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9-05-06 17:14
  • 승인 2009.05.06 17:14
  • 호수 784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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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건 무덤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제공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뿌리도 아니고 사람들 놀래켜주자고 조작한 엽기사진 따위도 아닙니다. 명실공히 세계 발레계의 탑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그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발레리노들이 그녀의 파트너가 되기를 열망하는 강수진 말입니다.”

고은 시인이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 강수진의 맨발을 찍은 사진을 보고 쓴 글의 한 대목이다.

“그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어찌나 격렬히 뛰는지 한동안 두 손으로 심장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며 “감동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발레 연습으로 발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옹이처럼 돋아 있는 강수진에 대한 찬사인 셈이다.

그만큼 강수진을 유명하게 한 것은 ‘악바리’ 기질이었다. 1982년 15세의 나이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한 것도, 1985년 로잔 국제발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것도 다 그 근성 때문이었다. 하루 15시간 이상 연습해 토슈즈를 네 켤레나 써버려 물품 담당자가 “아껴 써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그런 강수진에게 시련이 닥쳤다. 수년간 왼쪽 정강이 부분 통증을 참아왔던 게 화근이었다. 결국 의사로부터 ‘무용 잠정 중단’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조치를 받게 됐고, 1년 넘게 쉬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이 재기에 성공, 세계 발레계에서 우뚝 솟았다.


강수진을 키운 8할의 바람

그런 그녀가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마련한 자리였다. 지난 4월 26일 오후 8시 45분, 경기 성남시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 성남지역 초·중·고교생 350여명이 모였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의 강연을 듣기위해서 였다.

그가 등장하자 350여명의 초·중·고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강수진이 처음 말문을 연 주제는 ‘공부의 중요성’이었다.

“지금 나이에 (공부를) 즐겨야지요. 나중에는 머리에 올리브 오일을 아무리 쳐도 안 돌아가거든요.”

강수진의 말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진부한 얘기도 세계적인 스타의 입에서 나오자 더 생생하게 들렸다.

이어 강수진은 “발레나 공부나 벼락치기는 안 통한다”면서 “나는 남이 아닌 나 자신과 경쟁했고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녀가 꼽은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극성과 집중, 끈기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었다. 그러면서 강수진은 자신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유학을 가기 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강수진의 하루는 새벽 4시 남산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밥 먹는 시간은 단 5분, 나머지 점심시간엔 발레 연습을 할 정도였다. 방과 후에도 공부와 발레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학교에 남아 오후 5시까지 공부한 그녀는 또 밤 10시까지 발레 연습을 했다.


“고통은 친구 같은 존재”

질문 시간이 주어지자, 손을 번쩍 치켜든 학생들은 먼저 하겠다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학생들은 힘듦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해 했다. 이에 강수진은 “‘안 힘들다’가 더 ‘희한한 단어’”라며 “힘듦은 (인생의) 친구”라고 정의했다.

“힘들게 안 살면 나중에 기쁠 때도 얼마나 기쁜지를 몰라요. 인생은 원처럼 돌고 도는 거여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와요. 힘듦도 알아야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거죠.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을 때 행복하죠? 그렇게 작은 행복에 감사하세요. 때론 울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힘들 때 ‘이 악물고’ 견뎌내면 다시 좋은 때가 찾아와요.”

물론 ‘힘들 땐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녀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사는 것은 원래 힘든 거예요. 발레를 하는 제겐 몸이 아픈 게 일상이고 힘들지 않다는 게 더 희한한 말이에요. 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아침에는 신랑 앞에서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라고 흥겹게 노래를 하며 춤을 춰요. 잘 안 되는 것은 인정해야죠. 항상 잘할 수는 없어요. 누구든 최악은 있거든요. 최악을 즐겨야 합니다. 한바탕 울어 시원하게 추스르고 다시 시작해야죠.”

강수진은 그때마다 발전된 모습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특함’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꿈이 현실로 와 있어요. 차근차근 계속 해나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언젠가는 지금 배우는 것들이 삶에서 다 드러나요.”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학생들은 인생의 목표도 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작다”며 웃음을 머금은 강수진은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하루하루 100% 전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긴다”는 그는 “자기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면 좋은 길로 나아간다”고 확신했다.

이어 강수진은 “목표에 이르기 위해 개인적인 맞춤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레단 연습 외에 개인적으로 아침에 1시간, 오후에 1시간 보통 2시간 이상 요가 비슷한 저만의 방법으로 연습합니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서 꾸준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꾸준한 노력’이란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학생들은 누구 하나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았다.


세계를 제패한 이유 있네

그가 늘어놓은 ‘비법’에 귀를 쫑긋 세운 학생들은 금세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강수진은 질문자를 선택할 때 마다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한 남학생의 궁금증은 “쉬는 시간엔 뭘 하는지”였다. “‘쉰다’는 단어 자체를 싫어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밥 먹을 때나 잘 때는 쉬죠. 그때를 빼곤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라고 부르죠. 지금 쉴 필요는 없어요. 무덤가면 얼마든지 쉴 수 있으니까요.”

자신도 무용을 한다는 한 여학생은 강수진에게 (무대에서) 떨릴 때는 어떻게 하는 지를 물었다.

“발레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기 전에 떨려요. 하지만 떨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어요. 떨릴 때마다 자신이 그 동안 준비한 걸 찬찬히 생각하고 더듬다보면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무대에 오르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토슈즈 끝으로 톡톡 바닥을 차고 무대에 오른답니다”

‘제일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강수진은 “매일매일”이라고 답했다.

“제가 마흔이 넘어서까지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발레를 할 수 있는 것은 매일매일 작은 데서 행복을 얻기 때문이에요. 강아지를 보면서, 제 신랑이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부모님이 건강하시기 때문에 행복하고 그런 작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요즘처럼 행복해지는 것이 어려운 세상에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죠. 여러분도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행복해하고, 부모님이 지금만큼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세요.”

30분으로 예정된 ‘인생 수업’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기며 오후 9시30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학생들과 강수진의 대화는 솔직담백했다. 이날 남편 튄지 쇼크만과 동행한 강수진은 이 자리에서 중학교 친구와 재회의 시간도 가졌다.

강연을 마친 강수진은 “학생들과의 시간은 항상 재미있다”고 즐거워했다. 그에게도 새삼 유년 시절을 되돌아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다”며 웃음을 지은 그는 “그때의 시간이 현재 삶을 견뎌내게 한 ‘보약’”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강수진 프로필

▶ 생년월일 1967년 4월 24일 (양력)
▶ 출 생 지 서울
▶ 키 167 cm
▶ 몸 무 게 49 kg
▶ 학 력 1982 - 1985 모나코왕립Ballet Sch.
▶ 경 력 1986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
1993 (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발레리나
2006 (현) 스위스 로잔 콩쿠르 심사위원
▶ 상 훈 1985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 콩쿠르 1위
19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화관광부)
1999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여성무용수상
1999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
2002 호암상 예술상
2007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
‘무용장인(Kammertanzerin)’ 선정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
2007 존 크랭코 상

박지영 기자 pjy0925@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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