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보며 “김치~” 타고난 분위기 메이커

7년 전 대한민국에 ‘6월의 기적’을 선사한 마법사는 여전히 유쾌하고 점잖은 신사였다. 그가 가는 곳은 환영 인파로 가득했고 취재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를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의 이름을 딴 관련 시설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2002년 ‘대~한민국!’ 구호의 한 가운데를 장식한 축구 명장 거스 히딩크(64·러시아대표팀 감독)의 위력이었다.
지난 6월 28일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함께 방한한 히딩크 감독은 일주일 간 한국에 머물며 자신의 이름을 딴 국내 축구관련 시설물 착공식과 장애인 전용 축구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자리를 빛냈다.
방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에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시절 함께 우승을 일군 ‘애제자’ 박지성(28·맨체스터유나이티드)과 이영표(32·도르트문트)를 만나 추억에 젖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명문 클럽을 돌며 타고난 리더십을 자랑한 히딩크 감독이지만 이번 방한 기간 동안 그는 ‘명장’의 갑옷을 벗어던진 듯 했다.
6월의 마지막 날, ‘미스터 히딩크’의 하루를 <일요서울>이 동행 취재했다.
“시차 적응하기도 힘드실 텐데 내색 한 번 안 하셨어요. 체력은 정말 타고나신 것 같네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방한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방한 사흘째인 지난 6월 30일 히딩크 감독의 일정을 관리한 인천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관계자는 지친 기색 하나 없는 히딩크 감독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일주일 동안 이동거리만 1400km
지난 6월 28일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한 히딩크 감독은 다음날 오전 울산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해 박지성, 이영표를 만났다.
기자가 동행한 30일에도 아침 10시 숙소인 서울 하얏트 호텔을 출발해 인천 서구와 송도 국제도시, 인천대교 공사현장, 소래포구까지 이어진 행사 일정이 빡빡하게 예정돼 있었다. 가는 곳마다 환영 인파가 몰려들어 3시 30분 종료 예정이던 스케줄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이날 히딩크 감독은 인천 서구에 위치한 2014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신축 현장을 찾아 본인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센터 설립의 첫 삽을 떴다. 내년 말 완공 예정인 ‘히딩크 축구센터’는 국제 규격의 천연 잔디구장 4면, 인조잔디구장 1면과 시각장애인 전용축구장 ‘히딩크 드림필드’ 1면 등 6면의 구장을 갖출 예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던 인천에서 히딩크 감독은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히딩크 감독은 “아직도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한국 축구 발전에 힘을 보태려 한다”며 “히딩크 축구센터는 선진 축구시스템을 전하는 ‘축구 유망주 사관학교’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함께 자리한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을 향해 “대한민국 축구계를 주름잡던 왕년의 ‘황금다리’와 뜻 깊은 장소에 함께 있을 수 있어 영광이다”며 일일이 인사말을 건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장애인·어린 축구선수 챙기는 히딩크
‘히딩크 축구센터’에는 교육동과 스포츠 재활센터, 선수단 숙소가 건설될 예정이며 본격적인 운영은 2011년 상반기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히딩크 감독은 계약에 따라 1년에 2차례 이상 이곳을 방문해 직접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센터 건립비는 인천시와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히딩크 감독의 한국 사업권자인 ㈜HSC(히딩크 축구센터) 등이 분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센터에는 히딩크 감독이 선발한 유럽축구연맹(UEFA)의 1급 지도자와 국내외 코치진이 상주하면서 선수를 지도하고, 우수 선수를 해외에 진출시킬 예정이다.
히딩크 감독은 송도 국제도시로 자리를 옮겨 오는 8월 개최될 인천 세계도시축전의 명예홍보대사 위촉식에도 참석했다. 안상수 인천시장과 진대제 도시축전 조직위원장, 이길여 시민축전위원장 등과 동석한 히딩크 감독은 사회자의 건배 제의에 익숙한 한국어로 “건배”를 외치며 취재진들과 오찬을 즐겼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초석이 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곳”이라며 “히딩크 감독께서 인천세계도시축전의 명예홍보대사를 맡게 돼 도시축전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크게 커 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인천의 열정과 성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글로벌 이벤트인 도시축전이 큰 성공을 이루길 바란다”며 화답했다.
히딩크 감독은 다음날인 지난 1일 장애인들을 위해 수원시 오목천동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에 조성한 미니 축구장 ‘히딩크 드림필드 3호’ 개장식에도 자리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날 장애아동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준공 행사에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함께 참석해 기념비 제막과 시축에 나서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시축에서 슛을 성공시킨 뒤에는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여 주위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 성과와 이를 해낸 훌륭한 선수들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며 먼저 참석자들을 축하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한국의 모든 도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축구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려면 많은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후원을 요청했다.
그는 또 “각 장애아동뿐 아니라 다른 장애가 있는 아동, 비장애인들도 이 구장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사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이라도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장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히딩크 감독은 휠체어를 탄 한 장애인으로부터 직접 그려 넣은 그림이 담긴 축구공을 선물 받았고, ‘드림필드 3호’ 전경이 그려진 기념 퍼즐 마지막 2개를 엘리자베스와 함께 맞춰 그림을 완성하고 직접 사인했다.
히딩크 재단이 1억원을 들여 조성한 이 미니 축구장은 길이 38m, 폭 18m 크기의 인조 잔디 구장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미니 축구 풋살을 즐기도록 경기장 주변 펜스에 쿠션을 설치했다. 히딩크 재단은 2007년 충주 성심맹아원, 2008년 포항 한동대에서 각각 드림필드 1호와 2호를 개장했고, 지난 2일 전주에 4호를 잇달아 개장했다.
외국인 최초 청룡장 받은 히딩크
네덜란드 태생의 히딩크 감독은 1946년생으로 1967년 21세에 네덜란드의 2부 리그였던 그라프샤프(De Graafschap)에서 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0∼1975년 PSV 아인트호벤, 1976년 미국 워싱턴 디플로메츠, 1977년 새너제이, 1978∼1981년 프랑스의 니메겐 등에서 15년 동안 미드필더로 뛰었으나 눈에 띄는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83년 아인트호벤 코치를 거쳐 1986년 감독을 맡으면서 3년 연속 네덜란드 리그를 휩쓸었고 1988년에는 정규리그, FA(축구협회)컵,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재패하며 명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8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16회 월드컵축구대회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리며 이름을 떨쳤다. 당시, 한국에 0대 5의 참패를 안겨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은 이후 39차례의 경기에서 22승 8무 9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0년 12월 18일 대한축구협회와 정식계약을 하고 2001년 1월부터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한국은 2002년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히딩크 감독은 그 중심에 있었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아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시킨 히딩크 감독은 2005년 7월 월드컵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팀을 16강에 올렸다.
히딩크 감독은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영어·독일어·에스파냐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축구교본과 외국어 회화책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학구파다.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공격축구를 지향한다. 주로 4-4-2 전술을 사용하지만 포메이션에 얽매이기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진형의 변화를 꾀한다.
또 몇몇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하기보다 탄탄한 팀워크를 선호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한국팀에게 보여준 우수한 지도력이 인정돼, 한국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체육 분야 최고의 훈장인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히딩크 프로필
▶ 이름 -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 직업 - 축구감독
▶ 출생 - 1946년 11월 8일 (네덜란드)
▶ 신체 - 182cm
▶ 소속 - 러시아국가대표팀 감독
▶ 가족 - 3남 중 차남, 슬하에 2남
▶ 데뷔 - 1967년 데 그라프샤프 / MF
▶ 별명 - 히동구, 왈루스, 엘 블란도(스페인어: 부드러운, 온화한)
경력 -
▶ 2009.02~2009.06 첼시 FC (잉글랜드) 감독
▶ 2006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 2005.07~2006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
▶ 2002.07~2006.05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감독
▶ 2000.11~2002.06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 2000~2000 네덜란드 축구협회 유소년 분과 지도위원
▶ 2000~2000 레알 베티스 (스페인) 감독
▶ 1998~1999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감독
▶ 1995~1998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
▶ 1991~1993 FC 발렌시아 (스페인) 감독
▶ 1990~1991 페네르바체 (터키) 감독
▶ 1986~1990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감독
▶ 1984~1986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코치
▶ 1970~1972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선수
수상 -
▶ 2008 러시아축구협회 올해의 감독상
▶ 2006 독일 월드컵 16강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 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PSV 아인트호벤)
▶ 2002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선정 한일월드컵 최고의 감독
▶ 2002 체육훈장 청룡장
▶ 2002 한일 월드컵 4강 (한국 국가대표팀)
▶ 1998 도요타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 1998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 1996 유럽선수권대회 8강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 198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벤)
▶ 1988 네덜란드 FA Cup 우승 (PSV 아인트호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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