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젊은이도 머리의 노화가 재빨리 진행되는 질병이 있어, 그런 경우에는 젊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성능력이 중뿔나게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니 뚱단지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요컨대 ‘마음의 젊음’ 이란 나이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현실을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문명사회의 병리야말로 ‘마음의 젊음’ 을 말살하고 있는 범인이 아닐까. 그 좋은 증거로서 기업체에 있어서의 ‘정년퇴직’ 제도를 들 수 있다.A씨는 그 전형적인 예로서 우리에게 암시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퇴직하자마자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서울 근교에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출퇴근 때 교통난에 시달리지 않아서 십상이요, 정원 손질도 즐거우며, 독서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살 맛이 났다.퇴직한지 1년쯤 사이에 아들과 딸의 결혼으로 예상 밖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자 A씨는 앞으로는 예금과 연금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허전함을 새삼 의식하기 시작했다.“혹시 병이 들면 어떡하나?”, “사고를 당하면 어쩐담?” A씨는 이런 잡다한 염려들이 얽혀 차츰 불면증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돈을 벌 기회도 남아 있었건만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A씨는 비용을 아끼는 나머지 집에만 있게 되고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회피하게 되었다. 아내의 격려도 먹혀들지 않고 ‘마음의 젊음’은 없어졌으니 가정이 음산해지고 아들 딸의 내왕조차 뜸해지게 되었다. TV나 신문조차 보지 않게 된 그에게 의사는 ‘우울증’ 이라고 진단하였다. ‘노인’이나 ‘노화’라는 말에는 ‘체념’하는 분위기가 깃들여 있다. 늙음을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 자신에게 늙었다는 암시를 자꾸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신의학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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