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씨가 재단에 상임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1986년부터 최태민씨의 부당한 개입이 시작됐다.”
당시 최태민 목사와 맞서 퇴진운동을 전개했던 전직 재단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에 앞서 박정희·육영수 숭모회장 이순희씨 또한 “그 당시 실무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육영재단의 모든 일이 최태민을 통해서 진행됐다”면서 최 목사의 육영재단 개입 사실을 폭로했다. 이순희씨는 지난 3일 기자와 통화에서 “당시에 최씨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재단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박근혜씨가 (검증청문회에서) 6억원을 받았다는 것만 사실대로 말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최 목사와 관련해서 진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오는 19일 경선을 앞두고 있는 박 후보가 ‘거짓말 논란’으로 인해 발목이 잡힐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요서울>은 육영재단 해고자 명단을 단독 입수하는 한편,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최 목사의 재단 운영개입 의혹의 진실을 추적했다.
1986~1989년 순차적으로 300여명 이상 해고 당시 최태민 지시 의혹
박근혜 “최태민, 재단운영 관여한 적 없다…구조조정, 내 책임 하에 진행”
박 후보와 고(故) 최태민 목사는 과연 어떤 관계였기에 이처럼 두 사람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일까. 최 목사는 박 후보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각종 사안에 대해 자문역할을 해왔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975년 3월경 육영수 여사의 현몽(現夢)을 이유로 박 후보에게 접근해 가까워졌다. 최 목사는 같은 해 4월 대한구국선교단(구국봉사단의 전신)을 창설해 총재로 취임하고 박 후보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최 목사는 박 후보와 더욱 가까워졌다. 박 후보 지근거리에서 재단 운영 등에 대해 왕왕 논의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박근혜 측근도 최태민 탄원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각종 사업에 관여거나 복잡한 사생활 등의 비위사실이 드러나 박 대통령이 ‘친국’을 했을 정도로 문제를 일으켰다. 최 목사의 비리의혹은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로 알려진 16쪽 분량의 문건을 통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박 후보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직접 나서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특히, 1987년 최 목사는 육영재단 등 박 후보가 부모의 재산으로 물려받은 공익재단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내분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와 함께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박 후보는 최 목사에 대한 재단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증언으로 인해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순희씨는 이와 관련 “재단 내부와 바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최태민을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했지만 정작 박근혜씨는 그를 보호해줬다. 우리는 박근혜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최 목사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 검증청문회 당시 최 목사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최 목사는 기념사업회 일을 도와주며 육영재단을 출입한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최 목사는 재단운영에 관여한 적이 없다. (모든 일은) 엄연히 내 책임 하에 이뤄진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그러나 “(재단) 운영에 관여할 정도는 아니고 얘기를 하다보면 육영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며 재단과 관련해서 자문을 구한 부분을 일부 시인했다.
박 후보의 해명과 달리 육영재단은 지난 19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 3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순차적으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고 이후 고용된 직원들이 또 다시 해고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전직 재단 관계자는 “최 목사가 재단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매년 50명 이상의 직원이 교체됐다. 1989년까지 4년간 해직된 직원은 무려 3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일요서울>이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해고자 명단에 따르면 1986년 해고자는 모두 55명, 1987년 107명, 1988년 101명, 1989년 57명 등이 타의에 의해 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고자 명단은 A4지 13장 분량의 자필로 작성된 것으로 해직 사유는 모두 ‘의원면직’으로 처리돼 있다.
해직 사유 ‘의원면직’으로 처리
1986년 당시 육영재단, 추모사업회, 어린이회관 등에 고용된 인원이 240여명이었지만 재단 관련 직원들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고용안정성이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1986년 상임이사 H씨와 S씨, 추모사업회 사무국장 K씨 등을 포함해 부장급 이상 15명의 직원이 ‘자의반타의반’으로 사표를 던지고 재단에 등을 돌렸다. 각 부서의 ‘공석’에는 최 목사와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게 일부 관계자의 말이다. 1986년은 비상임 이사장이었던 박 후보가 상임직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단운영에 뛰어들기 시작한 시점이다.
전직 재단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최 목사가 재단 운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핵심 관계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1986년까지 재단은 6억원을 정립해 놓았을 정도로 재정이 안정적이었다”면서 “직원들을 해고한 것은 최 목사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태민은 죽었을지 모르지만 그 일족이 박근혜씨 주변에서 항상 그를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는 박 후보의 국회의원 선거 당시 도움을 준 것을 비롯, 현재 대선 캠프 주변에서 ‘조력자’로서 힘을 보태고 있다.
강남 모처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별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도 한동안 회자된 바 있다. 박 후보는 육영재단 직원 대량해고 사태와 관련,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검증청문회 당시 박 후보는 “어떻게 140명이라는 숫자가 나왔나. 내가 운영할 때 최고 직원이 180명 정도였다. 그런 구조조정이 가능했겠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해고 당시 최 목사 관여설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서도 “최태민은 직원에게 지시를 한 일이 없다. 오해다”고 해명했다. 박 후보는 또, “최태민 목사가 제가 어려운 시절에 도왔다는 것은 고맙다고 생각한다”며 “이런저런 의혹이 있어 저도 알아보니 별로 실체가 없었다.
함부로 얘기만 듣고 나쁜 사람이니깐 상대 안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최 목사의 전횡에 대한 증언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시 해고된 인사들이 최 목사에 대한 비토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심 없던 직원들도 쫓겨나”
1987년 9월 어린이회관 직원 농성 당시 제작된 전단에는 “사심없이 일하던 경험 많은 직원들이 타의에 의해 물러났고…설립자와 박근혜 이사장님의 취지를 무시한 최태민, 최순실 부녀와 그에 추종하는 어용간부들에 의하여 어린이회관은 사기업화 되어왔다”면서 외부세력(최태민 일가)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 전단지는 재단에서 해고된 관계자들이 조직한 ‘어린이회관구사위원회’를 통해 시위현장에 뿌려졌다. 박 후보측 이정현 공보특보는 이와 관련 “지금 우리가 과거의 모든 사안을 파악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박 대표가 주장하는 게 사실이라고 본다”면서 “최 목사는 당시 재단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특보는 또, “우리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 손해를 보겠지만, 일부 불만세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면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사이더월드>서 최태민 비리 최초 보도 - “구국봉사단 총재 시절 100억 이상 거둬”
지난 1990년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는 박근혜 후견인을 자처한 최태민씨의 비리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1991년 1월에 발간된 <인사이더월드>에는 최씨가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둬들인 사실을 당시 구국봉사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기사화해 파문을 낳았다. 관련 기사에는 “A씨가 (구국봉사단) 서울시 단장으로 있는 1년 동안 자기가 알고 있는 돈만 해도 100억원 이상을 거두어 들였다”는 구국봉사단 관계자의 충격적인 증언이 담겨있다. 또, 최씨가 구국봉사단과 새마음봉사단 공금에서 횡령하거나 착복한 돈이 2억원 규모로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시 재벌기업들은 최씨에게 돈을 전달하려고 줄을 섰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잡지는 구국봉사단 간부 C씨의 말을 인용해 “재벌들은 나를 통해서 돈을 전달하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했다. 또, 당시 최씨에게 협조하지 않은 일부 기업은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인사이더월드>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조사를 했을 정도로 최씨의 범죄행각이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최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후술했다.<현>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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