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이 본격적인 경선 정국에 들어간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양당은 지난 2004년 탄핵 정국 속에서 손을 맞잡았다가 ‘역풍’을 맞은 사례가 있기에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분위기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그 어느 때보다 ‘호남 민심’에 주목하고 있고 통합민주당이 김대중 전대통령(DJ)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로 꼽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 혹은 연대를 시도할 경우 ‘동서화합’ 화두는 대선 정국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과 동교동계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민주당 몇몇 인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주라 할 수 있는 DJ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당의 전반적인 흐름이 아니라고는 해도 DJ의 지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 운동’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박상천 대표는 DJ를 향해 “현실정치인이 아니라 정계를 은퇴한 분”이라고 칭하며 “정보부족 때문인 것 같다. 민주당의 동력은 지도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고 일침을 날렸다. 이미 예전의 DJ가 아니라는 당내 강경파들의 입장이 십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 내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순형 후보도 “김 전대통령은 국가 원로로서 체통을 지키고 정치개입 발언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날선 비판을 날렸다.
화두는 ‘국민대통합’
민주당 인사들과 DJ의 파열음을 지켜보는 한나라당은 그 틈새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연말 대선에서 호남 지역 두자릿수 득표율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정권 교체의 9부 능선은 넘어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DJ와 민주당의 분열은 그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 후보측은 충청권의 국민중심당과 호남의 민주당을 자신의 연대 대상으로 삼을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압도적인 우위와 ‘국
민대통합’이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충청과 호남으로 이어지는 서부 라인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이 후보는 경선 이후 DJ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달라”며 이례적인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해 DJ는 “내가 알아서 잘 판단해서 하겠다”고 답했지만 동교동측 인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DJ에 대한 이 후보의 요청은 호남 표심 공략이라는 의도된 기획아래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간접적으로 DJ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는 동시에 은연중에 자신을 ‘약자’로 만들었다는 게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호남에서의 이 후보 지지율이 괜찮은 수준이지만 범여권 후보가 결정되면 곧바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때문에 이 후보 자신이 호남표를 흡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분열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때문에 범여권 대통합 합류를 거부한 민주당과의 합당 혹은 연대 시나리오는 대선 정국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상상 초월할 것”
물론 한나라당과의 연대에 대해 민주당측의 거부 반응이 큰 것도 사실이다. 조 후보는 이에 대해 “전혀 가능성도 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며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대결할 정당인데 어떻게 서로 협력하겠느냐. 이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니 만사를 자기 뜻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또 다른 핵심 당직자도 “이미 탄핵 정국에서 뼈저리게 느꼈는데 또 다시 시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호남 민심은 한나라당과 손잡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여권 신당과 DJ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박 대표 등 기존 지도부가 내년 총선을 겨냥, 한나라당과 손잡을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박 대표측 인사는 이와 관련, “2002년 노풍과 후보 단일화도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며 “기자들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MB 손 들어준 JP “DJ, 정치에 너무 관여”
김종필 자민련 전총재가 자신을 예방한 이명박 후보와의 면담 자리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판했다.
김 전총재는 이 자리에서 이 후보가 DJ에게 ‘정치중립’을 요구한 것에 대해 “참 잘하셨다”며 “정치에 너무 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총재는 또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 후보들을 겨냥 “요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데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과거에는 열 몇 명씩 한당에서 나오는 이런 예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나라당은 무게 있게 당에서 의사를 결정, 선택해 옆에서 보는 느낌이 좋았다”고 비교하며 “꼭 대성해 소신껏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DJ와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미 이 후보를 사이에 두고 대척점에 서 있다. JP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파장에 관심이 모아진다. 보수 그룹과 충청권을 대표해온 JP의 행보는 또 다른 대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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