 없다”며 “특히 기초의원까지 정당 공천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다.또 그는 “중앙정치가 지방선거에 관여해 격돌장으로 변질된 것은 주민자치와 맞지 않다”며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가 정책선거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참여 하겠다”고 밝혔다.고 전총리의 이런 의지가 향후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아가 고건발 정계개편으로 발전할 수 있을 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 박근혜,대권경선 표밭 다지기 ‘시동’ 1:1 만남 활용 스킨십 강화…“확실한 내편 만든다”
박근혜 전대표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겉으로는 지난 지방선거전때 발생한 테러 후유증과 선거 지원 유세로 인한 누적된 피로 때문에 자택에서 쉬고 있다. 박 대표나 측근들도 당분간은 평당원으로 조용하게 지낼 것이라고 말을 아끼고 있다.
6월 임시국회동안은 행자위 위원으로 국회 일정만 잡을 뿐 특강이나 민생 탐방, 외국 방문 등 외부 행사는 잡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전대표가 조용하게 지낼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장 5·31 지방선거직후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을 시작으로 경북, 서울, 경기 등 전국을 돌며 당 인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스킨십을 가졌다.그동안 박 전대표는 대표 최고위원이라는 직함 때문에 당내 의원들과 편안하게 만나지 못했다.
대신 박 전대표는 김무성 전사무총장, 전여옥 전대변인, 유승민 전비서실장 등 당직자 중심의 친분 쌓기에 전념했었다. 때문에 당내 비주류에서는 ‘인의 장막에 막혀있다’,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대표직을 사퇴한 박 대표는 자유롭게 1:1내지 1대 다(多)로 지인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주요 만남의 장소로 여의도 사무실과 청담동 개인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의도 사무실은 김무성 전사무총장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지만 박 전대표도 공동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하지만 박 전대표측은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이춘상 보좌관은 “개인 사무실을 두고 사람을 만난다는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며 “여의도나 청담동 사무실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일축했다.이 보좌관은 박 전대표는 작년 말에 발의한 3개의 법안이 계류중으로 그것을 통과시키고 법안도 발의하며 의정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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