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양심’ 물밑전쟁! 일부 판검사들 가면 벗나
‘법과 양심’ 물밑전쟁! 일부 판검사들 가면 벗나
  • 정은혜 
  • 입력 2006-07-20 09:00
  • 승인 2006.07.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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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비리 사건이 또 터졌다. 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차관급인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검은돈’을 받은 정황이 포착, 검찰에 4번 소환조사를 받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본지 636호 16~17면 참조)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로써 법원 안팎에서는 판검사 간의 치열한 물밑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또, 이번 사건은 과거 의정부ㆍ대전 법조 비리의 규모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제3의 초대형 법조 비리로 비화할 전망이다.




국내 사법사상 판사들이 처음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1997~98년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 때다. 판사 출신 L변호사가 브로커를 고용, 1년여 만에 17억원대의 사건을 수임해 이목을 집중시킨 이 사건은 의정부지청이 1997년 10월 ‘변호사 수임사건 알선료 수수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당시 지원 판사 15명은 변호사 14명으로부터 명절 떡값과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수백 만원씩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관련 판사들은 정직 또는 경고 처분 등 중징계를 받았고, 8명은 옷을 벗었다.

당시 지원장도 법원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금품수수 비리와 관련, 현직 판사가 중징계를 받거나 사표를 쓴 것은 이 당시가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금품 수수가 구체적 직무와 관련이 없고, 인사치레 성격이 강하다는 판단에 따라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후 법조계의 자정 노력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1999년 1월에 ‘대전 법조 비리’가 또 터지면서 ‘양심의 보루’라 불리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전의 부장검사 출신 L변호사는 1994년 1월~1997년 7월 법원과 검찰의 전ㆍ현직 간부와 일반 직원, 경찰관 등 100여명에게 소개비와 알선료 명목으로 1억 1,000여 만원을 건넸다. L변호사는 형사 사건을 소개받고 그 대가로 수임료의 일부를 지급키로 약속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두 법조 비리 사건 이후, 법조계는 ‘부패 집단’이라는 질타를 받으며 개혁대상으로 지목됐다. 이후 법조계는 사건 브로커 고용ㆍ접촉 제한, 전관예우 철폐, 법관윤리강령과 변호사윤리규정 개정, 관련 법률 정비 등을 통해 ‘환골탈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사법개혁의 기치가 올려지는 듯했으나, 사실상 구두선이었음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셈이다.

사상초유의 법조 비리 사건

13일 검찰이 공개한 ‘김홍수(58) 법조 비리 사건’은 의정부ㆍ대전 법조 비리 사건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수입 카펫업자인 김씨는 ‘마당발’ 인사로 잘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장검사, 평판사, 부장검사를 지낸 변호사, 현직 경찰서장 등 12명이 그들이다. 김씨는 법조인들의 회식비를 대납하거나 전별금을 건네거나 휴가비를 전달하는 식으로 ‘보험’을 들어뒀다.

이런 금품로비의 ‘약발’로 청탁 성공률이 90% 이상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케이스다. 로비 대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김씨가 법원ㆍ검찰ㆍ경찰에 인맥을 심어두고 형사사건 추이에 맞춰 청탁을 넣었기 때문이다.

검찰·법원 교묘한 신경전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메가톤급 후폭풍을 예고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법원에서 엘리트로 꼽히며 출세가도를 달려온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연루됐기 때문이다. 법관들은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위 법관이 비리 혐의로 4번씩이나 조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검찰의 사표가 서둘러 수리된 것도 파장의 이유다. 이는 비위공직자의 의원면직(사표제출)을 금지하는 대통령 훈령을 어긴 것으로, 평소 비위공직자 수사 때와 비교해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검찰과 법원 측 관계자를 비롯, 수장들 간의 ‘말싸움’에서부터 교묘한 신경전까지. 벌써 이들의 전쟁은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판사들은 “판사들의 혐의가 부풀려져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수사한 지 상당 시일이 지났는데 당사자인 부장판사가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기소를 미루고 있는 점이 이해가 안 된다”며 “입증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하며 혐의 사실을 은근슬쩍 흘려, 당사자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려는 의도 아니냐”고 비난했다.

한편, 검찰은 법원에 청구한 부장판사의 계좌추적 영장 가운데 일부가 기각된 사실을 두고 “수사방해 아니냐”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취재진과 접촉한 한 검찰 관계자는 “지위를 이용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엄정한 수사를 통해 비리의 진상을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이나 검찰이나 자체 징계로 적당히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이에 대해 법원 측은 “검찰에서 요구한 영장내용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영장을 일부 끊어서 내준 것”이라며 “법원 치부를 공개수사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방해할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소장판사는 “김홍수 사건은 항상 사법개혁을 외치면서도 진정한 내부 개혁을 이루지 못해 그동안 가려졌던 조직의 추악한 상처가 결국 곪아 터진 꼴”이라며 “법원은 이번 일을 진정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혜 기자> kkeunnae@ilyoseoul.co.kr


#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 인터뷰

어렵게 통화된 이 차장은 인터뷰에 앞서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검찰에게 말도 안 되는 의혹으로 맥 빠지게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지는 질문에 그는 계속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성의 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다음은 이 차장과의 일문일답.

- 비위 수사 중 사직하는 것은 대통령 훈령에도 위반되는데
ㄱ검사의 사표가 어떻게 수리된 것인가.
▲ 법무부에서 처리한 것이다. 나는 모른다.

- 언론에 엠바고(보도보류)를 건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가.
▲ 보다 명확한 근거 확보를 위해서다.

- 일각에서는 조직보호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 (언성을 높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법원과 검찰 간의 내부 단속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 당연하다. 할 말이 없다. <은>




# 서울고등법원 A부장판사 인터뷰

김홍수 법조로비 파문과 관련, 연루자로 거론되고 있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A씨는 1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A씨는 자신의 이름이 왜 오르내리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 최근 법조계 분위기는 어떤가.
▲ 말이 아니다. 온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다.

- 김씨의 선배로 알려졌다.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나.
▲ 이틀 전 타 언론사 기자가 전해줘서 내가 선배인지 알았다. 김씨와 전혀 친분이 없고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 검찰 소환은 받은 적이 있나.
▲ 없다.

- 이름이 거론되고, 연루설이 나도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모르겠다. 불명예스럽고 불쾌할 뿐이다. <은>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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