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의사’ 제도를 통해 의사간 경쟁을 꾀하고, 의료기관의 해외진출 및 외국환자 국내 유치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경제 특구의 외국인 병원에 대한 내국인 진료 허용, 국내병원 영리법인 허용 등 정부 의료개혁안의 핵심은 의료서비스에도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시장에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자본을 대거 유치해 의료서비스를 다양화하고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고급 의료서비스를 찾아 외국으로 나가는 수요도 줄이고 더 나아가 외국환자 유치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국내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고 의료서비스도 어엿한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의료서비스도 산업으로 육성
우선, 정부가 의료개방 추진의 모범사례로 꼽는 싱가포르의 경우를 살펴보자. 싱가포르는 한 해 20만명 이상의 해외환자를 유치해 4,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의료 환경은 우리와는 다르다. 공공 의료기관이 13%에 불과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80%에 달하는 공공병원을 통해 대다수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고, 나머지 20%의 민간병원만이 해외환자를 유치해 자유롭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그 해외환자라는 것도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싱가포르에 인접한, 동일한 언어를 쓰는 나라의 국민이라고 하니 의료개방으로 외국환자를 유치해 국부를 창출했다는 예로는 미흡하다고 여겨진다.
또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환경은 어떤가. 국민전체 의료비가 숨 가쁘게 증가하고 있고 이의 확충을 위해 보험료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반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50%에 달하고, 대부분 의료기관이 수익성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의료기관이다. 의료행위의 양에 비례해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지는 지불제도(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과잉진료가 고착화돼 있고 값비싼 의료장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해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경제적 사정으로 보험료를 체납해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50%
국내 의료보험 환경이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서 의료시장 개방후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외국병원은 건강보험 수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책정한 수가를 적용할 것이며, 이미 국내 수가의 5~7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내국인 이용자는 비싼 의료비를 부담하더라도 외국 병원의 고급 서비스를 받으려 할 것이다. 경쟁적으로 국내 영리법인의 병원도 고급의료와 사치성 의료수요를 창출할 것이고 이에 따라 국민전체 의료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할 것임이 자명하다.자연스럽게 영리법인 병원들은 돈벌이가 안 되는 건강보험 환자들을 거부하고 비급여 고소득층 환자만 받으려 할 것이다.
고소득층 역시 이용하지도 않는 건강보험을 이탈해 민간보험에 가입하려 할 것이다. 결국 국내 의료시장 자체가 고소득층 민간병원, 저소득층 건강보험 지정 병원으로 양분될 것이며,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 할 것이다. 시민 사회단체에서는 저소득층 환자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을 찾아 헤매거나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필요이상의 비싼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까지 예측된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이탈한 민간병원들은 더 이상 규제를 받지 않으려 할 것이고, 영리병원이 편법적인 진료 또는 여타의 방식으로 영리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의료기간에 대한 국가의 각종 규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 이 결과로 전반적인 비효율과 불형평성이 야기돼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보건의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묻고 싶다.
보건의료 통제력 상실?
세계적으로도 영리법인 도입으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싱가포르는 확고한 공공 의료기반 위에서 예외적인 경우를 허용해 성공한 케이스고, 영리법인이 주도하는 의료서비스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한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고 국가 의료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국가의 공보험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의료시장 개방에 앞서 건강보험 재정안정을 토대로 한 보장성 확대,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통한 국민의 국가의료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인된 의료기관 평가 등을 통해 의료소비자인 국민이 옥석을 구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참여정부는 집권초기 공공의료 비중을 30%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현재 50%에 불과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70~80%로 높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 약속이 지켜진 후 의료시장 개방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기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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