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6월 중순을 앞두고 범여권이 격랑에 휩싸였다. 박상천 대표의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의 중도신당이 ‘합당’에 뜻을 모으고 가장 먼저 손을 맞잡았다. 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문희상 전의장과 정대철 고문은 ‘동반 탈당’에 합의한 상황이다. 지난 8일에는 초재선 의원 16명이 집단 탈당했고, 충청권 의원들도 당을 떠나기로 입장을 모았다. 범여권의 이 같은 들썩임은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 미루면 “죽도 밥도 힘들다”는 게 당 인사의 말이다.
불과 2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공언했던 6월 중순 시한도 점차 종착지점을 향해 시침이 달려가고 있다. 최소한 이 달 안으로는 ‘큰 틀’을 만들어야 역전도 가능하다는 게 범여권 내부의 공통된 위기의식이다.
민주당과 중도신당의 ‘소통합’은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도 ‘통합파’들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일조했다.
“미적미적하면 콜드패”
이미 탈당을 감행한 임종석 의원은 “더 이상 여유가 없다”며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7월 중순까지는 대통합 신당이 나와야 한다”며 “이 달 안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제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후보 경선일을 8월 19일로 결정했지만 본격적인 대결 정국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시작돼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모두 한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
지 못하고 있는 범여권 잠룡들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동영 전의장은 “6월을 넘기면 콜드게임으로 끝난다”고 시간 관리의 절실함을 역설했다.
범여권 대통합파가 그리고 있는 로드맵은 일단 6월 헤쳐모여를 거쳐 7월에는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 위탁 데드라인이 8월 26일이라는 점 역시 걸림돌이다. 이 시기를 넘기면 후보들이 10억원의 기탁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쟁이 사실상 힘들어진다. 선관위의 관리 기간을 한 달이라고 볼 때 늦어도 9월 말까지는 경선이 완료돼야 한다고 정 전의장은 말했다.
여기에 9월 23일부터 26일까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연휴다.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그 이전 단일 후보가 결정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때문에 7월 20일경에는 경선을 위탁한 뒤 한 달 뒤인 8월 20일경 경선에 돌입해야 한다는 게 탈당파들의 구상이다.
10월 경선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후보가 결정된 뒤 대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이미 고착돼 있는 구도를 뒤집기가 힘들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김 전의장측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지 오래다. 이미 탈당한 초재선 의원들 중에는 김 전의장 계보로 포함됐다. 그동안 김 전의장측이 상대적으로 신중한 행보를 보였음을 감안하면 열린우리당의 와해도 ‘대세’로 잡아가는 분위기다.
“추석 전 대선후보 결정”
정·김 전의장측을 중심으로 8월 20일경 범여권 경선이 시작되면 이미 후보가 결정된 한나라당 후보를 ‘융단폭격’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는대로 범여권의 경선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승부가 시작될 것”이라며 “9월 경선까지 ‘반한전선’을 극대화시킨 뒤 후보를 선출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가위 민심을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측이 먼저 대선 후보를 뽑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범여권 경선이 늦게 시작될 경우 실질적으로 정국은 1대 다자 구도로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명박 전시장과 관련된 X파일을 범여권이 보유중이라는 루머도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선 경선 시기를 뒤로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02년 대선 패배를 기억하는 한 당직자는 이와 관련 “지금과 16대 대선은 구도가 확연히 다르다”면서 “그 때는 양측 모두 분명한 주자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우리만 공개된 채 상당 기간을 보내기 때문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우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여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제3지대 신당 모임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민주당과 중도신당이 ‘소통합’을 합의한 상황에서 각 계파에 따라 이해득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김 전의장측이 양대 그룹을 형성한 가운데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민생정치 모임과 이강래·전병헌 의원 등의 ‘백의종군파’ 모임 등의 입장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상 전대표 등 민주당 내 통합파와 시민사회 세력, 독자 신당화를 모색하고 있는 손학규 전경기지사까지 함께 할 그룹이 방대하다.
열린우리당 체제에 방점을 찍고 있는 친노그룹과 사수파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아직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2년 봄, ‘노풍’의 힘으로 기사회생했던 범여권이 이번에는 ‘추풍’ 로드맵을 통해 대역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범여권 대선 주자 중 한명인 이해찬 전총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긴다”며 “364일 이기고 마지막 하루 소홀하면 진다”고 말했다.
#범여권 대선 승리 로드맵
▲ 6.14 열린우리당 대통합추진 지도부 위임 시한
▲ 6.중순~6월 말 열린우리당 대통합파 탈당, 제3지대 신당 모색
▲ 7월 범여권 대통합 신당 창당, 대선 후보 경선 위탁
▲ 8.19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결정
▲ 8.20일경 통합신당 경선 돌입, 한나라당 후보 집중 공세
▲ 9.20일경 통합신당 대선 후보 결정
▲ 9.23~9.26 한가위 연휴, 민심 공략 극대화
▲ 12.19 17대 대통령 선거 선출
##‘간판급 얼굴’ 탈당 대열 합류… 친노 성향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도 ‘결단’ 임박
지난 8일 16명의 초재선 의원들이 대거 탈당함에 따라 열린우리당 의석수는 두자릿수대인 91석으로 줄어들었다.
숫자도 숫자지만 이번 탈당 대열에 합류한 인사들은 인지도가 높은 의원들이 적지 않아 당 지도부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이번 탈당은 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과 국민경선추진모임 등이 주도했으며 강기정 강창일 김교흥 김동철 김부겸 안영근 우상호 우원식 이목희 이인영 임종석 정장선 조정식 지병문 채수찬 최재성 의원 등이 참여했다.
이 중 최재성 의원과 조정식 의원은 현직 대변인과 홍보기획위원장을 맡고 있어 당에 주는 충격은 배가되고 있다.
계파별로도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는 평가다. 강창일 채수찬 의원 등은 정동영 전의장과 가깝고 우원식 이인영 의원 등은 김근태 전의장계로 분류된다. 두 전직
의장이 이미 탈당을 공언한 만큼 시기 조율만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극복하고 양당정치를 복원시키기 위해 ‘대통합’의 장정을 시작하겠다”며 “소통합이 고착돼 대선이 필패구도로 전개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일단 이들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생정치모임, 시민사회진영을 하나로 묶는 ‘대통합추진협의체’ 구성에 착수할 예정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위한 (가칭)국민경선추진위도 발족하기도 했다.
천정배 의원에 이어 정·김 두 전직의장의 탈당이 임박함에 따라 열린우리당내 남은 잠룡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찬·한명숙 전총리, 김혁규 의원 등 친노 주자들은 일단 ‘질서있는 대통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단’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만간 세 사람이 회동을 갖고 입장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제3지대 신당론에 대해선 한 전총리가 상대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입장이다. 그는 최근 민주당 장상 전대표와 함께 김대중 전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도부와 거취를 함께 하겠다”는 입장이고 이 전총리는 “탈당은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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