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범여권 진영의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확정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당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이 74.1%를 기록해 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두고 ‘명분’을 들며 지양하는 의견과 ‘실리’를 위해 참여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친노 인사로 꼽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어디 가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에둘러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지양할 것을 권고했다. 반면 친문인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에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경우 4.15총선에서 민주당·비례연합정당의 의석수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보다 많다는 골자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해 ‘참여’에 세를 보탰다. 비례연합정당을 두고 명분과 실리, 친노와 친문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배경을 일요서울이 살펴봤다.
![유시민(왼쪽)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오른쪽) 민주연구원장 [뉴시스]](/news/photo/202003/375235_291744_254.jpg)
-‘명분파’ “비례연합정당 없으면 미래통합·한국당 제1당 된다는 건 근거 박약”
-‘실리파’ “미래한국당 원내교섭단체 진입 시 ‘통합·한국vs민주’…2대1 절대 불리”
21대 총선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연비제)가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이 적용된다. 총선 선수들 모두 새로운 규칙으로 게임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법안이 패스트트랙(안건신속처리 제도)에 탑승했을 때부터 많은 이들이 연비제가 ‘선거의 뇌관’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던 것처럼, 21대 총선은 선거 지형도는 지난 선거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띤다.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범진보 진영의 비례연합정당에 합류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2일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 74.1%(17만9096명), 반대 25.9%(6만2463명)으로 연합정당 참여안이 통과됐다고 전했다. 이번 투표는 21대 총선 경선 선거권이 있는 권리당원 78만9868명을 대상으로 치러졌으며, 투표에 참여한 당원은 24만1559명으로 집계돼 30.6%의 투표율을 보였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총선 정국에서 민주당에게 ‘신의 한 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결국 ‘비례민주당’ 되는 것”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가 가시화될 무렵부터 당 안팎에서는 긍정과 부정 의견이 대비됐다. 민주당은 앞서 미래통합당이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할 당시 ‘꼼수 정당’, ‘선거법 개정안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맹폭을 퍼부었다. 참여에 부정적인 이들은 그런 민주당이 이제와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바라본다. 명분 없는 참여가 중도층 이탈, 수도권 민심 이반 등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가운데 민주당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대표적 친여 인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마저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완곡히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유 이사장은 지난 10일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비례연합정당에 대해 “이름을 뭐라 붙이든, 어떤 식으로 결정을 하든 민주당의 비례정당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드린다”라며 “비례당을 지금 만든다면 그냥 민주당 비례당”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선거는 절대 낙관하면 안 된다면서도 “우리에게 이 선거가 엄청 힘들다거나 비례 전문당을 안 만들면 미래통합당이 무조건 제1당이라는 근거는 박약하다고 본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제일 당당하게 그거(비례연합정당 참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선거 때는 정답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즉, 미래한국당과의 공조를 통해 미래통합당이 제1당 신분이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실리’를 중요하게 판단한 것이라면, 외부에는 결국 ‘민주당 비례당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고, 지지자들이 당당할 수 없다’는 유 이사장의 주장은 ‘명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死生決斷 민주, “2:1 막는다”
반면 친문인사로 꼽히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6일 비공개로 진행된 당 최고위원회에 비례연합 정당에 참여할 경우 제1당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골자의 4.15총선 시뮬레이션 (모의실험)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르면 비례연합정당에 정의당 없이 민주당 단독 참여할 경우 민주당·비례연합정당은 149석을 차지하고,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37석을 얻는다.
당초 미래한국당이 연비제의 혜택을 받으면서 민주당은 통합당보다 약 20석가량 뒤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의석수에서 앞서게 된다.
이들은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통해 1당 신분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자는 견해를 내비친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만큼 국회에서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보조해야 하기 위해서는 1당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통합당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원내교섭단체에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모두 진입해 민주당과 2대1 구도가 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명분보다 ‘실리’를 먼저 챙길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1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중요한 건 제1당을 뺏기느냐가 아니다. 원내교섭단체가 2대1 구조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며 “미래통합·한국당이 모두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당대표도, 간사도 각각 두 명씩 된다. (국회에서) 모든 안건을 결정할 때 전체 표결보다 앞서 교섭단체 간 논의가 진행되는데, 통합당 측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나”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탄핵‘만’ 막는다는 게 아니다. 탄핵‘도’ 막아낸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대 국회 당시에도 야당의 비협조로 국회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을 거론하며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21대 국회는) 여소야대 형국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통합·한국당이 제1당이 된다. 원내교섭단체에도 이 2당이 모두 참여하게 된다”면서 “(미래통합·한국당 측에서는) 탄핵은 당연히 추진하는 거고, 민주당 의견에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내비쳐 ‘민주당이 잘못했다’는 흐름을 대선 때까지 끌고 가 정권 교체를 하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선거에서 이해찬 당대표와 함께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비난은 잠시지만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은 4년 이상”이라는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례연합정당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선 정의당의 합류가 반드시 요구된다.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합류할 경우 원내교섭단체가 2:2(통합·한국:민주·정의)구조가 될 공산이 크다. 보수 진영과 범진보 진영이 서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에 민주당은 정의당, 나아가 민생당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민주당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열린민주당’의 존재도 변수다. 이들은 먼저 앞서나갔을 뿐, 현재 범진보 세력과 대화 창구는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향후 ‘비례연합정당’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