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방황이 ‘젊음’을 말해준다
도전과 방황이 ‘젊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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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04-15 09:00
  • 승인 2005.04.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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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꾸준히 어떤 울타리를 넘어서 발전해 간다는 뜻이다. ‘오늘’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함으로써 비로소 충실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바로 그 원동력이 ‘젊음’인 것이다.우리는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없으며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나이를 먹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요, 결코 행복한 일도 아니다.생명은 흐르는 것이요, 그 흐름 속에서 행복도 불행도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 흐름이란 인류의 역사에 따라서 흐르는 것으로서 끝은 알 수가 없으나 개인에 관해서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짓는 흐름이다.그렇지만 사람들은 사람을 마치 기계와 같은 존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한심스럽다.

사람의 몸이나 뇌는 새 것일수록 소중하고 쓰면 쓸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인식하니 말이다.그렇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자꾸 새로 만들어져 가면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이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부수면서 살아가다 죽는지 그런 흐름을 문제삼아야 한다.그런 흐름 속에서 꾸준히 에너지를 흡수하고 또한 그것을 충분히 쏟아 놓는다면 그 생명은 완전하다고 봐야 한다. 새삼스럽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며 인생의 길, 방향을 수정하는 노릇이 가능할 따름이다.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죽지 않았다는 노릇일 뿐 아니라 꾸준히 어떤 울타리를 넘어서 발전해 간다는 뜻이다.

그 발전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함으로써 비로소 충실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지식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얼마만한 지식을 넘어설 수 있었느냐가 ‘성장의 척도’가 된다. 노화를 막으려면 뇌를 꾸준히 써야 한다지만 뇌를 도전적으로 쓰는 노릇이야말로 중요하다. 사회의 여러 가지 울타리를 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므로 누구나 쉽사리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다.대체로 사람들은 인생이 끝나가면 자기의 인생은 이만했으면 됐다라고 자신과 남들에게 일러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 태도야말로 병적인 노화를 진행시키며 그런 사람일수록 젊어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경우가 많다.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살려서 생명이 흐르는 길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면 젊은이 이상으로 자유로운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젊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 피카소의 말은 그런 취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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