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이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조경태 최고위원을 비롯해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 총선 참패로 인한 당 수습 방안을 놓고 연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 총선 낙선자와 총선 당선인들 사이에서도 “낙선자들은 빠져야 한다”, “전화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의 엇박자 때문에 당 전체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 전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무기한 전권을 요구했고, 심 권한대행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했다. 오는 28일 전국위원회 통과 여부가 남았으나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그의 선택이 대선 주자들의 역학관계를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들이 김 전 위원장을 견제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 일부에서는 마땅한 대권 후보가 없을 경우 김 전 위원장이 ‘킹메이커’가 아닌 ‘킹’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과연 김 전 위원장은 어떤 행보를 보일까.

-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체제 앞날...차기대권주자 만들기
- 홍준표.김태호.유승민 등 舊 잠룡군 ‘배제’ 뉴페이스 찾기
김종인 전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2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킹메이커’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수진영 대권 주자로 분류된 후보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마땅한 대권 주자도 없어, 차기 대권주자 양성이 급선무다.
내년부터 대선 캠프가 꾸려지는 등 대권 경쟁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 전 위원장은 차기 대선 후보 경선까지 전권을 가지고 보수 잠룡들을 대거 끌어들인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킹메이커로 나서면서 차기 대권 주자를 점찍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어느 정도 구상도 되어 있는 듯하다. 일명 제2의 마크롱 찾기다. 1977년생인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당시 만 40세가 채 안 된 39세의 젊은 지도자였다.
총선 전부터 ‘제2의 마크롱‘ 강조한 김종인
실제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전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주변에 “문민정부 30년, 보수 15년, 진보 15년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개척한 게 없다. 그럼 정당으로서 시험은 다 본 것 아니냐”며 “이제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뛰쳐나오지 않으니까 답답하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도 운이 있으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총선 참패 이후 그는 “보수에서 젊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 중에서 대권 후보가 나와야 한다. 지난해에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마크롱 같은) 그런 지도자가 제3세력이 돼서 거대 양당을 좀 허물어뜨려야 한다고 했는데 젊은 지도자가 나오질 못한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에서 30·40대 기수론으로 젊은 보수층으로의 세대교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도 김세연 의원을 필두로 ‘830세대'(1980년대생·30대·2000년대 학번)’가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과감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당 해체’를 주장했던 김세연 의원은 “현실적으로 당 해체가 어렵다면 김종인 비대위가 최선이고, 그 이후에는 세대교체를 위해 ‘830세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김 위원장은 특히 비대위의 성공 여부를 강력한 리더십과 당 장악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경우 당명 교체를 하고 현역의원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강도 높은 쇄신을 단행했다. 이외 비대위는 대부분 다음 전당대회 개최를 위한 ‘실무형 비대위’였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전제 조건으로 ‘무기한 전권’을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바탕으로 당명 개정과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상품이 안 팔리면 그 브랜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 헌법도 중지된다”며 “비상대책이라는 것은 당헌·당규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음 대선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는 준비가 되지 않고서는 비대위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등 대권 잠룡들, ‘김종인 견제’에 나선 이유
다만 김 전 위원장의 ‘킹메이커 역할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김 전 위원장이 830세대 등 제2의 마크롱 발굴에 나선다고 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거나 발굴에 실패할 시 본인이 직접 ‘킹’이 되려 할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7년 대선 때도 출마를 선언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통합당 인사들 사이에서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말한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총선 참패로 보수진영에 마땅한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며 “김 전 위원장 전공이 ‘킹메이커’이긴 하지만 2017년처럼 상황만 조성되면 직접 ‘킹’에 도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더구나 김 전 위원장 측을 중심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비롯해 황교안 대표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재의 여론조사 수치는 큰 의미가 없고,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여건만 조성된다면 얼마든지 킹으로 나설 수 있고, 830세대 등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그 지점에서 기존 대권 후보들은 김종인 구상에 사실상 없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보수야권 내 잠룡들 사이에서 김종인 비대위 반대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김종인 견제’에 나선 것이다. 통합당 유승민 의원은 당의 총선 참패 이후 진로와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를 한다고 해서 금방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며 “우리가 왜 졌는지 알아내고, 앞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알아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심재철 원내대표가 전화로 (비대위와 조기 전당대회 중 고르도록) 한 방식 자체가 옳지 않았다. 패배의 원인을 알고 갈 길을 찾으면 비대위를 할지, 전대를 할지 답은 쉽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도 “아무리 당이 망가졌기로서니 기한 없는 무제한 권한을 달라고 하는 것은 당을 너무 얕보는 처사”라며 “그럴 바엔 차라리 헤쳐 모여 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릴 때는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심 원내대표가 기자들과 만나기 전 따로 회의실에서 빠져나온 후 “‘김종인 비대위’는 (당내 설문조사에서 찬성으로)과반이 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권한과 기한 모두 당헌·당규를 넘어서는데, 이를 고쳐 (강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권 및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주호영 의원도 “대선 후보 뽑을 때까지 비대위는 과한 것이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며 “대선 후보를 뽑을 때까지 한다는 것은 결국 당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당이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뽑지 못하는 이런 정당 갖고 어떻게 대선을 치르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김 전 위원장도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적절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총선 과정에서 미래통합당을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으로 말하는 등 ‘말실수’해 논란이 됐다.
특히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이 “개헌 저지선이 위태롭다”고 호소했지만 김 전 위원장은 “동정을 받으려는 엄살”이라고 일축했고, 총선 당일 “통합당이 1당 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선거 결과와 다른 예측을 내놔 당내에서 총선 참패 ‘5적’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28일이 D-day, 김종인 운명 결정
당내 반발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 비대위 성사 여부는 오는 28일 상임전국위원회, 전국위원회에서 결정난다. 상임전국위, 전국위에서 추인하면 곧바로 김 전 위원장의 임기가 시작된다.
다만 당내 반발을 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종인 비대위를 밀어붙일 경우 불발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6년 새누리당(현 통합당)은 전국위를 열어 비대위 출범에 나섰지만 성원 미달로 무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의 구상하고 있는 안들이 통합당 내에서 관철될지, 아니면 무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기우 언론인>
이기우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