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자유한국당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21대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1월 22일 그가 자신을 제외한 8명의 공천관리위원을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21대 총선 환경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변화하였고, 선거구도는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19는 전국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새로운보수당을 통합하고 선거철이면 나타나는 정치철새들을 수습(收拾)하여 거대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으로 신장개업했다.
김형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여전히 미래통합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이고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은 모두 미래통합당의 공천관리위원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황교안은 미래통합당의 대표가 되었지만,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으로부터 종로선거구에 출마를 명 받아 소독 장비를 메고 방역활동에 여념이 없다. 전광훈 목사가 구속 수감된 지금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현재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명을 받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어설픈 칼춤에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났다. 당대표가 '옥새 들고 나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제1당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사태는 거기에서 수습되지 못하고 부메랑으로 돌아와 이한구에게 하명했던 청와대 주인은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사태로 총선의 첫 단추인 공천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약간의 차질은 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당을 노리는 미래통합당은 착실하게 공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5선의 원혜영 공천관리위원장을 중심으로 선거 리스크를 줄여 나가는 등 한 발 앞서가는 모양새였지만, 조국의 덫에 걸려 헤매고 있는 사이 미래통합당이 현역의원들을 과감히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역전에 성공한 모양새다. 물론 코로나19사태로 미뤄지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공천과 홍준표, 김태호, 이언주 등의 공천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전세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선거는 구도와 인물, 이슈와 전략에 의해 승패가 판가름 난다. 공직선거법 개정과 보수정당의 통합에 의해 대략적인 선거구도는 정해졌다. 다음은 어떠한 인물을 어떠한 콘셉트로 공천하는가가 중요하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이다. 공천이 선거의 다는 아니지만 공천이 선거 초반의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는 충분하다.
그런데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단순히 미래통합당의 공천만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만나겠다고 한다. 안철수와 정치행보를 함께하겠다고 호언하던 안철수 키즈들은 줄줄이 미래통합당의 공천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식(寒食)에 죽으나 청명(淸明)에 죽으나 매한가지”로 보이지만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 같다. 그 지푸라기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다. 어쩌면 튼튼한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 어느새 그는 미래통합당을 넘어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주인이 되어 있다. 보수 세력의 선거승리를 이끄는 4대 요소인 구도, 인물, 이슈, 전략이 모두 그에게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947년생.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대권을 노려볼 수 있는 충분한 나이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승리한다면 누가 뭐래도 일등공신은 그가 틀림없다. 황교안 대표는 낙선할 공산도 크고, 그에게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게 될 ‘김형오 키즈’는 당내 다수파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김형오가 보수를 구하고 대권의 길로? 꿈만은 아니다.
이경립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