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TV가 2년 4개월여만에 다시금 방송을 송출할 수 있게 됐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5일 전체회의를 열고 경인TV를 경기·인천지역 신규 지상파TV 방송사업자로 허가 추천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방송위 결정에는 ‘단서 조항’이 따라 붙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사건과 관련, 검찰 조사 결과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
경인TV를 둘러싼 분쟁의 ‘단초’는 영안모자 컨소시엄 내부의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방송 편성·제작권과 경영권의 분리 여부를 두고 대주주인 영안모자측과 CBS가 국감장 안팎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았다. 국회로 옮겨 붙은 양측의 대결은 이면계약 의혹 등 추가 사안이 불거지면서, 결국 진위 여부의 최종 판단은 검찰로 넘겨졌다. 특히,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스파이 의혹 사건의 경우, 미국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요서울>은 스파이 의혹 사건의 중요 근거자료였던 ‘S-1’부터 ‘7’까지 8건의 문건을 입수해 그 내용을 철저히 분석했다.
경인TV 관련, 최대 관심사는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이다.
경인TV 공동대표를 지낸 신현덕 전사장은 지난해 10월 31일 국회 문광위 국감장에서 백 회장을 ‘정보 유출자’로 폭로하는 등 미국 스파이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D, S 등 영문 이니셜로 시작하는 문건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이 자료가 미국측에 제공돼 왔다는 게 신 전사장의 주장이다.
영안모자측, CBS 배후에 의혹 던져
백 회장은 그러나 지난 4일 기자와 만나 “나를 스파이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하지만, 나는 이 자료를 미국에 보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 정보를 미국에 보고한 적도 전혀 없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백 회장측은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CBS의 배후에 누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던졌다. 비공개 문건의 내용 자체에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애초부터 ‘정보유출설’은 경영권 다툼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공세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D, S 문건에 담긴 주요 내용과 ‘정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경인TV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된 지 5개월 남짓 지났지만, 추가 문건의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다.
<일요서울>이 최근 단독입수한 ‘S-1~7’ 문건에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날선 비난이 담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자료는 신 전사장이 작성한 뒤 백 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해 7월부터 10월 말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건네졌다.
백 회장측은 이 자료를 신 전사장에게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작성 경위를 듣기 위해 신 전사장에게 수차례 전화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지금 통화가 어렵다”고 말하고 전원을 꺼 버렸다. 신 전사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S 문건은 백 회장이 주문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신 전사장측이 이미 공개한 D-47, S-1 등의 문건에는 국내 시중 정보와 대북관련 내용이 들어있다. 문건에는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과 관련, “북한은 더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 김정일의 통치자금 고갈, 김정일의 후원세력인 북한군의 동요…” 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이 담겨있다. 미공개된 파일도 이처럼 ‘저급’ 정보가 담겨져 있다.
S-2로 규정된 2006년 7월 27일자 문건에는 ▲한국에서 조직적인 반미 행위 증가 ▲북한이 곤경에 처해 있음 ▲청와대가 곤혹스러워 함 ▲대책 등의 순으로 나눠 국내외 동향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세부 항목에선 연합뉴스, 경향, 한겨레, KBS, MBC, EBS 등의 언론사가 “조직적인 북한 감싸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A언론사는 김대중 납치 사건을 주요기사로 게재했다가 독자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슬그머니 취소했다”는 내용도 있다.
지난해 8월 10일에 작성된 S-3 문건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겨있다. ‘여권, 북한을 향한 충성경쟁 시동’의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자료에는 국민의 생각과 다른 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정신적 이상 증세’로까지 규정해 놓았다.
S-4 문건에선 대선 전에 노무현 정권이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 근거로 노 대통령이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고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당 중진 및 초선 의원들의 반발 증가(탈당 가능성), 김대중 지지세력 결집 시작-박근혜와 손잡을 가능성 높아짐,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집단 반발 행동 증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이 문건에는 북한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김대중 전대통령 행보, 북한과 거리두기인가를 의심. 권력과 재산 지키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음”의 분석이 들어 있다. ‘시중에 나도는 대선 관련 4개 시나리오’를 거론한 점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정보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S-5 문건은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자료에는 “2006년 한국의 작전지휘권 단독행사 주장을 통해 (북한은) 미국의 유연전략을 파악하고 괌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작전 중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리고 한국군과의 공동작전의 변화를 시험할 것”이라면서 “북한과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언론을 역이용할 계획으로 작전권 단독행사를 부추기고 있다”고 적혀있다. 또, ‘김대중, 노무현은 국민을 속여 왔다’, ‘자주와 주체를 구분하지 못한다’, ‘북한 붕괴를 막으려는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식으로 정부 정책을 비난했다.
지난해 8월 25일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하반기 중 북한의 폭발실험 가능성 높다. 2007년 김정일-노무현 정상회담 가능성”을 전망했다. 실제로 문건이 작성된 지 2개월 뒤,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선조직이 움직여 왔음이 최근 드러난 바 있다.
향후 ‘대책’으로는 “미 재무부, 한국 교포가 미국에 설립한 은행 중 북한에 불법 송금한 규모가 아주 작은 은행을 1차로 제재할 것. 미국 영주권자의 북한 방문을 강력하게 심사할 것” 등을 제시했다.
영문 자료 번역한 흔적 ‘역력’
S-6 문건은 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했다.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 강행, 동북아에서 한국의 고립 심화, 한중북한 관계에서 외톨이 등의 이유로 ‘레임덕’이 심화돼, 결국 정상회담을 타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치 말고 국제사회가 합력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7번째 문건은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상황에 대해 기술한 자료다. 여기에는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측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감지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 문구는 한글 문어체라기보다, 영문을 번역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즉, 일부 문건이 영문을 한글로 번역한 번역본일 개연성이 있다.
‘한미일 외무장관 회담 이후의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8번째 문건은 지난해 10월 23일 작성됐다. 이 문건에는 “한국은 핵문제보다 FTA, 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갈등 방향을 선회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미온적인 대북 자세를 지적했다.
신 전사장이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백 회장에게 보낸 8건의 자료는 상당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건의 전반적인 수준에 대해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형편없다. 근거도 부족하고 내용도 완전 견강부회식이어서 정보 가치가 낮다”고 평가절하했다.
임기말 권력누수 차단은 ‘등잔 밑부터’
청와대가 임기말 권력누수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대대적인 내부 감찰에 착수했다.
지난 5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에 따르면 2월까지 진행된 공기업 감찰을 사실상 종료하고 청와대 안팎의 문제를 단속하라는 ‘주문’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이는 정권 말기에 주로 발생해 온 ‘권력형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로 보인다.
청와대 사정라인은 지난 2월까지 실시한 공기업 감찰 실시 결과, 한국철도공사 등 일부 공기업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적발했다. 특히 철도공사는 용산 역세권 개발과 관련 입찰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져 경찰로 사건이 이첩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철도공사 관련 책임자는 그러나 “용산 역세권 개발과 관련해서 일부 업체가 터무니없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내부 감찰은 이른바 ‘시범 케이스’를 찾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은밀하게 내부 직원들을 감찰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질 경우, 업무처리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낭비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안이 작을지라도 단속을 벌여 경계심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내부 감찰이라고 해도 이미 문제가 있던 직원들은 다 나간 상태인데다가, 임기말 누수현상이 벌어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업무가 빡빡하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최근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입사설’이 불거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던 문재인 비서실장의 아들 관련 의혹을 조사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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