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험 간투석 실태·문제점 집중 취재

최근 들어 간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40~50대 남성의 간 질환사망률은 2006년의 경우 암부분에서 으뜸이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나이대로 잦은 술자리, 흡연, 스트레스 등에 따른 것이다. 간 환자들 중엔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이들이 적잖다. 간암초기 땐 수술로 특정부위를 잘라내면 된다. 그러나 말기간암이나 간경화 등으로 급성 간부전(肝不全)증을 앓는 사람은 문제가 심각하다. 간이식이나 간투석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비상수단인 간투석치료가 그렇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저소득 서민층환자들은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숨지기 일쑤다. 국민건강 · 복지사회 건설의 그늘에 가려진 간 투석치료 실태와 문제, 대안 등을 짚어본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직장인 김영식씨(가명·55)는 요즘 얼굴이 계속 타들어간다. 지난해 가을 황달증세를 띄다 차츰 검은 색으로 변하면서다. 겁이 나 병원을 찾은 그는 급성간부전증이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간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급히 서두르란다.
하지만 조그만 중소업체에 다니는 그가 투석치료를 받기엔 역부족이었다. 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한번 투석치료를 받는 데 들어가는 돈은 약 620만원. 여기에 약값, 병원에 오가는 교통비, 식대 등 부대비용까지 따지면 700만원 가까이 든다.
투석 뒤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수시로 받아야해 들어가는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집이 거들 나게 된다. 월평균 250만원 남짓 받는 자신의 수입으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울상이다.
딸린 식구들 생계에다 고교와 대학을 다니는 두 자녀 학비 대기에도 빠듯한 그로선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저축은행에 대출을 신청해놓고 있다. ‘간투석을 빨리 받지 않으면 생명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투석으로 간을 회복해야만 병가를 낸 회사에도 다시 다니고 생계도 이어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휴가를 내고 동네의원에 입원 중인 그는 얼굴 못잖게 속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경남 마산에 사는 건설현장 일용직원 장선일씨(가명·50)는 지난해 간암으로 숨졌다.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한 그는 폭음에 담배를 지나치게 피워 수년전부터 간경화증을 앓다 세상을 떴다. 장씨 역시 병원에서 간투석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미쳐 손을 쓰지 못했다. 지나친 치료비 탓이다. 신용불량자신세였던 그는 빚을 낼 수도, 도와줄 사람들도 없었다. 배에 물이 차고 얼굴에 황달증세가 심했지만 투석기회를 놓쳐 불귀의 신세가 돼버렸다.
마약·농약·독버섯 중독자들도 대상
이처럼 간 질환을 앓고 있는 일반서민들이 간투석을 제때 받지 못해 죽음직전에 이르거나 저 세상 사람이 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돈이 없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장비를 써서 생명을 이어가야함에도 건강보험 제외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하는 마약·농약·독버섯 중독환자 등 간투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제때 손을 못 써 숨지는 사람이 한해 2천여 명에 이른다는 게 의료계추산이다.
이는 갈수록 느는 추세여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학계는 매년 10~20%쯤 느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간투석은 간에 있는 독성을 맑게 걸러내는 과정이다. 주로 황달, 만성부전증(간성혼수)의 경우 이뤄진다. 투석 땐 독일 테라클린사(TERAKLIN)가 개발한 MARS(인공간투석기·Molecular Adsorbents Recirculating System)가 독점 사용되고 있다. 알부민으로 채워진 투석액이 핏줄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가 간의 나쁜 독성을 물고나오는 원리다.
대학병원들 치료비 600만원대
과학적으로 이뤄지는 간투석 치료는 효과가 큰 반면 사용료가 매우 비싸 문제다. 이 장비를 갖다놓은 삼성서울병원, 서울강남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은 8시간기준 1회 투석에 630만~650만원 받는다. 아주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경희대의료원, 서울강동성심병원, 조선대병원 등에서도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간암환자로 판정받고 등록된 중증환자들 중 극히 제한적으로 보험대상이 되긴 하나 혜택을 보는 비율은 매우 낮다. 간이 서서히 굳어가는 간경화증환자를 포함, 상당수 사람들이 고액치료비 때문에 MARS 사용과 거리가 멀다. 보험적용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신장투석, 혈액투석과는 대조적이다. 의료선진국인 독일, 호주 등은 보험적용을 받고 있다.
송영용 헬스투유 대표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을 경우 3천여 간투석 대상 환자들 중 1%인 30여명만이 MARS를 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간투석 치료가 왜 보험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장비 값이 비싸고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가서다. 간투석기 1대 값은 약 6천만 원. 게다가 간치료 항암제, 항생제를 비롯한 관련 약값과 새 의료기술 R&D(연구개발)비용 등 초기투자비도 무시 못 한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건강보험당국으로선 어쩔 수 없이 비보험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연세의료원관계자는 “병원에서 장비를 사게 되면 구입비, 부대비용, 각종 인건비 등이 뒤따르게 된다”고 애로를 호소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하나 둘 아니다. 해외원정장기밀매가 성행한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간이식 대기자는 쌓여가고 투석치료가 힘들어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궁여지책으로 중국 등지로 나가 간이식수술을 받는 사람 수가 크게 는다. 2001년 2건에 머물렀으나 2005년엔 261건으로 130배 이상 불었다. 이는 국내·외 전체 간이식환자의 30.5%에 이른다. 2006년 확정통계가 나오진 않았으나 전년도보다 1.5~2배쯤 늘었다는 게 의료계 추정이다.
이런 가운데 해외원정 수술알선업자들까지 등장, 눈길을 끈다. 장기이식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당국은 제대로 된 실태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장기이식과 관련된 정부기관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2000년 2월 출범한 센터는 장기수급·관리를 맡고 있다.
간 이식관리체계 허점은 3가지로 요략된다. 첫째, 장기매매가 판을 친다는 점이다. 허술한 단속에다 장기이식수급이 불균형을 이루면서 빚어진 것이다. 2000년부터 시행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 장기매매를 금해 놓았지만 매매알선업자들이 버젓이 장사를 한다. 이식 희망자가 넘쳐 나서다. KONOS에 따르면 2007년 12월 현재 간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3143명. 이식대기 날짜수가 늘 수밖에 없다. 가족 간 이식은 괜찮지만 남남끼리는 매매가 아니란 점을 입증해야하는 등 심사가 까다로워서다. 2~3년 기다리는 건 예사다.
포털사이트의 카페, 지식검색창 등을 통한 매매알선이 성행하고 있는 건 말할 것 없다. 간 · 신장 매매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간이식 5만 달러, 거부반응제 및 혈액응고제 추가비용 발생 가능’ 등과 같은 문구들이 나돈다.
둘째, 불법해외원정수술이 러시를 이룬다는 점이다. 장기수급 불균형에 따른 부작용이다. 주로 선택되는 나라는 중국. 현지단속에도 수술비가 국내보다 싸서 인기다. 국내에선 5천만~1억원 하는 수술비가 그곳에선 절반선이다. 한해 1천 명 이상이 중국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외화유출, 불법출국, 뒤떨어진 수술기법으로 환자가 후유증을 앓거나 숨지기까지 한다.
셋째, 간 기증 등록·관리·배분 등 제도상의 미비를 들 수 있다.
의료계관계자들은 “간 기증자발굴도 중요하지만 이식과정에서의 제도적 불합리성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기증자 증가속도에 맞는 관련기관의 비현실적인 관리체계와 행정시스템이 좇아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대책 마련 절실
이에 대해 의료계와 학계 사람들은 “간투석기 사용의 보험적용이 시급하다”면서 “새 정부가 국민건강·복지증진차원에서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 학회, 시행병원, 장기수혜자단체가 참여하는 종합적인 제도정비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병원은 간 기증자 발굴, KONOS는 관리감독, 민간단체들은 홍보와 기증자에 대한 자긍심 심어주기에 앞장서야 한다는 시각이다.
#‘간(肝) 투석’을 아십니까?
신장투석은 잘 알아도 간투석에 대해선 생소한 사람들이 많다. 간은 일명 ‘침묵의 장기’로 사람 몸의 종합화학공장이다. 1.5㎏정도 크기로 두 손바닥을 합쳐놓은 것만 하지만 기능은 복합화학단지 못잖다.
대표적인 기능이 제독이다. 술, 마약을 포함해 몸에 들어온 여러 화학물질들이 이곳에서 걸러지는 것이다. 간이 없으면 하루도 못 가서 독물중독으로 숨질 수밖에 없다.
간투석도 신장투석처럼 기본원리는 같다. 신장투석기가 피의 노폐물을 걸러준다면 간투석기(MARS)는 간에 쌓인 독성물질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대상은 대부분 간부전(肝不全) 환자들. 알코올이나 간염바이러스에 따른 간경화, 약물중독, 독버섯과 같은 독성물질중독, 간이식을 받기 전후 간 기능이 떨어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간투석기는 특수처리 된 막과 알부민 재생장치로 이뤄져있다. 몸에 좋은 알부민은 통과시키고 독성물질만 걸러낸다. 인체독성물질을 간에 전달하는 건 알부민이 한다. 간이 나쁘면 알부민 수치가 떨어지는 게 이런 흐름에서다. 알부민과 결합된 독소와 수용성 독소를 없애주는 2개의 흡착카트리지 등이 작동된다. 복수, 패혈증, 간성뇌증 등 간부전증과 간이식 및 수술 뒤 기관이상 때 쓰면 효과가 빠르다.
간투석기는 1990년 독일에서 개발돼 1992년 임상에 쓰이기 시작, 세계 각국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7년여 전부터 대학병원에 들어왔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강남성모병원 관계자는 “간이식수술을 받기 전 간투석을 한 사람과 그렇잖은 환자를 비교한 결과 전자의 경우 생존율이 훨씬 더 높았다”면서 “간투석이 수술성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죽어가는 환자의 생명유지에도 크게 한 몫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전문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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