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통합움직임이 한창인 가운데 정동영 전의장의 대권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한달 보름여의 ‘민심탐방’을 끝낸 정 전의장은 곧바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데 이어 이 달에는 ‘평화대장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탈 여의도를 선언한 정 전의장이지만 정치권의 이목은 그의 탈당 여부에 쏠려 있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 달 29일 오후, 여의도에서 정 전의장을 만나 최근의 소회를 들었다. 정 전의장은 “나는 당 사수파가 아니다”면서 “평화체제론과 중소기업 경제강국론을 양대 축으로 대선 정국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정 전의장은 열린우리당의 해체 위기와 현재 정국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 역정, 특히 참여정부 출범 이후와 관련된 회한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장관직에 충실해 남북관계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치인 정동영의 목소리를 냈어야만 했다. 그러지 못한 것이 나의 과오”라는 게 그의 말.
하지만 정권 창출에 대한 의지 또한 분명했다.
다음은 정 전의장과의 일문 일답.
- 올해 대선 구도가 아직도 불안정하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그렇다.
▲춘추전국시대라고나 할까. 야당에 강자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도기다. 한국 정치 과도기의 끝무렵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도 한나라당은 안정적이지 않나.
▲보수는 뿌리가 깊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지키는 거니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쪽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러 있기가 쉽지 않다. 1987년 대선 이후 5년마다 한국 정치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번 대선도 결국에는 나라 장래를 위해 플러스가 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믿는다.
- 2007년 대선의 의미는.
▲올 해 대선도 시대 정신을 담아낼 것이다. 이번 대선 화두가 ‘과거’냐 ‘미래’냐로 설정되는 순간 답은 자명하다고 본다. 이쪽(범여권)이 미래를 대변하는 세력으로서 단일화에 성공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국민의 선택은 ‘미래’쪽이지 않겠는가.
-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정치 퇴보라고 보나.
▲그렇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그분들 사고의 뿌리가 기본적으로 70년대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그 분들은 정치를 앞으로 밀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살아남긴 했지만 피동, 수동적인 세력이다.
- 그렇다면 보수 세력이 끼친 긍정적 효과는 없었다고 보나.
▲물론, 건강한 보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 같은 걸 보면 시대착오적이다. 열차 페리니 운하니 하는데 곰곰이 뜯어보면 개발 독재 시대의 낡은 아이디어일 뿐이다.
-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는 건전한 보수인가.
▲낡은 보수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70년대식 개발독재와 토목사업적인 사고, 반북대결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분들의 노선은 결국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 그렇다면 건전한 보수는 누구인가.
▲박세일 교수가 그 쪽으로 갔을 때 한나라당이 변화할까봐 솔직히 위기감을 느꼈다. 한나라당이 변하면 이거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못 배기지 않았나. 박세일 교수팀이 결국 실패해서 나왔고 손학규 전지사도 그랬다.
- 손 전지사의 탈당은 어떻게 보나.
▲입장을 바꿔 깊이 생각해 봤다. 굉장히 힘든 결정이었다고 본다. ‘당신이 한나라당에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일지 모른다’고 한 황석영 선생의 말이 그를 움직인 키워드였을 것이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손 전지사를 이해하고 결단을 평가한다. 원래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분이고 친밀한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데 해체 위기다.
▲솔직히 후회가 많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회한이 있다. 창당 목표는 순수했고 창당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그건 영남 출신 후보를 호남 출신과 개혁 진영의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밀어서 당선시켰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활용해서 군사정권 40년 동안 심어놓은 지역주의 정치를 무너뜨리자는 게 동기였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단단했던 지지층과 대통령의 관계가 풀린 것을 넘어 적대적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내 과오도 적지 않았다.
▲그 동안 4대 과오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 대북송금, 대연정, 코드인사, 언론과의 불필요한 적대 등에 대해 정치인 정동영의 목소리는 빠져 있었다.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선 거부권을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고 대연정 제안에 대해서는 장관직을 던져서라도 부딪쳐야 했다.
국민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이 정권이 잘못가고 있을 때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는데 내 스스로 안일하게 본 측면이 크다. 변명이겠지만 남북관계에 욕심이 컸고 여기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관직으로 가자마자 남북문제가 꼬여 일 년 내내 거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기에 ‘올인’했다고 면책이 되는 건 아니다. 당의 문제,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내 역할을 했었야 했는데 이를 못했다. 나를 구태정치로 몰아붙인 유시민 장관에 대해서도 정면 대응했어야 했다.
- 올해 8월 이전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도 괜찮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기회의 공간이 열렸는데 이걸 잡지 않으면 직무 유기다. 2000년 가을에 기회가 왔는데 불행하게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이후 지난 7년 가까운 기간은 충돌의 기간이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됐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성찰의 결과 지금 다시 7년 전으로 되돌아 왔다.
7년 전에 무산됐던 기회가 다시 찾아왔는데 위싱턴 쳐다보고 평양 쳐다보고 선거 끝나기 기다리고 그럴 수는 없다. 정상회담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범여와 야당 대선 후보가 정해지기 이전까지는 유효하다고 본다. 가능하면 상반기면 좋겠고 늦어도 8월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위원장도 결단해야 한다. 북은 북대로 생존과 발전의 길을 가는 거고 남은 남대로 평화와 경제성장의 길을 가는 것이다.
- 최근 안희정씨를 통한 비선 라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결국은 정통적인 방법, 정공법이 답이다. 제가 남북관계를 담당했을 때에도 많은 비선 제안이 있었다. 그 시도를 한 두 번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문제를 풀어낸 것은 정공법이었다. 비선 라인은 한계가 있었다.
- 장관 재임시절 정상회담 합의는 어느 정도 이야기됐었나.
▲BDA 문제가 없었다면 정상회담이 성사됐을 것이다. 2005년 9·19 합의가 됐는데 9월 20일 BDA 문제가 불거졌다. 빗장이 걸린 것이다. 이후 순연됐고 그게 뽑힌 게 지난 2.13 합의다. 정상회담의 장애물이 제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재회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 대부분의 범여권 후보들이 모두 ‘평화’를 화두로 내걸고 있다.
▲이명박 전시장이 늘 얘기하는 것처럼 ‘일 해 본 사람이 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남북관계를 직접 지휘해 본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나. 개성공단도 그렇고 하나원 철조망도 걷어냈다. 탈북자 용어를 ‘새터민’으로 바꾼 것도 내 재임시절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9·19 합의를 만들어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핵문제도 핵문제지만 제4항에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끝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당사국들의 논의를 시작한다고 했다. 이건 역사적인 문구다.
-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정략적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10월 북핵실험 이후의 정국 상황을 보면 결국 그 쪽은 6개월 앞도 못 내다 본 것 아닌가. 이 전시장과 박 전대표 모두 현정부에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분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면 해상봉쇄 했을 것이고 본때를 보였을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철수하고 금강 산사업도 중단됐을 것이다. 그 속에서 지금처럼 북미가 손잡으면 완전히 왕따가 됐을 것이다. 이런 식견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이끌 것인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 이번 대선에서는 대북 문제보다는 경제 문제가 더 이슈가 될 것 같다. 경제 활성화 대책은.
▲그래서 지금 ‘평화경제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대의 화두는 ‘평화’와 ‘경제’다. 평화가 국가 리스크를 줄여 성장과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중소기업 경제강국론’을 역설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중산층에 대한 국민들의 꿈을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 한다.
- 정 전의장의 탈당설이 나돌고 있다.
▲저는 열린우리당 사수파가 아니다. 탈당이냐 아니냐는 작은 문제다. 우리당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국민의 요구가 그런 것 아닌가. 통합신당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고 결단할 것이다.
-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감동이 없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과제다.
- 통합신당이 만들어진다면 노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 정부가 마무리를 잘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도울 건 돕고 혹시 잘못가는 방향이 있으면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시비비’로 요약할 수 있다.
- 과거 노 대통령을 밟지 않겠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자산과 부채를 다 승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선이 이뤄지거나 대선 후보가 된다면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할 것이다.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꽃피우는 제3기 정부가 돼야 한다.
지난 시대에 걸친 청산, 청소작업은 이제 거의 다 이뤄졌다. 이제 치유의 정치, 포용과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대내포용정책으로 남남갈등을 해결하고 대외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다.
#하루 6시간 도보, 33명의 대학생 등 동참 예정
최근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방북 러시가 이러지는 가운데 정동영 전의장은 ‘평화대장정’을 준비중이다.
평화대장정은 오는 9일 임진각 출정식을 시작으로 파주를 거쳐 철원, 원통, 인제를 지나 고성까지의 일정으로 이뤄진다. 이 후 다시 임진각에서 해단식을 갖는다. 정 전의장은 이 기간동안 하루 6시간 정도, 15~18km를 도보로 이동하며 저녁에는 차로 이동할 계획이다.
‘평화대장정’에는 33명의 대학생들과 지역 지지자들이 동참할 예정이며 민통선 거주 주민들의 애환도 듣는다.
정 전의장측은 ‘평화대장정’의 의의와 관련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계 어느 곳에도 철조망을 설치한 나라들은 없다”면서 “철조망을 걷어내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승현 okkdoll@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